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

전용덕 / 2017-12-15 / 조회: 15,451

지난 11월에 ‘비트코인’ 거래 회원 수가 약 150만 명, 월간 비트코인 거래 금액은 약 56조 원에 이르렀다. 왜 유독 한국에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나? 이낙연 국무총리는 “비트코인 열풍을 이대로 두면 심각한 왜곡 현상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비트코인 경계성 발언을 한 바 있다.


광풍 단계 이른 비트코인 거래에 대해 더 근본적인 의문을 풀어보도록 하자. 언론은 비트코인이라는 용어를 ‘가상 화폐’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비트’에 ‘코인’이라는 말을 붙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 왜 그런가?


상품화폐 시대에 금과 같은 상품화폐는 교환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즉 금을 먹거나 마시기 위해서 화폐인 금을 거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교환을 목적으로 금을 사고팔았다는 것이다. 금반지 등과 같은 것을 제조할 목적으로 금을 거래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불환지폐는 금과 같은 상품화폐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먼저 그것은 정부의 강제력에 의해 유통된다. 그러나 교환수단임은 상품화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 상평통보 발행과정을 보면 민간인들이 상평통보를 사용하지 않자 왕조정부가 상평통보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상평통보가 점차 사용되는 지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즉 정부가 상평통보를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상평통보의 경우에는 초기에는 교환수단보다는 지불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천천히 교환수단의 역할을 하면서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 것은 그 무렵 다른 화폐, 예를 들어, 쌀, 면포, 은화 등이 동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상평통보가 최종적으로 교환수단이 된 것은 물론 정부의 ‘법정화페법’이라는 강제력 때문이다.  


그러면 비트코인은 무슨 기능을 하는가? 비트코인은 교환수단이 아니다. 비트코인을 사용해서 다른 재화를 교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지불수단도 아니다. 그것을 들고 당신이 세무서에 가면 세무 공무원은 당신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비트코인은 일단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화폐가 아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을 가상 화폐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은 틀렸다.


그러면 비트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비트코인은 블록(거래를 기록한 장부)을 생성하고 매매할 수 있는 권리증서이다. 권리증서이지만 디지털 형태를 가졌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권리증서와 다르다. 블록을 매매한다는 것은 거래의 기록과 디지털 데이터의 저장 장소를 매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은, 거래의 기록이라는 점을 무시하면, 사실상 데이터 저장 장소를 매매하는 권리증서인 셈이다. 

    

비트코인이 권리증서인 한에 있어서는 거래를 금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현실에서 비트코인의 거래가 아무 문제가 없이 진행되는 것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저장 장소를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만든다는 점에서 그 권리증서가 ‘온전한’ 권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법이고 금지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비트코인이 민간이 발행하는 가상 화폐라는 주장이나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가 ‘기존 화폐 시스템의 대안’으로 개발했다는 주장은 모두 틀린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도 디지털의 세계가 확대(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시스템, 디지털 금융 등)되고 해킹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 저장과 관련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의 사용이나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디지털 데이터 저장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비트코인이나 그와 유사한 권리증서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저장이 필요하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 비트코인은 아무 소용이 없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저장과 관련한 권리증서가 비트코인이라면 미국처럼 선물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권리증서라는 점에서 미래에 민간이 그것을 화폐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상품화폐보다는 불환지폐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은 권리와 분리된 권리증서일 뿐이라는 점에서 불환지폐를 닮았다. 불환지폐도 권리가 없는 권리증서이기 때문이다. 상품화폐는 권리와 권리증서가 동시에 존재하는 교환수단이라는 점에서 비트코인, 불환지폐 등과 다르다. 불환지폐에서 보듯이 권리와 권리증서가 분리된 화폐는 많은 폐해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불환지폐보다 낫다는 빌 게이츠의 주장은 본질을 놓친 것이다. 


만약 미래에 비트코인을 화폐로 사용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비트코인이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권리증서라는 점에서 불환지폐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부의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불환지폐보다는 한 단계 진화한 화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상품화폐보다는 여전히 한 단계 퇴화한 화폐이다. 금은 권리와 권리증서가 일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데이터 저장 장소를 가진다는 점에서 불법의 문제도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왜 그렇게 높은가’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2000만원 전후로 매우 높다. 이에 대한 대답은 비트코인의 발행총량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분석이 있다. 발행총량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대답은 옳은 것이지만 발행총량의 고정성은 분명하지 않다. 이 점은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왜 그렇게 변동성이 큰가’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지난 8일 최고 2400만원대에서 10일 1400만원대로 내려갔다가 11일엔 1900만원대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것은 단 이틀만에 1000만원의 하락과 500만원의 상승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거래의 참가자들이 대부분 투기적 목적으로 비트코인 거래에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답은 첫 번째 의문과도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다. 


비트코인 가격의 이런 두 가지 특징은 궁극적으로는 비트코인이 가상 화폐라는 잘못된 지식과 대박을 낼 수 있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언론은 비트코인을 가상 화폐라고 표기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대박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쪽박도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의 정보기술 부분에 대한 필자의 분석이나 설명은 부정확할 수 있다. 필자가 정보기술에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닌 점은 장담할 수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말이다. 비트코인 광풍을 가라앉게 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과 관련한 잘못된 지식부터 바로 잡기를 제안한다.      


전용덕 / 대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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