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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합 사고방식은 당신을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6-01-02

스탠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패트리샤 앤드루스 피어런(Patricia Andrews Fearon)과 프리드리히 M. 괴츠(Friedrich M. Götz)는 “영합 사고방식(The Zero-Sum Mindset)”(https://pubmed.ncbi.nlm.nih.gov/39570690/)이라는 제목을 가진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그들은 10,000명 참가자를 가지고 여섯 개 나라에 걸친 아홉 개 연구의 결과들을 제시한다. 그들은 영합 사고방식을,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 자동으로 당신의 희생에서 생기고, 당신의 실패가 그들의 성공인, 성공에 관한 정신적 관념으로 정의한다.

그러한 상황들은 삶에서 정말 존재한다−테니스 경기가 한 예다: 만약 당신이 이기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이 져야 한다. 그러나 재화들의 자발적인 교환, 즉 거래에서와 같이 양쪽 다가 이기는 수많은 다른 상황이 있다. 피어런과 괴츠는 “영합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상황들을, 설사 그것들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영합 게임들로 해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심각한 함의들을 지니고 있는데, 왜냐하면 영합 사고자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이 가정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추구하는 것들 같은, 보호무역주의 정책들이 이것의 한 예다.

반자본주의자들은 경제가 영합 게임이라고 믿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이 사고를 자기의 시 “알파벳(Alfabet)”에서 고전적으로 공식화했는데, 거기서 두 사람은−한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다−얼굴을 마주한다:

“가난한 사람이 씰룩거리며 말했지,
'내가 가난하지 않으면, 당신이 부유하지 않으리.’”

이것은 반자본주의자들이 경제생활을 마음속에 그리는 방식이다. 그들은 부유한 나라들이 자기들의 부 일부를 가난한 나라들과 나누어야 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많은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오로지 부자들의 이기심과 호의 결여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더 이른 사회들에서, 부는 종종 강도질에 기초하였다−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부유하게 되었다. 대조적으로, 시장 체제는 다른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많은 소비자의 필요들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된다. 그것은 시장의 근본적인 논리이다.

영합 경제의 (잘못된) 생각은 최근 몇십 년간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 진전을 분석함으로써 틀렸음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의 도래 이전에,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극빈 상태에서 살았다−1820년에, 그 비율은 90퍼센트였다. 오늘날, 그것은 약 10퍼센트(만약 세계은행이 최근에 자기의 계산 방법을 수정하지 않았더라면 더욱더 낮을 숫자−6.5%)로 떨어졌다.

가장 뚜렷하게, 중국과 그 밖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계획 경제들의 몰락 이래로, 빈곤은 인간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속도로 떨어졌다. 1981년에, 세계 빈곤율은 42.7퍼센트만큼 높았지만, 2000년까지는 그것은 27.8퍼센트로 떨어졌었고, 2025년까지는 그것은 10퍼센트였다. 동시에, 억만장자들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했다.

중국이 한 예다: 1958년과 1962년 사이, 4,500만 중국인이 역사상 가장 큰 사회주의 실험, 마오의 “대약진 운동(Great Leap Forward)” 동안 굶어 죽었다. 마오의 사망 몇 년 후, 1981년에, 중국 인구의 88퍼센트는 여전히 극빈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1980년대 초기에 덩 샤오핑이 개시한 시장 경제 개혁들 덕분에, 중국에서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비율은 이제 1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억만장자들의 수는 0에서 500명 이상으로 상승했다−오직 미국만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영합 사고자들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그렇게 빠르게 떨어짐과 동시에 부유한 사람들의 수가 그렇게 빠르게 상승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영합 게임으로서 무역의 개념도 역시 틀렸다. 애덤 스미스는 무역이 영합 게임이 아닌데, 왜냐하면 전문화와 분업이 전반적인 생산을 늘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이 통찰을 더 전개했는데, 비교 우위의 원리를 공식화하고, 덜 효율적인 나라조차도 만약 그것이 자기가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재화들을 생산하는 데 전문화한다면 무역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이다.

영합 사고방식이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과 적의를 보강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결국, 부자들의 부 증가가 자동으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상황의 악화로 끝난다고 믿는 누구든 빈곤에 대한 투쟁을 부자들에게 적대하는 혹은 “재분배”를 지지하는 투쟁과 같은 뜻으로 인식할 것이다.

시기심과 영합 사고 사이 연결은 입소스 모리(Ipsos MORI)가 나를 위해 13개 나라에 걸쳐 집행한 설문 조사로 확증되었다. 응답자들은 부와 부자들에 대한 자기들의 태도들을 평가하는 일련의 질문을 받았다. 이것들은 사회적 시기심 지표들로 이바지하는 여러 질문을 포함했다. 그 연구(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ecaf.12633)에 따르면, 사회적 시기심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보급되었고, 독일이 뒤를 이었다. 대조적으로, 폴란드, 일본, 그리고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현저하게 더 적은 시기심을 보여주었다. 단일 문장에서 영합 사고방식을 요약하는 진술문을 가지고 응답자들에게 제시된 설문 조사 항목 중 하나: “부자들이 더 많이 가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적게 남는다.” 이것과 여러 다른 질문에 기초하여, 연구는 “시기자들(enviers)”과 “비시기자들(non-enviers)”을 구별할 수 있었다. 뚜렷하게, 모든 13개 나라에서, 시기자들은 비시기자들보다 위의 영합 진술문에 훨씬 더 빈번하게 동의했다. 이 상관관계는 설명하기 쉽다: 부자들이 자기들의 부를 오직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만 얻었다고 만약 어떤 사람이 믿는다면, 시기심은 거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이 칼럼은 2025년 12월 18일에 작성된 사설란 반대쪽 특집면 기사이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 베트남, 폴란드, 그리고 번영의 기원(How Nations Escape Poverty: Vietnam, Poland, and the Origins of Prosperity)≫(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830632)과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The Power of Capitalism)≫(https://the-power-of-capitalism.com/)의 저자이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