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총수 지정, 글로벌 스탠더드와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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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필립 2026-05-06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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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쿠팡의 동일인을 법인에서 미국 국적 김범석 의장 개인으로 변경 지정 / 한 명의 자연인이 기업집단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적 규제 / 지배구조 투명성과 일반주주 보호, 형식적 지위 아닌 '실질적 지배력' 기준으로 전면 재설계하라
지난 4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동일인을 법인에서 김범석 의장 개인으로 변경 지정했다. 2021년 쿠팡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5년 만의 변경이며, 미국 국적의 자연인을 한국 대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한 첫 사례다.
이번 결정은 1986년 도입된 동일인 제도가 2026년의 기업 환경, 글로벌 자본시장과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본질적 개편 없이 유지되어 온 이 제도가 과연 합리적인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시점이다.
동일인 제도는 한 명의 자연인이 기업집단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한국 주요 기업집단 다수가 여전히 가족 지배의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지분 확대, 사외이사 권한 강화, 이사회 중심 경영의 정착,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 확대로 단일 자연인 1인의 의사결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 지배 구조도 빠르게 늘고 있다. 1980년대식 단선적 지배자 모델을 모든 기업집단에 일률 적용하는 방식은 더 이상 현실 정합성을 갖기 어렵다.
또한 동일인 지정제도는 지정 회피에 대한 유인을 형성하여, 의도적 지분 분산, 인위적 계열분리, 가족 구성원의 명목상 거리 두기 등 비정상적 지배구조를 고착시킨다. 시장이 요구하는 효율적 지배구조 개선보다 규제 회피를 위한 구조 변경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규제가 오히려 거버넌스의 후퇴를 부추기는 셈이다.
이번 쿠팡 동일인 변경 지정은 동일인 제도가 글로벌 자본 구조와 만났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정위가 김범석 의장을 자연인 동일인으로 지정한 핵심 근거는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부사장의 '실질적 경영 참여'였다. 김 부사장은 공정거래법상 임원이 아니고 한국 계열사 지분도 없지만, 공정위는 그가 부사장급으로 쿠팡 내 최상위 등급에 해당하고, 보수와 비서 배치 등 처우가 등기임원에 준하며, 물류·배송 관련 회의를 수백 차례 주재하고 자회사 대표를 소집해 실적을 점검했다는 점 등을 들어 '경영 참여'를 인정했다.
여기서 제도의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쿠팡Inc는 한국 쿠팡 법인을 100% 소유하고, 한국 쿠팡 법인은 자회사·손자회사를 100% 소유하여 지배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하다. 한국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김 의장과 친족은 사익편취의 통상적 경로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것은 친족의 '사실상의 영향력'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동일인 제도가 본래 지분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설계되었음에도, 정작 지분이 없는 관계자까지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보수 책정이나 인사권을 통한 우회적 가치 이전 가능성까지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이미 미국 자본시장의 SEC 특수관계자 공시, 내부자거래 규제, 이사회 신인의무 체계가 견제하고 있는 영역이다. 한국 동일인 제도가 그 위에 별도 잣대를 외삽 적용하여 새로 잡아내는 위험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는 단일 지배자 가정의 한계와 자의적 적용 가능성이라는 동일인 제도의 두 가지 구조적 결함이 외국기업 단계에서 동시에 폭발한 사례로 읽힌다. 지배구조가 단순할수록 적용 근거는 모호해지고, '경영 참여'라는 추상적 잣대가 동원되면서 법적 명확성이 훼손된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수단이 효과적이지 않다면, 그 제도는 비용만 발생시킬 뿐이다. 대기업집단이 부담하는 막대한 공시·법무·컴플라이언스 비용은 결국 주주 가치와 소비자 후생을 갉아먹는다. 동일인 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다. 미국은 5% 이상 지분 보유자에 대한 SEC Schedule 13D 공시, EU는 수익적 소유자(beneficial ownership) 등록부, 일본은 주요주주 보고제 등 각자의 방식으로 지배구조 투명성과 일반주주 보호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자연인을 중심으로 관련자 범위를 일률적으로 묶어 행정 지정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예외적 접근이다.
전문경영체제·글로벌 자본시장의 시대에 1980년대 산업구조 위에 세워진 제도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점은 자명하다. 쿠팡 사례가 보여주듯, 지엽적 손질에 그치는 미봉책으로는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해법의 방향은 분명하다. 동일인 제도를 폐지하고 지배구조 투명성과 일반주주 보호는 회사법·자본시장법·공시제도의 정상적 채널로 이관하거나, 유지한다면 형식적 지위가 아닌 '실질적 지배력' 기준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낡은 잣대로 현대 기업을 재단하는 한, 한국 자본시장의 도약은 요원하다.
정필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