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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납품대금 지급기한, 법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글쓴이
자유기업원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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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조건은 기업 간 자유로운 거래와 계약에 맡겨야…획일적 지급기한 단축 재검토해야
- 35일 규제가 발주·재고·자금운용의 거래구조 왜곡해 기업 생태계 위축시킬 수 있어
- 중소기업 보호 명분의 규제가 오히려 발주·판로 줄여 '보호규제의 역설’ 초래할 수 있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매출 1,000억 원 이상 대규모유통업체의 납품대금 지급기한을 현행 최대 60일에서 35일로 단축하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처리했다. 특약매입·위수탁·임대을 거래의 지급기한도 현행 40일에서 20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와 같은 피해의 재발을 막고 중소 납품업체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납품대금 지급기한을 국가가 일률적으로 정하는 방식이 과연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적절한 해법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상품의 종류와 회전율, 재고 부담, 거래규모와 신용도, 납품가격과 발주량은 기업과 상품마다 다르다. 대금을 언제 지급할 것인지 역시 이러한 조건들과 함께 결정되는 거래계약의 핵심 요소다. 이를 법률로 하나의 기준에 묶는 것은 기업 간 거래조건과 위험분담 구조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규제는 티몬·위메프 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과 규제수단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 티메프 사태의 핵심은 플랫폼이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데 있다. 반면 대형 유통업체의 직매입 거래는 유통기업이 상품을 직접 매입하고 재고와 판매 위험까지 부담하는 거래다. 미정산 피해를 막겠다는 이유로 성격이 다른 직매입 거래의 지급기한까지 일률적으로 단축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보다 규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접근이다.

지급기한 35일이라는 하나의 숫자는 단순히 대금이 오가는 시점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기업 간 거래에서는 납품가격과 발주량, 재고 부담, 판매위험, 반품조건, 지급기한이 서로 맞물려 결정된다. 지급기한만 법으로 강제해 앞당기면 유통기업은 늘어난 운전자금 부담을 다른 거래조건에서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발주량을 줄이거나 상품 회전율이 높은 제품을 우선하고, 거래실적과 신용도가 검증된 업체 중심으로 거래할 유인이 커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는 곳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신생 브랜드다. 판매이력이 부족하거나 시장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품은 유통기업 입장에서 재고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금까지 조기에 지급해야 한다면 새로운 납품업체와 거래하거나 시험적으로 상품을 매입할 유인은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규제가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발주와 판로를 줄이는 '보호규제의 역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직매입 거래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유통기업이 재고위험과 조기 대금 지급 부담을 동시에 져야 한다면 직매입 규모를 줄이거나 특약매입·위수탁 등 다른 거래방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납품기업의 자금사정을 개선하려던 규제가 오히려 안정적인 거래기회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 간 거래조건 가운데 하나를 획일적으로 통제하면 그 영향은 자금운용과 발주, 재고관리, 거래업체 선정 등 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해외 제도 역시 지급기한을 단순히 하나의 숫자로 단축하는 것이 국제적 표준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EU는 기업 간 거래에 60일을 기본으로 두면서도 당사자 합의와 거래 특성에 따른 예외를 인정하고, 농식품 거래에서도 상품 특성에 따라 지급기한을 달리 적용한다. 칠레 역시 30일 원칙을 두고 있지만 일정한 요건 아래 계약 당사자 간 예외 합의를 허용한다. 해외에서도 지급기한뿐 아니라 산업 특성과 거래유형, 계약관계를 함께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정상적인 기업 간 계약조건을 대신 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금 미지급이나 거래상 지위 남용이 문제라면 해당 행위를 직접 규율해야 한다. 정산대금 유용이나 지급불능 위험이 문제라면 정산자금 관리의 투명성이나 지급보증 등 문제의 원인을 겨냥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맞다. 정상적으로 거래하는 모든 대규모유통업체의 지급기한을 일괄 단축하는 방식은 규제 목적과 수단 사이의 비례성 측면에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유통기업의 자금조달 비용과 거래비용이 높아지면 가격이나 거래조건 조정을 통해 그 부담이 납품업체와 소비자에게 일부 이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기업 간 자유로운 거래구조가 경직되고, 새로운 중소 납품업체와 상품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업과의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기업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유통채널 간 경쟁이 활발해지고 거래 상대방이 늘어날수록 중소 납품업체의 협상력도 높아질 수 있다. 정부는 민간의 계약조건을 획일적으로 정하기보다 불공정행위는 엄정하게 규율하되 자유로운 거래와 계약, 경쟁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납품대금의 지급시기는 국회가 모든 기업에 하나의 숫자로 정해줄 사안이 아니다. 기업들이 상품과 거래의 특성에 따라 가격과 발주량, 재고부담, 지급조건을 자유롭게 협상하고 계약하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 보호라는 선의가 오히려 중소기업의 거래기회와 판로를 줄이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도록 납품대금 지급기한의 획일적 단축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202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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