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금융거래정보요구권 시한 연장에 관한 의견

김영용 / 2003-09-09 / 조회: 7,050
- 2003.8.20.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법 입법예고 -

1. 배경 및 초점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일명 계좌추적권)은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현재 49개)이 부당내부거래를 한 혐의가 발견되면 관련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정보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1999년 2월에 도입된 제도로서, 법원의 영장이 필요 없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발동할 수 있다. 도입 당시에는 5대 대규모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위해 한시적으로 2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좌추적권을 부여했으며, 2001년 3년 더 연장하여 현재 2004년 2월에 만료 예정으로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의 87%가 금융거래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당내부거래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계좌추적권이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5년 더 연장하기로 입법 추진하고 있으며, 5년 후 부당내부거래 상황을 평가하여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2. 쟁점 사항 및 검토

우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의 87%가 금융거래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좌추적권이 필수적이라고 하나, 오늘날의 화폐경제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거래는 화폐의 수수를 동반한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좌추적권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쟁점 사항이 되지 못하며, 쟁점 사항은 계열기업간 내부거래의 부당성 여부 그 자체에 있다.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내부거래에 있으므로, 그 정당성은 우선 계열기업간 내부거래가 그러한 거래를 하는 해당 기업이나 경제 전체에 손해가 된다는 논리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공정위가 계열기업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내부거래를 불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용의 감소등 정당한 사유가 입증되는 경우에는 이를 규제하지 않고 있다.

(1) 내부거래란?

거래는 외부거래와 내부거래로 나뉜다. 시장거래라 불리는 외부거래는 시장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다른 개인이나 기업과 하는 거래를 말하며, 내부거래는 기업 내부나 기업집단 내의 계열기업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를 말한다.

시장거래를 통해서도 재화와 용역을 생산할 수 있다. 나무 책상의 예를 들어 보자. 나무 책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적당한 목재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 목재를 제재소로 옮겨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목수에게 의뢰하여 대패질, 톱질, 그리고 못질을 하도록 한 다음 페인트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페인트칠을 하도록 하면 나무 책상이 완성된다. 시장에는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활용하여 나무 책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시장거래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데에는 커다란 거래비용이 소요된다. 즉,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무책상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원자재, 장비, 그리고 인력을 한 곳에 모아 계약에 의해 임금등을 결정하고 생산을 조직화하는데 이러한 거래가 바로 내부거래다. 따라서 기업은 기본적으로 내부거래를 하기 위하여 조직화되는 생산주체다. 그러나 기업이 나무책상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다 만드는 일은 드물다. 시장에서 사서 쓰는 것이 기업 내에서 만드는 것보다 더 싸다면 내부거래 대신 시장거래를 택하게 된다. 나무책상 생산과 관련해서는 못이나 페인트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즉, 기업은 시장거래 비용과 내부거래 비용을 비교하여 자체적으로 제작할 것인가 아니면 사 올 것인가를 결정한다.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을수록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부품 수가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제 기업이 생산주체로서 등장하는 이유와 함께 내부거래의 발생 원인이 명백해졌다. 이 논의를 기업집단의 계열기업으로 확대해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계열기업간 거래도 기본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2) 계열기업간 내부거래

현행 공정거래법은 독립기업 내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기업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집단의 계열기업간 거래는 비용의 감소등 정당한 사유가 입증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부당’이라는 이름 아래 불법화하고 있다. 이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하는 부당내부거래의 논리와 그에 대한 비판을 살펴본다.

첫째, 내부거래를 통하여 주주가 서로 다른 A기업의 자금을 B기업에 부당하게 유출시킴으로써 소액주주등 이해 관계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A기업의 주주 모두가 손해를 본다. 따라서 주주 전체의 이해에 반하여 행동할 유인이 별로 없는 경영자가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내부거래를 하는 것은,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켜 장기적으로는 A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경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경영 판단의 결과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제3자가 개입할 이유는 없다.

둘째,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기업이 아닌 다른 독립기업을 배제함으로써 잠재적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다고 하나, 국내외 경제가 빠른 속도로 통합되어 가는 국제화 시대에 내부거래는 진입장벽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셋째, 내부거래를 통한 다각화등 선단식 경영이 기업집단 전체의 부실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규모 기업집단은 다각화를 통해 여러 가지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생산구조로 진화해 온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넷째, 시장 구조상으로 독점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 독점 이윤을 계열기업으로 옮겨서 독점 이윤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점의 궁극적인 원인은 정부에 의한 진입장벽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경쟁 시장에서 단 하나의 기업이 존재한다면, 이는 시장 구조상으로는 독점이지만 다른 기업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섯째, 내부거래를 규제하여 독립경영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구조를 유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문 경영인에 의한 경영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론이나 실증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로우(Roe)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개념은 시장과정을 통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법적 제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열기업간 내부거래를 ‘부당’이라는 이름 아래 법적 제재를 가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3) 한국의 대규모 기업집단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은 본디 외부거래(시장거래)를 내부거래로 전환시켜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조직이다. 또한 대규모 기업집단은 한국만이 아니라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신흥공업 국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생산구조로서, 상호 거래를 통하여 시장 정보를 창출하고 여러 가지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방편으로 형성된 것이다. 즉, 여러 가지 사업 프로젝트를 하나의 독립기업에 모두 흡수하여 내부화 하지 않고 법적으로나 회계적으로 상당한 정도 독립적인 계열기업을 거느리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 이와 관련하여 Ghemawat and Khanna (1998)에 의하면 벨기에, 칠레, 코스타리카, 홍콩, 프랑스,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니카라과, 파키스탄, 필리핀, 러시아, 한국, 타이완, 태국 등에도 다각화된 기업집단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3. 요약 및 결론

기업은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 있어 시장거래를 내부거래로 전환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과정에서 이윤을 얻기 위하여 등장하는 조직이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가의 기업집단 역시 계열기업을 이용한 다각화를 통해 시장 정보를 창출하고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방편으로 진화해 온 존재이다. 따라서 독립기업 내에서 내부거래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계열기업간 거래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 만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부거래의 부당성이라고 지적하는 것들은 위의 쟁점 분석에서 본 바와 같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내부거래를 단속하기 위하여 계좌추적권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법이나 법률이 어떻게 제정되고 집행되느냐에 따라 한 경제의 자원배분은 크게 달라지고, 그에 따라 경제적 효율성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좌추적권을 가지는 것이 정부가 주장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현존하는 기업마저 외국으로 내보내는 결과를 가져올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참고문헌

Ghemawat P. and T. Khanna, "The Nature of Diversified Business Groups: A Research Design and Two Case Studies," Journal of Industrial Economics, March 1998, pp. 35-61

Jeon, Yoong-Deok and Young-Yong Kim, "Diversified Business Groups and Economic Calculation," mimeo, 2002

Mises, Ludwig von, 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 in Hayek, Friedrich A., ed., Collectivist Economic Planning, Clifton, NJ, Augustsa M. Kelly, 1975[1935], pp. 87-130

Roe, M. J., Strong Managers, Weak Owners: The Political Roots of American Corporate Fina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1) 기업이 특정 부품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서 구매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시장거래에 따른 시장정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신흥공업국가에서는 시장이 잘 발달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특정 자원의 기회비용에 대한 시장정보가 부족하거나 부정확하다. 따라서 기업가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기존 기업에 내부화 하지 않고 새로운 계열기업을 설립하여 서로 거래함으로써 시장정보를 창출하여, 이를 기업의 손익 계산에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용덕과 김영용(2002)을 참조. Mises(1935)는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이들 국가가 멸망한 가장 주된 이유는, 사적 재산권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자본의 기회비용을 알 수 있는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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