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산취득세` 도입 무산,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국민 희망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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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수빈 2026-02-26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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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은 만큼 세금내는 유산취득세 국회 반려, 조세 정의 뒷전으로 밀려나
상속세 일괄공제 한도 28년째 10억 원, 물가와 자산가치 상승으로 상속세 대상자 증가
상속세, 중산층으로 올라갈 사다리 걷어차, 유산 총액에 세금 매기는 나라 OECD 중 4곳 뿐
건전한 부의 축적, 계층 이동 희망 열어주는 유산취득세,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2025년 3월, 기획재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유산취득세’ 도입이 끝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국회가 세수 감소를 이유로 반려하면서 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조세 정의’는 또 한 번 뒷전으로 밀려났다.
유산취득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총액에 세금을 매기는 현행 유산세 방식과 달리, 상속인 각자가 실제로 물려받는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하는 제도이다. 증여세와 같이 '주는 사람’ 기준에서 '받는 사람’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형평성을 재고하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골자였다.
하지만 국회의 반대로 세제 개편이 무산되면서 애꿎은 중산층만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25년 12월 기준 15억 원을 돌파하였으나, 상속세 일괄공제 한도는 28년째 10억 원에 묶여 있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사실상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가와 자산 가치는 치솟았는데 상속세 과세 기준은 상향되지 않으면서 상속세 대상자는 증가하고 있다.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 세금이 아니라 중산층의 세금이 되었다. 세제 개편이 속행되지 않는다면, 상속세는 중산층으로 올라갈 사다리를 걷어차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현행 과세 방식은 전 세계적 흐름과도 정반대에 서 있다. OECD 회원국 중 상속세가 있는 24개국 가운데, 한국처럼 유산 총액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국가’는 미국, 영국, 덴마크를 포함한 4곳뿐이다. 반면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다수 선진국은 물려받은 만큼 내는 '유산취득세’를 선택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조세의 기본 원칙인 조세공평주의에도 어긋난다. 예를 들어, 외동 자녀가 10억 원을 상속받는 경우와, 5남매가 총 50억을 상속받아 각자 10억 원씩 나누어 갖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개인이 받는 돈은 10억 원으로 똑같지만, 현행 세법상 5남매는 외동 자녀보다 약 4배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세율 또한 징벌적 과세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인 15%의 3배가 넘는다. 평생 소득세를 납부하며 일군 재산에 대해 사망 시 국가가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것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이자, 사실상 이중과세이다.
유산취득세 도입은 부의 분산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유산취득세에 따르면 재산을 여러 명에게 나눠줄수록 각자의 과세표준이 낮아져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현행 세제의 경우 전체 유산에서 공제 합계를 일괄 차감하여 특정 상속인의 공제를 다른 상속인이 받는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면 공제의 실효성을 개선할 수 있다.
이제는 세수 감소라는 핑계를 멈추고 원칙으로 돌아갈 때다. '받은 만큼 낸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 바로 설 때,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수용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세수 감소의 대안을 마련하고,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속세가 중산층으로 도약하려는 이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의 과도한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상속세 본연의 취지가 성실히 쌓아온 서민들의 성취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다. 건전한 부의 축적을 인정하고 계층 이동의 희망을 열어주는 유산취득세로의 세제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박수빈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