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위기 대응 추경, 목적의 선명성 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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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왕호준 2026-04-17 , 시장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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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위기 대응’ 선심성 예산 통로가 된 추경 / 국회 심의 협상서 끼어든 민원성 예산도 / '재정 기준 법제화’ 등 추경 요건 엄격히 제한해야
중동발 위기 대응을 이유로 한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제 정세 불안과 에너지 위기 속에서 정부가 대응에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곧바로 추경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번 추경이 고유가 대응이라는 출발점에서 벗어나 점차 선심성 지출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추경은 본래 긴급성과 명확한 목적이 전제된 예외적 재정 수단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이러한 추경이 매년 반복되며 사실상 상시적인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다양한 정책을 포괄하는 '확장된 예산 통로’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회 심의 과정 역시 이러한 문제를 걸러내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추경은 긴급성을 이유로 짧은 기간 안에 처리되고, 여러 부처 사업이 한꺼번에 묶여 심사되는 패키지 구조를 가진다. 이 과정에서 개별 사업의 목적 적합성보다는 정치적 합의와 조정이 우선되면서, 본래 추경 요건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뤄지기 어렵다.
이처럼 검증이 어려운 구조 속에서 추경은 점점 예산 증액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민생지원, 산업지원, 지역 재정까지 다양한 사업이 포함되면서 정책의 경계는 흐려진다. 그 결과 추경의 목적 자체가 점차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한 현금 지원은 피해 여부와 무관하게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 위기 대응 원칙과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돌봄, '지역사랑 반값휴가’와 같은 사업뿐 아니라 면세유 보조금까지 포함되면서 지원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더 나아가 창업·문화·스마트공장 예산까지 포함되면서 추경이 선심성 예산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추경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재정은 선택이 아니라 분산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정책 효과를 떨어뜨리고, 추경이 정치적 유인에 반응하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을 키운다. 이처럼 추경의 범위가 넓게 퍼질수록 위기 대응이라는 본래 목적은 약해지고, 정치적 고려가 개입할 여지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 추경에서 반복되어 온 민원성·선심성 예산 편성 관행과도 맞닿아 있다. 개별 사업의 필요성보다는 '포함 여부’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되면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오히려 다양한 예산이 추가로 끼어들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한편 이번 추경은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재정 확대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추진됐다는 점에서도 특징적이다. 이는 재정 여유가 발생할 경우 해당 재원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함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추경이 남긴 문제는 분명하다. 중동발 고유가 대응이라는 목적에서 출발한 추경이 국회 심의와 정치적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선심성 예산으로 확장되는 전형적인 경로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추경 편성 사유를 보다 엄격히 제한하고 국가재정법에 초과세수 발생 시 지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기준을 법제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