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통화 시대, 한국은 어떻게 `스테이블코인 주권`을 지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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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성준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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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지갑 속 지폐가 사라지고, 대신 스마트폰 화면에 찍힌 '디지털 코인'만이 유일한 돈이 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미 토스나 카카오페이 덕분에 현금 없는 삶에 익숙해졌지만, 지금 금융계에서는 이 디지털 화폐의 '주권'을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의 주역은 민간에서 급성장한 ‘스테이블코인’이다. 가치가 법정화폐에 고정되어 안정적이고 블록체인 기반이라 효율적이라는 장점 덕분에, 가상자산 거래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된 비중은 2017년 12월 7.9%에서 2025년 5월 중 84.0%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이 전통 화폐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민간 디지털 화폐의 확산은 우리에게 심각한 숙제를 던진다. 바로 '통화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현재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대다수가 미국 달러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준비자산 운용 역시 달러 자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폭발적인 성장은 시장의 수요와 효율성이 만들어낸 결과이지만, 그 구조는 우리 경제에 위험을 초래한다. 첫째, 막대한 달러 의존도이다. 2025년 1/4분기말 기준으로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중 무려 81.5%가 미 국채로 운용되고 있다. 이들이 막대한 양의 미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면서 전통 금융시스템과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쓰일수록 달러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심화시켜 국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둘째, '디지털 뱅크런' 위험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는 가격 효율성을 높일수록 금융 안정성이 낮아지는 상충관계가 나타난다.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기준 가격($1)을 벗어나는 디페깅 위험은 차익거래자의 활동으로 완화되지만, 차익거래가 활발할수록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행자에게 신속하게 전달되어 런 위험은 증가하게 된다. 이는 민간 기업의 신뢰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시장 실패 가능성을 내포함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여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통화 주권을 지키는 해법을 찾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CBDC 논의와 함께,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규율된 화폐'로 제도화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자 논의를 진행 중이다.
그 논의 내용으로는 우선, 준비자산 규제 강화를 통해 시스템의 신뢰 높이기가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에게 1:1 이상 담보 의무화를 부과하고, 준비자산의 일정 비율을 현금, 예금 또는 고유동성 자산으로 구성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조치는 대규모 상환 요구를 통제하여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다음으로, 이용자 보호 및 감독을 강화한다.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액면가 상환 청구권을 명문화하고, 발행인의 재무 상태 악화 시 대비해 준비자산에 대한 우선 변제권을 인정하여 투자자를 보호하려 한다. 또한, 금융당국에 발행인에 대한 인가 방식의 자격 부여 및 감독 권한을 부여하여, 통화 질서의 공공적 효율성을 유지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통화 정책 유효성 확보를 위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수행 및 금융안정을 위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 권한 부여를 검토하는 등 통화 정책 유효성 제약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다가온 디지털 혁신이다. 그러나 그 혁신의 물결 속에서 주권 국가는 자국 통화의 지위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포기할 수 없다.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노력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금융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적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다. 즉, 민간의 효율성은 최대한 살리되, 신뢰라는 공공재를 확보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다. 이 노력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 우리는 달러에 흔들리지 않고 가장 효율적이고 신뢰받는 원화 기반 디지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