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는 시장만이 보장한다

복거일 / 2004-11-12 / 조회: 7,657

- 정청래 의원 발의 의안번호 170599: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개정법률안 -

1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정기간행물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 한다.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은 주요 야당인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의 거센 반대를 받았다. 집권당의 개정안을 살피려면, 먼저 개정 대상인 법률을 살피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하려면, 먼저 신문의 역사와 성격에 대해서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터이다.

신문의 효시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나왔다. 당시 수도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도의 소식들을 적은 소식 편지(newsletter)들이 배포되었다. 소식 편지 말고도, 유럽에선 현대적 신문의 선구자들이 여럿 있었으니, 도시의 공적 선전자(town criers), 공고(proclamations), 논쟁적 팜플레트(controversial pamphlets), 대판지(broadsides), 그리고 소식 팜플레트(news pamphlets) 따위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소식 팜플레트가 현대적 신문의 직접적 선구자였다. 소식 팜플레트는 16세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나왔는데, 전쟁, 재난, 기적, 또는 대관식과 같은 중요한 소식들을 실었고, 장터나 가게들에서 팔렸다.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현대적 신문은 17세기 초엽에 독일에서 처음 나왔고, 곧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들에서 나왔다. 그런 신문들은 모두 개인들이 발행했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상대로 정보들을 제공했다. 즉 신문은 자본주의 체제가 발달한 사회에서 시장을 토양으로 삼아 자생적으로 출현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보의 유통은 권력에 대한 위협이 된다. 자연히, 권력은 검열을 통해서 신문을 통제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검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갖가지 명분들을 동원한다. 실제로 신문의 발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는 권력의 검열이었다. 신문의 역사는 어떤 뜻에선 검열에 대한 저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2

위에서 간략하게 살핀 신문의 역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

1) 신문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판단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 하며, 자본주의 체제에선 그런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신문은 시장을 토양으로 삼아 나타나고 존재하며 정부의 역할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
2) 정보에 대한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므로, 신문은 늘 정확한 소식을 되도록 빨리 전달하려 애쓴다. 따라서 시장은 사회에서 건강한 정보가 유통되도록 한다.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 신문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곧 사라지게 되므로, 정부가 나서서 신문에 담긴 정보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
3) 신문의 발행인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 의존하므로, 그들은 어떤 개인이나 이익 집단에 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은 자유로운 언론을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보장한다.
4) 신문이 정보 유통 기능을 수행하므로, 신문과 권력은 늘 대립적이다. 자연히, 권력은 신문을 통제하려 하고, 실제로 권력의 검열은 신문의 자유와 발전에 가장 큰 위협이다.
5) 신문은 본질적으로 다른 기업들과 똑같은 기업이다. 신문에 담기는 정보는 다른 상품들과 같은 특질들을 지닌 상품이다. 따라서 신문 산업이나 신문을 다른 산업들이나 다른 기업들과 구별해서 다루어야 할 까닭이 전혀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신문이 공공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확한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는 것은 사회의 건강에 필수적이고, 자연히, 신문의 역할은 크고 신문의 공익성은 늘 강조된다. 그러나 통념과 달리, 신문 자체는 공공재가 아니다. 이 점은 신문에 관한 논의에서 꼭 고려되어야 한다.

공공재와 사유재를 나누는 특질들은 둘이다. 하나는 배제가능성(excludability)이니, 재화의 소유자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대립성(rivalness)이니, 한 사람이 재화를 이용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얻는 가치가 작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공공재는 배제가능성과 대립성이 없는 재화들을 뜻한다. 국방이나 치안은 대표적 공공재들이다. 국방과 치안이 공급되어 사회가 안정되면, 그 혜택은 모든 시민들에게 고루 돌아가며, 특정 시민들을 제외할 수도 없고 그들이 누리는 혜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을 줄이지도 않는다. 반면에, 사유재는 배제가능성과 대립성이 있는 재화들을 뜻한다. 즉,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이용을 막을 수 있고 한 사람의 이용은 다른 사람들의 이용 기회를 줄이는 재화들이다.

신문은 그것을 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읽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함께 쓰는 것은 구매자가 그것을 읽고서 이용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신문은 공공재가 아니다. 만일 신문이 공공재였다면, 애초에 신문은 생겨나지 않았을 터이다. 모두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되어 다른 사람이 돈을 지불한 신문을 읽으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유재들은 시장이 잘 공급한다.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다.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공공재들만 공급하면 된다. 신문이 공공재가 아니므로, 그래서 시장이 충분히 공급하므로, 일단 신문 시장에선 정부가 할 일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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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핀 것처럼, 신문이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했고, 신문은 다른 산업들이나 기업과 다를 바가 없고, 공공재가 아니어서 정부가 공급에 나설 까닭이 없고, 불특정 다수 독자들을 고객들로 삼으므로 전달되는 정보가 정확하게 마련이고 언론의 자유도 보장된다. 따라서 정부가 신문 시장에 간섭할 까닭은 없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문을 검열을 통해서 통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신문에 관한 법을 따로 만들 필요도 없다. 다른 산업들이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형법이나 민법, 상법과 같은 일반법으로 충분하다. 자연히, 신문에 관한 법은 검열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리가 나온다.

실제로 신문에 관한 법을 살피면, 그런 추론이 맞다는 것이 이내 드러난다. ‘정기간행물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의 가장 중요한 사항인 ‘편집의 자유와 독립’ 조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정부의 검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난다. “누구든지 정기간행물의 편집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마련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온 것이 아니라 정부의 검열을 가능하게 한 통로였다는 사정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정기간행물의 사회적 책임’, ‘정기간행물의 공정성과 공익성’, ‘독자의 권익 보호’, 그리고 ‘등록’과 같은 조항들도 실제로는 모두 신문에 대한 정부의 검열을 위한 통로들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옳은 길은 이 법을 아예 없애는 방안이다.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했고 시장에 의해 자유와 건강이 보장되는 신문에 대해서 정부가 간섭할 까닭은 전혀 없다. 신문에 대해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권력이 검열을 위해 만든 법이 사회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어떻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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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집권당이 시도하는 개정은 이미 본질적으로 해로운 법을 더욱 해롭게 만드는 일이다. 개정안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어기고 통제와 명령경제의 특질을 중요한 산업에 도입하려는 시도다. 특히 해로운 것은 개정안의 방안들이 모두 재산권과 자유로운 계약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독자가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언론의 편집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라는 규정에서 이 개정안이 어떤 사상적 바탕에서 마련되었나 잘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단 그럴 듯한 명분들을 내세운 개정안이 나오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근본적으로 어긋나고 큰 해를 끼치는 것일지라도, 논의의 전선은 그것의 내용을 두고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그런 내용의 상당 부분이 반영될 터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은 신문에 관한 법 자체가 존재할 필요가 전혀 없고, 그것들이 실제로는 정부의 검열을 위한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 법의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정보의 유통이 워낙 사회에 중요한 일이라, 그 일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사회가 다소간 통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 자연히, 시민들의 공감을 얻는 일부터 무척 어려울 터이다. 실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자신들이, 즉 신문과 방송의 기자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들은 여는 상업 활동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지녔다. 그런 생각이 왜 그르고 어떤 해악을 불러오는가 드러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큰 행운이 될 것이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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