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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는 자기의 구독자 기반을 좁히려고 한다

글쓴이
랜들 G. 홀콤 2026-01-02

나는 30년 이상 동안 ≪뉴스위크(Newsweek)≫를 구독했다. 나는 1970년대에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부분적으로는 (거기에 많은 선택이 있는) 그 주의 뉴스를 요약하는 잡지를 원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뉴스위크≫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월 1회 칼럼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내가 구독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뉴스위크≫에서 소위 리버럴 편향(liberal bias)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하기야 나는 1980년대 초에 종종 잡지의 보도가 경제학을 논리적으로 옳게 파악한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점을 정말 상기하긴 한다. 예를 들면, 레이건이 당선된 직후, 레이건의 규제 해제 때문에 에너지 가격들이 하늘 높이 치솟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표지 기사를 나는 상기한다.

그 해들이 지나감에 따라, 나는 ≪뉴스위크≫의 보도에서 리버럴 편향을 더욱더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편향이 커졌기 때문이거나, 아마도 내가 더 지각하게 되었기 때문이거나, 아마도 내가, 리버럴 편향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것들을 보는 경향이 있는, 우익 괴짜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심지어 리버럴 편향을 인식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뉴스위크≫를 읽기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내게, 내가 가진 것들과 똑같은 견해들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사고에 대한, 몇몇 통찰을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뉴스위크≫는 뉴스를 보도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들은 잡지가 도달할 때까지는, 모든 사람이 이미 그것을 하여간 알고, 그래서 자기들이 이제 논평에 집중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의 리버럴 편향은 더욱더 드러나는 것 같다, 어제 나의 우편함에 나타난 이 주의 호는 잡지의 리버럴 편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그것을 바로 표지에 둔다.

표지는 명백히 앨 고어(Al Gore)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3-1727]을 대비하기 위해, 사과가 고어의 머리에 떨어지는 고어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하기야 아이작 경이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그가 전혀 노벨상[1901년부터 시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유가 미흡하긴 하다.

표지에 있는 제목은 “생각하는 사람다운 생각하는 사람: 지구를 위한 앨 고어의 새 계획(THE THINKING MAN’S THINKING MAN: AL GORE’S NEW PLAN FOR THE PLANET)”이라고 씌어 있다.

나는 당신에게 내가 이것에 얼마나 많은 방식으로 화가 나는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먼저, 중앙 계획의 회의론자로서, 나는 어떤 “지구를 위한 계획”도 자동으로 의심한다. 그것을 넘어, ≪뉴스위크≫는 왜 앨 고어가 세계 계획에 착수할 어떤 지위라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할까? 그래, 그래, 나는 그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것 외에는, 그는, 우리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계획을 꾸밀 지위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그 밖의 어떤 사람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과 같은, 행성 지구의 수십억 시민 중 그저 한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다음, 그가 “생각하는 사람다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나더러 멈추어서, 그 경우에,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범주에 포함되기를 원하는지 숙고하게 한다.

여러분 중 일부는 여기서 나의 폭언이 그저 신 포도 사례일 뿐이라고, 그리고 내가 앨 고어를 시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약간 인정하겠다. 앨 고어는 큰 저택에 살고 자기의 다양한 강연 약속에 가는 데 전용기를 조종한다. 나는 실은 잠시 나의 생애 야망 중 하나가 앨 고어의 것만큼 큰 탄소 발자국을 가지는 것이었다는 점을 자백하는데, 하기야 나는 내가 그것을 절대 실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앨 고어는 유명한 저자이고, 내가 몇 권의 책을 썼지만, 아무도 그것들에 관해 알지 못한다. 더 많은 시기심이다. 그리고 그다음 그 노벨상이 있다. 경제학이라는 나의 분야에 수여되는 노벨상도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나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바깥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래, 아마도 이 주 ≪뉴스위크≫ 표지 기사에 대한 나의 반응 일부는 시기심 때문일 것이다.

지나간 해들에 그 매체의 리버럴 편향은 뉴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가장하여 제공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앨 고어의 새 책이 있다. 우리는 그것이 말하는 것을 당신에게 보도할 것이다, 라며. 명백히, ≪뉴스위크≫는 고어가 논의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 것이지만, 표지는 그를 “생각하는 사람다운 생각하는 사람”으로 선언하고, 그의 책에 관한 이야기의 제목은 “친환경 예언자의 진화(The Evolution of an Eco-Prophet)”이다. 객관적인 보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뉴스위크≫는 명백히 자기의 리버럴 편향을 자기 독자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그래, 우리는 리버럴 편향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그것이 자랑스러워!”라며.

≪뉴스위크≫는 더는 뉴스를 보도하지 않고, 수십 년간 밀턴 프리드먼의 칼럼을 게재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의 구독을 소멸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은 독립 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 선임 연구위원,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드보 무어(DeVoe Moore) 경제학 교수, 그리고 독립 연구소 책 ≪위험에 처한 자유: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권력(Liberty in Peril: Democracy and Power i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
원문은 https://www.independent.org/article/2009/11/06/newsweek-tries-to-narrow-its-subscriber-base/에서 읽을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