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방소멸 대응’ 중앙 통제 없애고, 지자체가 권한‧재원 가져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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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진혜원 2026-03-31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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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과감한 실험 설계보다 중앙의 기준에 맞춘 사업 계획서 작성에 행정력 소모
중앙은 목표만 제시하고, 수단은 지방이 설계하도록 해야 진정한 분권 이뤄져
덜 통제하고, 더 맡기고, 성과에 책임을 지게 하는 시장경제 원리가 해답
지방소멸의 시계추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연간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갇혀 있다. 재정은 내려보냈지만, 권한은 내려보내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기금 운용 방식은 지방이 스스로 성장할 '근육’을 키우기보다, 중앙 평가에 의존하는 '보조금 체질’만 고착시키고 있다. 현재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이름만 기금일 뿐, 실질적으로는 중앙정부가 용도와 평가권을 쥐고 있는 특별양여금에 가깝다.
지자체는 지역의 산업 구조와 시장 여건에 맞는 과감한 실험을 설계하기보다, 중앙의 평가 기준에 맞춘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행정력 소모한다. 이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평가 대응 경쟁’일 뿐이다.
이러한 구조는 지방의 자율성과 기업가 정신을 억제하고, 전국을 획일적인 정책 실험장으로 만든다. 실패의 책임은 지방이 지지만, 선택의 자유는 중앙이 쥔 구조에서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안전한 선택뿐이다.
기업 유치나 산업 전환처럼 불확실하지만 잠재력이 큰 시도는 배제되고, 탈락을 피하기 위한 무난한 사업만 양산된다. 그 결과 지역 간 차별화는 사라지고, 어디를 가도 비슷한 사업만 반복된다.
10년 한시 기금이라는 구조 역시 문제다. 매년 반복되는 성과 평가와 단기 실적 압박은 지방을 장기 투자 대신 즉각적인 가시 성과로 몰아넣는다. 산업 생태계 구축에는 시간과 실패를 감내할 여유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그런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기금은 토목 공사나 일회성 행사, 소규모 보조사업으로 흩어지기 쉽다.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의 엔진을 만들어야 할 재원이 '보여주기식 성과’로 소진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 관점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인구 유입 수치에 집착한 평가 방식으로는 기업의 실제 이전이나 정착을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 부담, 노동시장 경직성, 입지 비용, 인력 수급 등 기업이 체감하는 핵심 변수는 그대로 둔 채, 재정만 투입하는 방식은 시장 논리를 외면한 접근이다.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르지 않다.
참여 유인의 부재도 심각하다. 인구감소지역이나 관심지역이 지방소멸 대응에 적극 나설 동기가 부족하다. 기금이 일회성 현금 지원에 머무는 한, 민간 투자를 끌어내는 신호로 작동하기 어렵다.
산업 기반의 구조적 변화 없이 보조금만으로는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만들 수 없다. 이제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지방을 돕는 수당’이 아니라, '지방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권한’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배분 구조를 기본분과 성과 인센티브로 단순화하고, 중앙정부는 세부 용도 규제를 과감히 풀어 블록그랜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앙은 목표만 제시하고, 수단은 지방이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분권이다.
특히 기금을 지방세원 확충이나 자치 권한 강화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 재정 이전만으로는 책임 있는 정책 선택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성과가 세수와 재정 자율성으로 연결될 때, 지방은 비로소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과 기업을 유치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평가 방식 역시 시장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GRDP(지역내총생산)과 생활인구 증가, 민간 투자 유치, 지속 고용 창출, 지방세수 증가 등 객관적 결과 지표에 연동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사전 통제와 세부 설계가 아니라, 사후 감사와 데이터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정책 선택과 실패의 책임은 지방에 맡기되, 그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전국이 학습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이 중앙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기금 사용의 우선순위는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보강’에서 '산업 생태계 인프라’로 이동해야 한다. 공원과 보도블록이 아니라, 지역 생산성과 고용을 만들어내는 엔진에 투자해야 한다. 규제 특례가 결합된 산업단지, 정주형 일자리 모델, 지역 대학과 연계한 기술 인력 양성, 물류·데이터 인프라 강화 등이 그 출발점이다.
폐교와 유휴부지를 공공이 직접 운영하기보다, 민간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임대형 창업 공간으로 전환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관 주도의 경직된 운영을 줄이고, 민간의 혁신과 자본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오게 해야 한다.
지방을 살리는 길은 중앙이 더 설계하는 데 있지 않다. 덜 통제하고, 더 맡기고, 성과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그것이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하는 지방소멸 대응이다.
진혜원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