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은 왜 반복되는가: 규제와 구조가 만든 협력의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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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아림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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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소비자는 제품의 가격이 상승해도 유사 제품군의 소비자가가 비슷하면 원가의 상승이 원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대 기업들의 정보 공유 및 가격 왜곡이 그 원인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밀가루, 설탕, 은행 LTV, 인쇄용지, 전분당 등 여러 산업에서 줄줄이 담합이 적발되어 과징금이 부과되었다.
합리적인 수준의 과징금이 부과되고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소비자의 기대와는 달리, 2020년에서 2025년 상반기까지 담합으로 적발된 관련 매출이 90조 이상임에도 부과된 과징금은 약 2조 원에 불과하다. 또 한 번 오른 가격은 쉽게 내리지 않아 실질적인 소비자 후생 개선은 미미하다. 결국, 담합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담합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지금까지와 다른 접근과 대응이 필요하다.
기업이 경쟁하지 않는 이유
기업이 경쟁보다 협력을 선택하는 유인은 무엇일까. 시장 내 과점 체제가 형성되고 진입 장벽이 높을 때 기업은 가격을 낮춰 경쟁하고 성장하려 하지 않고, 다른 기업과 함께 가격을 인상하여 안정적인 이득을 취하려 한다. 특히 설탕, 밀가루 등의 원재료 산업처럼 제품 간 품질 차이가 작으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이때 소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 소모적인 가격 경쟁 대신 협력의 유혹이 증가한다. 현재까지의 낮은 처벌 수위도 담합의 비용보다 이익이 크다는 기업의 계산에 일조한다. 이러한 담합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격 경쟁이라는 시장의 조정 메커니즘이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담합 속 정부 실패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진입 허가제와 가격 규제의 도입은 오히려 담합을 촉진하는 원인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도서정가제는 출판 산업 보호를 위해서 도입되었으나 실제로는 가격 경쟁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정가를 기준으로 할인율을 제한하면 유통 단계의 가격 조정이 어려워져 제지사의 가격 인상 부담이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또한, 정부가 제품의 규격이나 조건을 상세하게 규정하면 기업 간 차별화가 사라진다. 혁신과 차별화가 불필요해진 시장에서 기업은 품질 경쟁 대신 손쉬운 가격 담합을 선택한다.
담합의 균형
사실 시장 경제에서 담합은 불안정한 약속이다. 기업이 모여 담합을 하려 해도, 각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가격을 낮춰 수요를 독점하려는 유인이 있기에 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또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으로 가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하고, 대체재가 있는 경우 소비자의 지불의사 이상으로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가 이동할 위험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시장은 스스로 담합을 깨는 내재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담합은 외부적으로 시장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환경이 형성되었을 때 유지된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거나 진입 시 허가가 필요한 경우와 같이 높은 진입장벽이 경쟁자의 유입을 차단하거나, 정부의 규제 등으로 가격 경쟁 자체가 제도적으로 제한될 때, 역설적으로 담합의 균형이 안정화된다.
담합에 대한 대응
현재 담합에 대한 대응은 대부분 사후적 처벌 위주이다. 과징금 부과와 같은 처벌은 단기적인 억제 효과가 있지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담합을 예방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기업의 담합을 신고하면 감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는 악용되기도 한다.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자진 신고 시 과징금 전액과 형사고발을 면제해 준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담합으로 돈을 벌고 적발될 위험이 커지면 그들이 정한 차례로 자진 신고하여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자진신고로만 감면된 과징금이 근 5년 간 약 3,433억 원이다. 그뿐만 아니라 법인 세탁 문제도 크다. 법인 쪼개기나 법인 신설 시 해당 기업의 담합 적발 전적과 과징금 납부 전적이 없다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담합한 기업도 감면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이미 발생한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 대응의 효과가 미비하다면 예방적 측면에서 담합이 성립할 수 없는 환경이 필요하다. 즉, 구조적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지원하고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는 등 진입 장벽을 낮추어 기존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또한, 관세를 완화하고 수입을 확대하면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어 국내 시장의 경쟁 압력이 증가한다. 무조건적인 개방은 위험하지만, 담합이 반복되는 산업에 대해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담합을 통한 이익을 줄일 수 있다. 즉, 시장이 경쟁을 통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이 조성되면 결과적으로 시장의 메커니즘이 회복되고 소비자의 선택권과 후생도 확대될 수 있다.
결국 담합 문제의 핵심은 경쟁이 저해된 시장 환경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정부는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고 담합 기업에 대한 처벌 및 감시를 강화하되, 장기적으로는 시장으로의 신규 진입 및 수입 확대를 통해 경쟁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동시에 가격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재설계하여 시장의 조정 기능을 회복하도록 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자율 경쟁과 상호 견제 체계가 완성될 때, 담합은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