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싫은 기업들 : `피터팬 증후군`과 규제가 멈춰 세운 성장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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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도현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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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피터팬은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 성장을 거부한다. 그런데, 우리 시장경제 안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관찰된다. 매출이 늘고 사업 규모가 커져 ‘중견기업’이라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기업을 쪼개거나 외형 성장을 인위적으로 늦추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이른바 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이다. 이는 기업가 정신의 부재라기보다, 성장이 곧 ‘혜택의 단절’과 ‘규제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낸 시장의 비극이다.
[성장의 문턱에서 만나는 규제의 절벽]
시장경제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기업의 성장이다.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생산성을 높일 때 자본은 효율적으로 배분되며 국가 전체의 부가 증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수많은 칸막이를 쳐두고 있다. 중소기업 기본법상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할 때 누릴 수 있는 세제 혜택, 금융 지원, 공공조달 우선 참여 등은 무려 수백 가지에 달한다.
문제는 기업이 성장의 문턱을 넘어 중견기업으로 진입하는 순간, 이 모든 지원이 마법처럼 사라진다는 점이다. 단순히 지원이 끊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십 가지의 새로운 규제가 한꺼번에 적용된다.
실제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순간, 기업은 마치 ‘규제 감옥’에 갇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선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누리던 각종 세액 공제 혜택이 줄어든다. 연구개발(R&D) 비용 세액 공제율이 대폭 축소되는 것은 물론, 고용 창출에 따른 법인세 감면 혜택도 대부분 사라진다. 이는 당장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기업의 재무 전략에 큰 타격을 준다.
더 심각한 것은 ‘공정거래법’상의 규제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경우, 매년 복잡한 공시 의무가 발생하며 내부거래에 대한 엄격한 감시가 뒤따른다. 기업이 성장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합병을 시도하려 해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규제 비용 때문에 차라리 규모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 전용 공공조달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환경 규제 등에서도 중소기업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관리 체계와 비용 부담을 요구 받는다. 기업이 성장을 택함으로써 얻는 기대 수익보다, 이러한 규제 준수를 위해 지출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지는 역설적인 구조인 셈이다.
신용분석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를 급격히 높이는 요인이 된다. 성장에 따른 수익 증가분보다 규제 대응 비용과 세제 혜택 소멸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면, 기업 입장에서 성장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피해야 할 재앙’이 된다.
[왜곡된 인센티브가 낳은 비효율적 의사결정]
경제학의 대원칙 중 하나는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중소기업 보호 정책은 역설적으로 기업들에게 “더 이상 자라지 말라”는 강력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들은 어른이 되어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가는 대신, 아이의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해 기업을 인위적으로 분할하거나 설비 투자를 미루는 비효율적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자율 정화 기능은 마비된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계 기업들이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연명하는 사이, 혁신적인 신규 기업들이 진입할 공간은 좁아진다. 또한, 기업이 규모를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할 시기에 ‘우물 안 개구리’로 남는 것을 선택하면서 국가 경제 전체의 잠재 성장률은 잠식된다. 규제가 시장의 시계를 멈춰 세우고, 자본이 '혁신'이 아닌 ‘안주’를 향하게 만드는 셈이다.
[결론: 보호를 넘어 성장을 촉진하는 생태계로]
시장은 결코 규제의 온실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중소기업 육성은 그들이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강소기업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성장이 ‘규제의 덫’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인식될 때, 비로소 기업들은 피터팬의 옷을 벗고 시장이라는 거친 바다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정부의 역할은 특정 규모의 기업을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심판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 단계마다 마찰력을 줄여주는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성장에 따른 규제 급증을 완화하여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부드럽게 안착하도록 유도하는 슬라이딩 다운(Sliding down) 정책을 확대하고, 규모가 아닌 ‘혁신성’과 ‘생산성’에 기반한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들이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업 본연의 야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 시장경제는 다시금 역동적인 성장의 시계추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