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는 지난 코비드 팬데믹 이후 지속적인 유동성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맞물려 유례없는 물가 상승에 직면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22.2%, 생활물가지수는 25.6%나 급등했다. 특히 서민 생활과 직결된 식품 물가는 34%나 치솟으며 가계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갉아먹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물가 상승을 틈타 납세자의 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털어가는 ‘물가증세(Inflation Tax)’ 현상이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증세의 덫, 물가 증세란 세율을 인위적으로 올리지 않았음에도, 물가 상승으로 명목 소득이 오르면 납세자가 더 높은 과표 구간으로 진입하게 되어 실질적인 세 부담이 가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 종합소득세 과세표준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 때 최고구간을 점차 확대하고 고소득자 증세를 추진한 반면, 윤석열 정부 때 최하 1~2구간의 과표기준을 상향해 물가 상승을 과표에 미진한 수준에서 반영해왔다. 그럼에도 현행 종합소득세 기준은 전체적으로 물가와 연동되어 있지 않은 고정적 과표와 세율 체계를 갖고 있다.
실제로 2020년 대비 2025년 월평균 가계 명목 처분가능소득은 약 50만 원(약 14%p)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약 7만5000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는데, 고정된 과세표준 탓에 세금만 더 내게 되는 ‘조용한 약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연봉 6400만 원이었던 직장인의 경우 2025년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물가지수와 명목 소득 증가분을 각각 반영하면 세금이 각각 약 1.2배, 1.35배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정체된 과세표준 체계하에서 지난 8년 동안 소득세 과세 인원은 약 1.8배, 근로소득세수는 35조1000억 원에서 64조2000억원 원으로 폭증했다. 정부가 법을 바꾸지 않고도 물가 상승을 등에 업고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인 셈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인 ‘물가연동세제’ 도입이 시급하다 자유기업원은 시장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는 이러한 구조적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 ‘물가연동세제’의 즉각적인 도입을 요구한다.
‘물가연동세제’란 과세표준 구간이나 각종 공제액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이다. 이미 미국(1981), 캐나다(1973), 프랑스(1969) 등 OECD 38개국 중 22개국이 이 제도를 시행하며 물가 상승으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물가 연동 소득세제가 도입될 경우, 연봉 6400만 원 수준의 소득자는 적게는 약 40만 원에서 많게는 약 100만 원가량의 세금경감 효과를 얻게 된다. 이는 고물가 시대 직장인들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보전하고 소비 활력을 불어넣는 가장 확실한 민생 대책이 될 것이다.
상속세 또한 개편이 필요하다. 현행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재산 총액에 과세하는 ‘유산과세형’으로, 상속인 개개인이 실제 받은 금액과 상관없이 고율의 세금이 매겨져 형평성 논란과 이중과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실제 취득한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이 요구된다. 나아가 상속세 과표 역시 물가에 연동함으로써, 자산 가치의 명목적 상승이 징벌적 과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정부가 비대해진 세수에 안주하지 말고, 물가연동세제 도입을 통해 조세의 중립성을 회복하고 국민의 실질소득을 보호할 것을 제언한다. 세금은 징벌이 아니라 공정한 규칙에 근거해야 하며, 그 규칙의 중심에는 변화하는 물가라는 현실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