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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정책의 전환: 보호에서 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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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_제258호.pdf

요약


중소기업 정책은 보호와 보조금 중심에서 벗어나 생산성 제고와 성장지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2023년 제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1/3 수준에 그쳐, 중소기업 문제의 본질이 단순한 규모의 열세가 아니라 생산성 격차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책자금, R&D 지원도 단순 생존 지원이 아닌 기술혁신, 자동화, 디지털 전환, 시장확대와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중소기업을 약자로만 보는 정책에서 벗어나 노동유연성·규제완화·스케일업 환경을 조성하고, “얼마나 많이 지원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강한 기업을 만들었는가”로 정책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한국 경제의 기반이다. 기업 수와 고용 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중소기업은 한국경제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중소기업 정책을 논할 때마다 반복되는 접근은 대체로 “작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정부는 정책자금, 보조금, 세제지원, 공공조달, 납품단가 조정, 대기업 규제, 각종 보호장치를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해 왔다. 물론 중소기업은 자금조달 능력이 약하고, 인력 확보도 어렵고, 경기 변동과 거래관계 변화에 취약한 만큼 일정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호가 장기화되고 지원이 관성화되면,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의존하게 된다. 보호는 필요할 수 있지만 보호만으로 기업은 성장하지 않는다. 중소기업 정책의 목표는 작은 기업을 계속 작은 기업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핵심은 생존 지원이 아니라 성장 지원이며, 더 많은 보조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시장 진입을 쉽게 만들고, 기업이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제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최근 제조업 노동생산성 통계는 이 문제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생산성본부의 「2025 제조업 기업규모별·업종별 노동생산성」에 따르면, 2023년 제조업 전체 노동생산성은 2억 1,370만 원으로 전년 대비 5.7% 감소했으며, 대기업 부문은 4억 2,250만 원, 중소기업 부문은 1억 3,850만 원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2.8%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중소기업 문제의 본질이 단순히 규모가 작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격차에 있음을 보여준다. 생산성이 낮으면 임금을 올리기 어렵고,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어렵고, 기술투자를 지속하기 어렵다. 다시 인력난과 기술 부족은 생산성 정체로 이어진다. 중소기업 정책은 이 악순환을 끊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보호, 성장의 사다리로 작동하고 있는가

중소기업 보호정책은 선의에서 출발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자금력이 약하고, 경기침체에 취약하며, 거래관계에서 협상력이 낮다. 그래서 정부는 정책자금 공급, R&D 지원, 공공조달 확대, 불공정 거래 규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기업의 자생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원은 성장의 사다리가 아니라 의존의 울타리가 될 수 있다.

첫째, 보호 중심 정책은 기업의 성장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하에 머무를 때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성장하면 규제와 비용은 늘어나며 지원은 줄어드는 구조라면 기업은 규모를 키우기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성장하는 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지 않는 기업에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구조에서는 경제 전체의 역동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보조금과 정책자금 중심의 지원은 선별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정부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과 시장에서 성공할 기술을 완벽하게 판단하기는 어렵고, 정책 담당자의 판단이 소비자·투자자·기업가가 매일 내리는 시장의 평가를 대체하기도 어렵다. 정책자금은 필요한 기업에 적시에 공급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의 연명을 도와 시장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셋째, 규제보호 역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대기업의 시장진입 제한, 특정 업종 보호, 납품단가의 행정적 조정은 단기적으로 일부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이 기술·품질·가격·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도록 만드는 압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경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강해져야 한다.

지원은 늘었는데 생산성은 제자리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은 생산성 향상이어야 한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중소기업 정책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2023년 기준 제조업 대기업의 노동생산성은 4억 2,250만 원인 반면, 중소기업은 1억 3,850만 원에 그쳤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 추세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0.9% 증가했고, 같은 기간 대기업은 0.7%, 중소기업은 1.1%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중소기업의 증가율이 대기업보다 약간 높아 보이지만, 2011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은 31.2%였고 2023년에도 32.8%에 머물러 수준 격차는 여전히 크다. 이는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양적으로는 확대되어 왔지만 생산성 격차를 구조적으로 줄이는 데에는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며, 생산성은 보조금의 규모가 아니라 기술혁신, 자본투자, 경영 효율화, 인력 운용, 시장 확대, 규제비용 절감이 결합될 때 높아진다.

정책자금, 물고기보다 낚시법이어야 한다

정책자금은 중소기업에 필요하다. 고금리, 내수부진, 수출환경 변화에 직면한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일정한 정책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책자금이 단순한 생존자금으로만 쓰인다면 중소기업의 구조적 경쟁력은 높아지지 않는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을 돕는 것과 성장성이 낮은 기업을 계속 연명시키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경제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이지만, 후자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한다.

정책자금은 “지원 실적”이 아니라 “성장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몇 개 기업에 얼마를 지원했는지가 성과가 되어선 안 된다. 지원 이후 매출이 증가했나, 생산성이 개선되었나, 민간투자를 유치했나, 수출이 확대되었나, 고용의 질이 개선되었나가 핵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이 시장에서 더 강해졌는지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예산 집행으로 끝나고 만다.

특히 제조업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를 고려하면, 정책자금은 단순 운영자금보다 생산성 향상 투자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자동화 설비, 공정혁신, 스마트공장, AI 기반 품질관리, 에너지 효율화, 디지털 전환, 해외 인증, 기술사업화 등 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투자에 정책금융이 연결되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자금을 빌려 버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금을 통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실의 기술이 아니라 시장의 기술이어야 한다

중소기업 R&D 정책도 같은 원칙 위에서 재설계되어야 한다. R&D는 연구실 안에서 끝나는 기술개발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져야 한다. 정부 과제 수행, 보고서 제출, 특허 출원, 시제품 제작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정부 과제 수행 능력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술사업화 능력이다.

제조업의 생산성 격차는 기술 격차와 자본투자 격차를 반영한다. 전자부품·통신, 전기장비, 자동차·트레일러 등 주요 제조업에서 중소기업 생산성이 대기업의 30% 안팎에 머문다는 것은 단순한 지원 부족이 아니라 기술, 설비, 인력, 조직관리, 공급망 지위, 글로벌 판로에서 누적된 차이가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R&D 지원은 과제 선정 중심에서 사업화 성과 중심으로 이동해야 하며, 기술개발 이후 매출 발생, 투자 유치, 글로벌 인증, 수출 계약, 대기업·글로벌 기업과의 공급망 연결 등이 성과지표로 강화되어야 한다. 정부 지원 역시 시장을 대체하는 장치가 아니라 민간투자와 결합해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유연한 노동규제 없인 인력난 해소도 없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인력난이다. 청년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고, 중소기업은 인재를 채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청년들의 눈높이나 기업의 임금 수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중소기업 인력난은 생산성, 임금, 근로조건, 지역, 산업구조, 노동규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이며, 근본 처방은 단순한 채용보조금이 아니라 생산성 제고다. 기업이 성장하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임금도 오르고, 근로환경도 개선되며, 인재 유입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노동규제가 경직되어 있으면 중소기업은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잃는다. 대기업에 맞춰 설계된 획일적 노동규제가 중소기업에는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52시간제, 최저임금, 중대재해처벌법, 각종 노무관리 의무는 그 취지와 달리 중소기업에 상당한 행정·비용을 준다. 근로자의 안전과 권익도 중요하나, 모든 기업에 동일한 방식으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기업 규모, 업종 특성, 지역 여건, 인력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대기업을 때린다고 중소기업이 살아나지 않는다

중소기업 정책에서 반복되는 유혹 중 하나는 대기업을 규제하면 중소기업이 살아날 것이라는 착각이다.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는 엄정히 다뤄야 한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부당한 거래조건 강요는 시장경제 원칙에도 어긋난다. 자유로운 시장은 계약과 재산권, 공정한 거래질서를 보호할 때 작동한다.

그러나 불공정 행위의 시정과 대기업 때리기는 구분되어야 한다. 대기업을 규제하고,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막고, 대기업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나누는 방식은 중소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생태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많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협력사로 성장하고, 대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해외시장에 진출하며, 대기업과의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역량을 축적한다.

제조업 생산성 격차도 이 점을 보여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큰 업종일수록 단순한 분배나 보호가 아니라 기술 이전, 공급망 고도화, 공동 R&D, 품질관리 역량 강화, 해외시장 진출 지원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은 대기업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강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중소기업 성장, 스케일업으로 풀어야

한국 중소기업 정책의 가장 큰 과제는 스케일업이다. 스케일업 정책은 단순한 창업지원과 다르다. 창업은 늘었지만 성장하는 기업은 충분하지 않고, 지원받는 기업은 많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도약하는 경로가 좁기 때문에 이 병목을 해결하지 못하면 중소기업 정책은 계속 생존지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창업지원이 아이디어와 초기 진입을 돕는 정책이라면, 스케일업은 검증된 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자본, 인력, 기술, 시장, 규제 환경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이다.

스케일업을 위해서는 더 큰 자금, 전문 인력, 해외시장 진출, M&A, 기술보호, 지식재산권 전략이 필요하며, 세제와 금융, 규제, 노동정책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투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기업승계 과정의 과도한 세 부담을 완화하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때 급격히 증가하는 규제와 부담을 완충해야 한다. 특히 가업승계는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기술, 거래관계, 숙련인력, 지역 일자리의 승계 문제인 만큼, 편법 승계나 조세회피는 막되 정상적인 기업승계까지 어렵게 만드는 제도는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정책, 보호의 울타리에서 도약의 발판으로

중소기업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혁신의 주체이고, 고용의 기반이며, 지역경제의 핵심이자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이다. 중소기업을 계속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정책은 보조금과 규제보호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성장의 주체로 바라보면 지원보다 자율, 보호보다 경쟁력, 생존보다 성장, 보조금보다 생산성이 중요해진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대기업의 32.8%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중소기업 문제가 단순한 지원 부족이 아니라 생산성 격차, 기술 격차, 자본투자 격차, 노동시장 경직성, 규제비용, 스케일업 장애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제 중소기업 정책은 “얼마나 많이 지원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강한 기업을 만들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해법은 보조금 확대나 보호규제 강화가 아니라 생산성 제고와 성장환경 조성에서 찾아야 하며, 정책자금과 R&D 지원도 성장할 기업에 흘러가고 기술이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다시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중소기업을 약자가 아니라 성장의 주체로 인정하고, 정부의 보호막보다 생산성·시장진입·스케일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소개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

고광용은 현재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행정학 박사학위 취득 예정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및 광운대학교 정보과학교육원에서 지방자치론, 재무행정론 등을 강의하였고, 고창식품산업연구원에서 지역발전전략 및 지방소멸 대응 정책을 총괄하였다. 현재 한국지역경제학회 이사, 한국공공ESG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중앙·지방정부 간 관계, 지방자치 및 지방재정, 지역발전 정책, 규제 및 공공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