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 관련 법률의 개정은 재고되어야 한다

김재원 / 2004-02-02 / 조회: 6,911

- 2003.11.17. 정부 발의 의안번호 162940: 노사정위원회의설치및운영등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 -

1. 법 개정의 내용과 의미

노사정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정부의 가장 큰 불만은 노사정위원회가 의결 시 삼자주의(三者主義)식 합의방식에 근거하고 있어 운영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즉 노사정위원회 관련 법률이 삼자합의 정신에 입각하고 있어서 정부가 원하는 노동관련 정책의 입법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작년 11월에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고 이의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는 정부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정부의 의도대로 법개정이 이루어 질 경우 이에 수반되는 부작용이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법률개정안의 주요 골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업종별'지역별로 근로자'사용자 및 정부의 협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협의 사항에 업종별'지역별 노사정 협력증진을 위한 사업지원을 추가한다. 둘째,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 등을 위원으로 지명하여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의결 정족수에 관련된 사항으로서, 현재는 노사정위원회가 의결을 하는 경우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 및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것 외에 근로자'사용자 및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이 모두 2분의 1 이상 출석하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을 노사정위원회 협의절차에 관한 사항으로서 노사정위원회의 운영세칙으로 정하는 사항에 관하여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 및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만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있다.

2. 법개정의 문제점

우선 업종별'지역별 노사정 협력증진을 위한 사업의 지원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노사정위원회에서 업종'지역에 관한 세부사항까지 논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노사정위원회가 개별 기업에 관련된 사항까지 구속력 있는 결의를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 예를 들어 금융구조조정에 관한 논의는 할 수 있었으나 개별 은행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어려웠던 점을 상기하면, 노사정위원회의 효율성'정책실효성 측면에서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우선 개별 기업이나 기관에 대해 구속력 있는 의결을 할 경우 노사간 자율적 교섭능력의 배양이라는 단체교섭의 가장 큰 의미가 손상된다. 이 경우 개별 조직의 노사는 자율적으로 교섭하여 문제를 풀기보다는 정부에 의존하는 관행이 고착화되어 자율적 교섭능력의 결여라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고질적 문제점이 향후에 더 악화되리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노사정위원회를 빌미로 개별 조직에 관한 정부의 개입이 강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노사정위원회에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위원으로 지명하여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위의 맥락에서 본다면 노사관계에 관한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그러나 노사관계 관련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정위원회가 아닌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노사관계의 중요한 부분은 법대로 그리고 정부가 소신 있게 처리하고, 노사정위원회는 현재와 같이 협의체로 존속시키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고” 판단되더라도 장기적 측면에서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해 삼자주의 정신을 존중하는 관행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를 도출하면 좋겠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경우 행정부에서 또는 입법이 요구되는 경우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에 대다수 국민들도 동의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되더라도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은 정부 또는 국회에서 내려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선진국의 삼자주의에서 보듯이 노사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national consensus)와 절차적 정당성이 요구되는 점에 비추어 보아, 의결 정족수에 대한 법 개정안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체적 성격이 “의결”을 어렵게 한다고 보아, 정족수에 대한 법 개정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 노사정위원회는 합의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에서 당사자인 근로자 또는 사용자가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에도 의결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제도야말로 노사정위원회의 일반적 속성인 경제'사회적 현안에 대한 협의체적 기능을 포기하고, 업종별'지역별 특수 사안에 대해서까지 당사자인 노사의 합의 없이도 정부의 의지대로 “의결”을 용이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사실상 선진국형 삼자주의 기구를 포기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 노사정위원회의 의결에 대한 국민적 동의나 절차적 정의를 결집하기도 어렵게 하는 개악(改惡)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제도를 가지고 삼자기구가 성공한 나라는 없다. 즉 이는 모든 개별 사안에 대한 노사문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보다는 차라리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에 의존하지 않고 노사관계 개혁에 나서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한가지 덧붙일 점은 현재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이 지나치게 노조 편향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할 때, 이를 개선하여 국민적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위원회의 구성을 감안할 때 정족수 관련 법규의 개정안은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3. 노사정위원회의 원활한 작동의 저해 요인

금융특위나 공공특위에서 구조조정 문제 등에 대해 노사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노사정위원회 법이 개별 사업장에 대한 논의를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구조조정에 관한 정부의 입장이 확고하지 못했거나 이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의 경우 노사정위원회에서 구조조정에 관한 논의 조차할 수 없었던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때문이었다.

단순화시키자면 정부의 정책목표가 뚜렷한 경우, 특히 공적자금이 투여된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등의 경우 정부 또는 공적자금심의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하면 될 것이다. 이를 굳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의결하겠다는 것은 좋게 보면 구조조정시 노사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해고 등에 따르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국민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나 공적자금이 투여된 경우 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원칙을 세워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 이들 관련 사항을 다루도록 하는 것은 자칫 정부가 할 일을 노사정위원회에 위임하여 어느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겠다는 인기영합주의식 발상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업종별'지역별 사항까지 다루려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4. 삼자주의의 성공요건과 우리나라 노사정의원회의 문제점

삼자주의가 발전된 선진국의 경우 특히 소강국(小强國) 선진국의 경우 삼자주의 기구에서 노사정 또는 노사'공익에 의해 채택된 안에 대해서는 이를 정부나 의회가 받아들이는 것이 관행이고, 우리나라도 삼자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것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삼자주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물가위원회와 임금위원회에서는 임금인상에 관한 권고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다. 싱가포르의 국가임금위원회(National Wage Council)에서도 임금인상에 대한 권고를 하고 있는데, 과거의 구체적인 적정 임금인상률의 수치나 범위(즉 定量的. quantitative)에서 “임금인상이 자제되어야 한다” 또는 “임금인상이 생산성에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등의 定性的(qualitative)인 방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임금위원회의 권고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의 임금결정 과정에서 채택되고 있다. 삼자주의가 잘 작동되는 이들 국가의 경우 위원회 구성원간의 신뢰성과 축적된 인간적 관계가 합의를 쉽게 유도하고 이러한 합의가 국민적 동의를 결집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선진국 삼자기구의 특징은 노사정 또는 노사'공익의 논의를 통해 경제'사회적 현안에 대해 협의하고 그 결과를 정부 및 의회에 건의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정부는 이 협의결과를 중심으로 정책결정 및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삼자주의 기구에서의 논의는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즉 기본원칙과 방향에 대해서만 합의도출을 시도할 뿐 구체적인 법 문안 및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 삼자기구에서의 결정 사항은 정부나 의회에 대해서 구속력을 갖지 않으며, 사회적 파트너간의 협의라는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삼자주의가 발전된 나라일수록 사실상 삼자주의 기구에서 합의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이것이 정부 또는 의회에서 부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러한 관행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요구된다. 즉 삼자기구가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 또는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며, 나아가 삼자기구의 운용에 있어서 절차적 정당성(procedural justice)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선진국의 노사협의 모델(특히 네덜란드)을 따른 사회적 협의체로 출범하였으나 이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다. 우선 노사정위원회가 IMF 경제위기 시에 갈등구조 극복의 완충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사회통합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후 이해집단간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해소하는데 실패하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비단 노사정위원회의 운용이 잘못되어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노사관계의 후진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들러리라고 비판하고 있고, 경영계 일부에서는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집단주의적 시장개입기구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5. 노사정위원회의 발전 방향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노사정위원회는 협의체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에 대해 합의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노사정위원회가 법적 구속력을 지닌 “의결”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더욱이 정부가 노-정(勞-政) 또는 사-정(使-政)간의 “짝 짓기식” 의견일치라는 편법에 기대어 구속력을 지닌 “의결”을 한다면 이의 절차적 정의가 문제시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와 같이 노사정위원회는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협의와 이를 토대로 합의도출에 노력하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협의과정에서 도출된 기본 원칙과 방향에 대한 노사의 의견을 정책결정과정에 반영하는 수준에 그 역할을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노사관계 또는 노동법의 전향적 개혁에 대해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협의하되 국민적 동의를 결집하여 국회에서 입법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6. 노사정위원회의 관련 법률의 개정은 재고되어야 한다

노사정 위원회 관련 법률개정안은 소모적인 논쟁과 노사정간 갈등의 골만 깊게 할 개연성이 클 뿐만 아니라 삼자주의에도 역행하는 것으로서 법 개정은 현 우리경제의 현실을 감안하여 재고되어야만 한다. 법 개정보다는 정부는 선진국에서 삼자주의의 작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이유를 잘 판독하고 나아가 노사정위원회 위원 구성의 노조편향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데 정책의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현재 노사정위원회가 잘 작동되지 않는 이유를 올바로 인식하여, 우리나라의 삼자주의의 근본적인 발전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

金在源 (한양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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