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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이 이끈 SK의 세계전략

글쓴이
최승노 2026-08-13 , 미래한국

2012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했을 때, 10여 년 뒤 이 회사가 세계 HBM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하이닉스는 채권단이 주요 주주로 남아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고 반도체 업황도 좋지 않았다. 약 3조 4천억 원을 들인 인수에 우려가 뒤따른 이유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가 보유한 기술과 세계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봤다. 하이닉스에는 이미 첨단 메모리 기술이 축적돼 있었고, SK는 인수 후 투자를 이어갔다.

SK하이닉스는 AMD와 협력해 2013년 업계 최초로 TSV 기술을 적용한 HBM 개발에 성공했다. AI 확산으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오랜 투자는 큰 성과로 돌아왔다. 채권단이 새 주인을 찾던 기업이 세계 HBM 시장의 선두에 선 것은 한국 기업사에서도 손꼽힐 성취다.

SK의 반도체 도전은 2012년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다. 최종현 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지만 제2차 오일쇼크와 자금난으로 1981년 사업을 접어야 했다.

반도체를 미래 산업으로 본 그의 꿈은 SK 안에 남았다. 최태원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는 30여 년 만에 그 꿈을 되살린 결정이었다.


두 세대의 기업가정신, 반도체의 꿈에서 AI 전략까지

최종현 회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SK의 경영 토대를 세웠다. 1979년 SKMS를 정립해 경영 원칙과 판단 기준을 구성원들이 공유하도록 했다.

SKMS는 계열사와 구성원이 같은 기준으로 경영을 논의하게 한 공통의 언어였다. 직급과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토론하는 캔미팅도 도입했다. 사람과 지식을 기업 경쟁력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이 경영 유산을 '딥 체인지’와 '따로 또 같이’의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섬유에서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으로 사업을 넓혀 온 SK는 반도체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웠고, 최근에는 AI를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계열사는 각자의 사업을 책임지고, 그룹의 역량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힘을 모은다.

SK의 세계전략에도 같은 원리가 흐른다. 중국 석유화학 시장에서는 현지 기업과 합작했고, 낸드 경쟁력을 강화할 때는 인텔의 NAND·SSD 사업을 인수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AI 기업들과 메모리·데이터센터 분야에서 협력을 넓히고 있다. 시장에 따라 합작과 인수, 전략적 제휴를 활용하면서 필요한 기술과 고객을 확보했다.

AI는 이 전략이 향하는 다음 무대다. SK하이닉스의 메모리, SK텔레콤의 통신과 데이터센터, SK이노베이션 계열의 전력·에너지를 연결하면 AI 산업에 필요한 기반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세계적인 기업과 협력하려면 상대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 SK가 오랫동안 축적한 사업 역량이 글로벌 협력을 넓히는 힘이 되고 있다.

SK의 성취에는 두 세대에 걸친 준비와 도전이 쌓여 있다. 최종현 회장은 10년 뒤를 내다보며 에너지·통신·반도체의 기반을 닦았고,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와 AI 투자를 통해 그 가능성을 현실로 키웠다.

시장은 이들의 장기적인 판단과 과감한 투자에 세계적인 경쟁력이라는 성과로 답했다.

AI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는 데에도 긴 호흡이 필요하다. 치열한 HBM 경쟁을 이겨내고 데이터센터 투자와 전력 문제를 풀어 실제 수익으로 연결하는 일이 SK의 다음 과제다.

한국 기업도 시장 여건에 맞춰 합작과 인수, 제휴를 선택해야 한다. 그 판단을 뒷받침할 기술과 인재를 축적하고,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는 경기의 부침에도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기업의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고 그 책임은 기업과 주주에게 돌아간다. 결과는 시장이 평가한다.

SK의 세계전략은 기업가정신이 세계적인 성취로 이어진 과정이다. 최종현 회장이 품었던 반도체의 꿈은 최태원 회장의 결단과 투자를 거쳐 세계 HBM 선두라는 현실이 됐다.

미래를 내다보고 사람과 지식을 키우며 과감하게 도전하는 '최종현 정신’은 오늘의 SK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정신은 이제 AI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