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최고가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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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현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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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서울 한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나는 꽤 오래 멈춰 섰다. 생수 한 병 가격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비쌌다. 폭염 속에 수요가 폭발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정부가 생필품 가격 상한제를 검토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처럼 들렸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는 그 순간 조용히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가격을 억누른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모습으로 바뀔 뿐이라는 경고였다.
소비자 최고가격제란 정부가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판매 가격에 법적 상한선을 설정하는 제도다. 공급자가 그 선을 넘어 가격을 받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폭리를 막고 서민 생활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상한선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균형 가격보다 낮게 그어질 때 생긴다. 가격을 누르는 순간, 시장은 정부가 기대한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원리는 단순하다. 가격이 인위적으로 억제되면 공급자는 수익성이 떨어진 생산을 줄이고, 소비자는 싸진 가격에 더 많이 사려 한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쪼그라드는 초과수요 상태가 만들어진다. 재화는 이제 가격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배분된다. 매장 앞 긴 줄, 단골 우대, 운 좋게 일찍 온 사람, 그리고 결국엔 암시장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뀐 것이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역사가 이 구조를 반복해서 증명했다. 1970년대 미국 오일쇼크 당시 연방정부가 치솟는 휘발유 가격에 상한을 설정했다.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주유소 앞에는 수백 미터짜리 줄이 생겼다. 돈이 있어도 기름을 살 수 없었다. 반나절을 기다리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속출했다. 베네수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식료품과 생필품 전반에 광범위한 가격 상한을 적용했다. 처음엔 저소득층 부담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슈퍼마켓 선반은 텅 비었고, 화장지 한 롤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나라가 됐다. 팔수록 손해인 구조에서 공급자들이 하나씩 생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는 임대료 인상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묶었다. 기존 세입자를 지키려는 의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들은 계약 갱신을 꺼리기 시작했고, 시장에 나오는 신규 매물은 줄었다. 규제 밖 신규 전세 가격은 오히려 더 가파르게 뛰었다. 규제 안에 있던 기존 세입자는 잠깐 숨을 돌렸지만,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청년과 이사 예정자들은 더 높은 벽을 마주해야 했다. 보호망의 안과 밖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이 구조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보호 대상인 저소득층이다. 배분 방식이 가격에서 '누가 먼저 왔느냐', '누구를 아느냐'로 바뀌면 정보가 부족하고 인맥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리해진다. 가격은 냉정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평등하다. 돈만 있으면 누구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냉정함을 없앴을 때 남는 건, 더 불투명하고 불평등한 배분 질서인 경우가 많다.
물론 가격 상한이 무조건 나쁜 수단은 아니다. 독과점 담합이나 재난 상황의 가격 폭등 때는 단기 개입이 분명 효과를 낼 수 있다. 핵심은 '단기'라는 단어와, 반드시 함께 가야 할 공급 확대 정책이다. 공공임대 확충이나 생산 인센티브 같은 공급 대책 없이 상한선만 그어놓으면, 규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음 계절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가격이 보내는 신호였다. '지금 이게 귀하다, 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신호. 그 신호를 인위적으로 차단할 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시장경제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가격이라는 신호 체계를 억누른 뒤 찾아오는 고요함은 종종 더 깊은 혼란의 전조다. 착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