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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해서’라는 말 다음에 물어야 할 것

글쓴이
박민규 2026-08-26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는 말은 대개 따뜻하게 들린다. 그래서 나도 공공성을 내세운 정책이라면 적어도 그렇지 않은 정책보다 더 선하고, 반대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가짜 공공성: 모두를 위한다는 거짓말』을 읽으며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바로 그 습관이었다. 이 책은 공공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공성이라는 이름이 너무 쉽게 면죄부가 될 때, 진짜 공익이 무엇인지 묻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집요하게 보여 준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좋은 취지’와 ‘좋은 결과’를 분리해 보라는 태도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안전운임제, 대형마트 영업규제, 교육환경보호구역처럼 이름만 들으면 보호해야 할 대상과 목적이 분명한 제도들도 실제 효과를 따져 보면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제가 다른 누군가의 선택을 좁히거나, 비용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넘기거나, 오히려 보호하려던 사람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가”라는 선언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결과가 생겼는가”라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정책을 볼 때 의도를 먼저 보았다. 청년을 위한 정책, 소상공인을 위한 규제, 소비자를 위한 보호장치라는 설명을 들으면 좋은 방향이라고 쉽게 판단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에는 한 문장을 더 붙이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선택권은 넓어졌는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정책의 혜택을 받는 사람과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같은가?” 이 질문들은 냉정해 보이지만 오히려 공공성을 진지하게 대하는 방법에 가깝다. 선한 의도를 믿는 것보다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 사례를 떠올리며 특히 많이 생각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돕겠다는 목적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정해진 날에 장을 볼 선택을 잃을 수 있고, 맞벌이 가정처럼 주말 쇼핑 의존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불편이 커질 수 있다. 규제로 줄어든 소비가 반드시 전통시장으로 이동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정책의 정당성은 명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 변화와 비용까지 확인한 뒤 다시 평가되어야 한다. 공공성이란 간판이 아니라 계속 검증해야 하는 결과라는 생각이 여기서 선명해졌다.

그렇다고 이 책을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지는 않았다. 내가 받아들인 핵심은 정부냐 시장이냐의 단순한 선택보다, 정부도 완벽하지 않고 시장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실패를 발견했다고 해서 정부가 자동으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도 정보의 한계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규제 역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만든다. 그래서 개입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효과를 확인하며, 잘못된 제도는 고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책 제목의 ‘가짜’라는 단어도 처음에는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니 가짜 공공성과 진짜 공공성을 가르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고 느꼈다. 반대 의견을 악의로 몰지 않는 것, 정책의 비용을 숨기지 않는 것, 좋은 의도만으로 실패를 합리화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개인의 선택을 제한해야 한다면 그 이유와 효과를 계속 증명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다는 말이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이 되려면 오히려 더 많은 질문과 검증을 견뎌야 한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공공성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게 되었다. 예전에는 좋은 목적을 말하는 정책에 먼저 박수를 보냈다면 이제는 그 다음 장면까지 보려 한다. 누가 혜택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 선택의 여지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는 아무 규칙도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규칙을 만든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이유를 묻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모두를 위해서’라는 문장이 토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큰 변화다. 진짜 공공성은 선한 의도를 크게 외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가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끝까지 책임 있게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