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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와 경제 성장

글쓴이
랜들 G. 홀콤 2025-10-20

경제학에서 가장 지속적인 질문 중 하나는 무엇이 경제들을 성장하게 하는가이다. 1776년에 출판된,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잘 알려진 논저 ≪국부의 본질과 원인의 탐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는 번영의 원인들이 스미스의 주된 관심이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는 자유 시장들, 사유 재산권들의 보호, 그리고 경제에서 최소 정부 존재가 번영에 이른다고 결론지었다. 바꿔 말하면, 경제적 자유가 경제 성장에 이른다.

스미스의 결론들은 일반적으로 20세기까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는데, 그때 경제 이론에서 전개들은 전통적인 지혜를 뒤엎었고, 특히 저개발 경제들 사이에서, 번영을 낳는 더 나은 길로서 중앙 계획과 정부 통제를 옹호하도록 경제학자들을 이끌었다. 20세기 말에,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견해들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세계 여기저기 대부분 중앙 계획 경제의 붕괴 후에, 그들이 어떻게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추상적인 경제 이론에 따라 움직여, 자유방임 정책들이 가장 잘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견해에 대한 도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애덤 스미스는 번영이 경쟁적 시장 경제를 통해 생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배경에서, 스미스는 그의 더 유명한 관찰 중 하나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들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처럼 전체 사회를 위해 최선인 것을 하도록 이끌린다고 언급했다. 경쟁 시장들에서 자원 배분을 촉진하기 위해, 스미스는 낮은 세금들과 정부 지출들, 사유 재산권들의 보호, 그리고 국제 무역을 촉진하는 낮은 관세들을 옹호했다. 바꿔 말하면, 스미스는 만약 시장 환경이 창출되고 유지된다면, 경제가 성장하고 번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몇십 년 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번영에의 길로서 자유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관세들의 저하를 옹호했고, 자기의 주장들을 1817년에 처음 출판된 자기의 유명한 책, ≪정치 경제의 원리들(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을 가지고 뒷받침했다. 리카도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비교 우위를 지니는, 활동들에 전문화하고 서로 거래할 때 모두가 어떻게 결국 더 잘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대해 아마도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스미스, 리카도,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의 주장들은 영국과 그 밖의 국가들에서 정부 개입의 감소를 가져왔고, 더 자유로운 세계 경제에 이르렀으며, 19세기를 미증유의 경제 성장 시대로 만들었다.

성장에 관한 다른 견해

비록 경제적 자유가 경제 성장에 이른다는 견해가 직접 도전받지 않았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 세기 초에 도중에 단념됐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경제 이론에서의 전개들 때문이었고 부분적으로 세계 사건들 때문이었다. 세기가 바뀔 때쯤, 경제학에서 방법들은 경성 과학들을, 특히 물리학을, 더 가깝게 닮기 시작했다. 경제 이론은 더욱더 복잡한 수학 모형들을 통해 전개되었다. 경제학계는, 경제의 더 과학적인 이해가 더 나은 정책들과 더욱더 많은 번영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서, 그런 변화들을 지지했다. 수학적 용어로, 생산 함수에서 한 경제의 산출이 묘사될 수 있는데, 거기서 산출은 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 같은 투입들의 함수이다. 더 많은 투입이 더 많은 산출을 낳았고, 생산 함수는 명백한 수학적 용어로 투입들과 산출들 사이 관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세계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 시달렸을 때, 경제학의 전개는 이미 이 길을 따라 멀리 여행했었다. 전국 경제 조사국(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민간 기관임−옮긴이 주)이 경제의 더 과학적인 관리를 고려할 더 나은 경제 자료를 생산하기 위해 1920년대에 설립되었다. 케인스 혁명이 1936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가지고 경제학을 때렸다. 케인스 경제학은 현대 경제들이 그것들을 관리하고 번영을 유지하는 데 능동적인 정부 정책들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경제학에서 그 두 전개가 서로 도와 경제 성장에 관한 전통적인 지혜를 완전히 일변시켰다.

전후에 또 하나 불황의 가능성을 걱정하여,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 시대 이래 경제학의 현저한 부분이었던 경제 성장은 거시경제적 안정을 촉진한다는 목표에 비해 중요성이 감소했다. 그러나 성장은 저개발 경제들에 관해서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었고,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선진 세계에서 성장을 낳는 데 경제 정책을 공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런 경제들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가장 정교한 경제 모형들은 투입들−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과 경제적 산출 사이에 직접적인 수학적 관계를 묘사했다. 따라서, 경제들은 만약 그것들이 자기들의 투입들을 증가시키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덧붙여서, 증가한 효율은 경제가 똑같은 양의 투입들로부터 더 많은 산출을 생산할 수 있게 할지 모른다. 그때와 지금, 경제학자들은 효율 증가를 기술 진보의 산물들로 마음속에 그렸다. 가장 선진화된 경제들은 연구와 개발을 통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지만, 저개발 경제들은 그저 선진 경제들의 기술을 채택하기만 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부의 경제 관리의 수용(受容) 증가와 짝하여, 투입들에 대한 집중으로 경제학자들은 정부 계획을 저개발 국가들에서 성장을 창출하는 최상의 방식으로 권고하게 되었다. 중앙 계획은, 그들은 말했다, 경제들이 자기들 소득의 충분한 몫을 투자하도록 보장할 수 있고, 그 투자를 경제에서 더 많은 가치를 보탤 부문들로(예를 들면, 농업과 천연자원들에서 제조업으로) 돌릴 수 있으며, 새 투자가 가장 선진화된 기술을 포함하도록 확실히 할 수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 통화 기금 같은 제도들이 저개발 경제들에서 중앙 계획을 장려했고, 자본 투자와 현대 기술 채택을,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저개발 경제들에 재정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밀고 나아갔다. 심지어 미국 같은 비교적 자유 시장적인 경제들에서조차도, 경제 전문가들은 저개발 국가들에서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데 그런 유형들의 정책들을 지지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정책들을 따른 국가들은, 그 당시 가장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않았다. 그것들[그 나라들]은 애덤 스미스의 조언을 뒤돌아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성장에 관한 두 견해

위에서 서술된 성장에 관한 두 견해에서 차이점들을 더 자세하게 고찰해 보자. 양쪽 다 그럴듯하게 들리고, 어느 쪽도 실제로 틀렸다고 불릴 수 없을 것이지만, 한 견해는 좋은 경제 정책에 이르고 다른 것은 나쁜 정책에 이른다. 왜 그런가? 성장 이론에 대한 20세기 접근법은 성장 과정의 투입들에 집중한다. 만약 우리가 이 투입들을 결합하면, 그것은 추론한다, 우리가 이 산출을 얻을 것이다. 스미스학파 접근법은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제 환경을 고찰한다. 스미스의 추론 방향을 따르면, 경제적 자유의 환경이 성장의 열쇠다. 생산 함수 접근법의 문제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자원들을 결합할 유인을 주는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산출을 생산하는 데 투입들이 필요하지만, 올바른 유인들이 없이는, 최종 산출을 최초 투입들보다 덜 가치 있게 하는 방식으로 투입들을 결합하기가 너무 쉽다. 시장 경제에서는 우리는 생산이 부 증가에 이른다는 점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의 투입들보다 덜 가치 있는 산출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손실을 보고 도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경제에서는 대부분 기업은 자기들의 투입들보다 더 가치 있는 산출을 창출한다. 중앙 계획 경제에서는, 정부는, 아마도 심지어 자원들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도 못한 채, 투입들을 비효율적인 생산 장치들 속으로 계속해서 잘못 돌릴 수 있다. 경제의 생산 함수 견해에 기초하여 개발 정책을 설계하는 정책 결정자들은 오직 시장 경제의 틀 안에서만 그것[개발 정책]이 자원들의 배분 방식을 정확히 나타낸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환경에 집중함으로써, 스미스학파 견해는 투입들에 덜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스미스는 또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적 자유의 환경 안에서 작동하도록 허용된다면, 자원들을 배분하는 효과적인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기도 했다. 만약 그런 도움이 되는 환경이 창출된다면 공공 정책은 자본의 생산, 기술의 편입, 혹은 숙련 노동력의 개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 경제는 투자를 끌어들일 것이고, 근로자들이 판매할 수 있는 기능들을 얻을 유인뿐만 아니라 [기업이] 더 선진화된 기술을 채택할 유인도 제공할 것이다. 올바른 환경은 올바른 투입들을 끌어들일 것이지만, 올바른 투입들을 제공하는 것은 올바른 환경을 창출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성장 정책이 경제적 자유의 환경을 낳는 데 집중한다면, 성장이 따를 것이다. 올바른 환경이 없이는, 성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끝.

자유와 성장에 관한 증거

경제적 자유와 경제 성장에 관한 뜻밖의 (그러나 설득력 있는) 증거가 많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한국은 분할되었다: 남한은 시장 지향적 경제를 촉진했지만, 북한은 중앙 계획 경제를 유지했다. 이 글이 쓰이고 있을 때, 북한의 많은 국민은 그들의 경제가 약해 가기 때문에 굶어 죽고 있지만, 남한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경제들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비슷하게,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졌고, 다시 시장 경제를 가진 것은 번영했지만 중앙 계획 경제를 가진 것은 뒤처졌다. 십 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는, 동독과 서독은 갑자기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될 우려가 있음을 보여줄 냉전에서 중심적인 경기자들이었다. 동독은 결국 서독에 총 한 방 쏘지 않고 항복했는데, 왜냐하면 동독 사람들이 서독 경제 체제가 제공하는 이점들을 지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구소련은 생산 함수 성장 모형을 매우 진지하게 여겼고, 그래서 그 전(前) 제국은 그 모형의 한계에 관해 특별히 강한 흥미를 돋우는 예를 제공한다. 그것은 물적 및 인적 자본에 심하게 투자했고, 고도로 훈련되고 교육받은 노동력을 생산했다. 그것은 또한 과학과 공학을 크게 강조하면서 연구와 개발에 심하게 투자하기도 했다. 자기의 자본 및 노동 투입들의 질과 양을 증가시킴으로써, 그리고 기술 발전들을 창출함으로써, 소련은, 생산 함수 접근법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경제들 중 하나를 가졌어야 한다. 대신, 그것은 생산 과정에 투입들을 증가시키는 것만으로는 성장이 창출될 수 없다는 예로서 이바지한다. 더 많은 투입은 오직 경제적 자유의 환경 안에서 결합할 때만 산출 가치 증가에 이른다.

그들의 최근 번영에 비춰보면, 일본, 타이완, 한국,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이 그저 몇십 년 전만 해도 가난했다는 점을 잊기 쉽다. 소련, 중국, 그리고 인도처럼, 중앙 경제 계획을 지지하여 시장 체제를 피한 국가들은 쇠약해지는 경제들을 가졌다. 그런 전(前) 사회주의 나라들이 경제적 자유 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들의 경제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증거가 너무나 명백하여 지금 더 많은 경제적 자유 쪽으로 전 세계적인 이동이 있다. 그렇지만, 이 뜻밖의 증거가 설득력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정확하게, 경제적 자유의 성분들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경제 성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의 질문을 열어 두고 있다.

많은 최근 학술 연구는 이 쟁점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경제적 자유에 관한 가장 심층적인 검토는 1996년에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에 의해 발간된, 제임스 고트니(James Gwartney), 로버트 로슨(Robert Lawson), 그리고 월터 블록(Walter Block)의 연구, ≪세계의 경제적 자유: 1975-1995(Economic Freedom of the World: 1975-1995)≫이다. 그들은 경제적 자유에 관한 훌륭한 수 척도를 개발하고 그것이 경제 성장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학술 연구들도, 경제적 자유의 환경이 경제 성장을 낳는 데 필요한 투입들을 끌어들일 것이라는 증거를 제공하면서, 비슷한 결과들을 낳았다. 그런 연구들은 많은 다른 요인을 검토하지만, 핵심 성분이 경제적 자유라고 결론짓는다. 경제 성장의 이론이 꾸준히 애덤 스미스의 견해들에서 떠났었던 한 세기 후, 경제학자들은 지금 경제적 자유가 번영에 얼마나 필수적인지 보여주기 위해 그것들로 돌아오고 있다.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1989년 동유럽 중앙 계획 경제의 붕괴와 이어진 1991년 소련의 소멸 후에, 대부분 그런 국가는, 정치 개혁들이 서양식 번영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열광적으로 서양 민주주의 원칙들을 받아들였다. 서양의 사람들이 격려해 주었지만, 그들은 정치적 민주 통치를 자유방임 경제 제도들보다 더 열광적으로 지원했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와 비교해서 경제적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양쪽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의당 소중하지만, 증거는 민주주의가 혼자만으로는 번영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경제적 자유는 경제 성장을 낳는다; 정치적 자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점은 신생 민주 국가들 사람들의 기대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런 나라들 국민은 실망할 상황에 빠지고 있다. 만약 최근 민주주의로 바뀐 국가들이 자기들의 경제 사정이 향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면, 그들은 민주주의에 등을 돌려서, 독재 체제로 복귀할 기회가 열릴지 모른다.

증거는 심지어 나라들이 제한된 정치적 자유를 지니는 곳에서조차도 경제적 자유가 경제 성장에 이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역은 진실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성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생 민주 국가들이 자유 시장들을 장려하고, 재산권들을 보호하며, 안정적인 통화를 제공하고, 경제에서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또한 더 높은 소득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더 민주적이고 시민의 자유들과 정치적 자유들을 더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 따라서, 간접적으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에 이른다.

증거는 경제적 자유의 환경이 없으면,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경제적 자유는 많은 성분을 포함하는데, 그 모든 것은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경제는 안정적인 화폐 제도, 안전한 사유 재산권들, 불편부당한 법체계, 낮은 세금들, 최소 정부, 그리고 국제 교환에 대한 낮은 장벽들을 지녀야 한다. 만약 이 성분들 중 어느 것이라도 빠지면, 경제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유인(The Freeman)≫에도 게재되었다.
이 논문은 ≪자유인≫, 1998년 2월의 허가를 받아 다시 인쇄했다. ⓒ Copyright 1998, the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은 독립 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 선임 연구위원,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드보 무어(DeVoe Moore) 경제학 교수, 그리고 독립 연구소 책 ≪위험에 처한 자유: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권력(Liberty in Peril: Democracy and Power i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
원문은 https://www.independent.org/article/1998/02/01/economic-freedom-and-economic-growth/에서 읽을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