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 경제학: 청춘의 시간과 시장의 논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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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여원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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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낭비인가 투자인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동기들 사이에서 해외여행은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속에는 친구들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가득하고, 항공권 특가 소식에 단톡방이 들썩인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해외여행이 돈 낭비라고, 차라리 그 돈을 저축하라고 말한다. 과연 해외여행은 낭비일까, 경험일까. 나 또한 첫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깨달았다. 여행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그 속에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경제 주체로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항공권 특가 속 수요와 공급의 법칙>
항공권 가격은 출발 시기와 요일, 예약 시점에 따라 아주 크게 바뀐다. 비행기 좌석 수에 해당하는 공급은 늘 정해져 있지만 성수기인 방학과 연휴 기간에는 항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는 것이다. 반면 새벽 시간대나 비수기에는 좌석이 남아 가격이 내려간다. 내가 종강 직전 항공권을 예매하려다 평소보다 40%나 비싼 가격에 놀랐던 경험 역시,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따라서 비행사는 이러한 가격 변동을 예측해 미리 '가격 차별화 전략’을 사용한다. 조기 예약 할인이나 깜짝 특가 등이 바로 이를 이용한 시장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의 기회비용>
내가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내가 이번 여행으로 인해 무엇을 못 하게 될까?’라는 고민이다. 나의 200만 원은 그냥 여행 비용이 아니라 내가 그 돈을 저축하거나 다른 곳에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선택지의 '기회비용’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해외여행을 선택함과 동시에 그 시간과 돈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자격증 공부나 인턴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외여행이 단순한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경험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토지와 같은 물적 자본보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성장한 사람의 인적 자본이 훨씬 중요하다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의 말에 완전히 동감하기 때문이다. 훗날 고등학교 교사를 꿈꾸는 내게, 새로운 문화와 언어 속에서 배우는 경험은 내가 추구하는 교육에 다가서는 일종의 장기적 투자로 볼 수 있다.
<관광지의 가격 책정과 심리경제학>
파리의 카페, 로마의 굿즈샵, 도쿄의 편의점은 여행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그저 물건을 파는 가게 이상의 '경험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들은 이러한 여행자의 심리를 잘 알고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에스프레소 한 잔도 관광지 중심부와 교외 지역의 가격 차이는 2배 이상 벌어진다. 그럼에도 실제로 팔리는 잔의 수는 관광지 중심부가 훨씬 높다. 왜 그럴까? 이는 심리경제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관광지 중심부에 온 여행자는 “여기까지 여행을 왔는데 이 정도는 괜찮다.”라는 생각에 비교적 가격에 덜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이윤을 극대화한다.
<여행의 매몰 비용>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지출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는 금전적 비용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비싼 가이드 투어가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우리는 이미 돈을 냈다는 이유로 끝까지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돈이 아까워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시간까지 버리는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매몰 비용 오류’의 예이다. 분명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손해를 최소화해야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출한 비용 때문에 오히려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리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경험 역시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비효율성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이러한 잘못된 결정이 다음에 할 선택의 기준과 목적이 된다.
<결론: 미래를 위한 투자, 해외여행>
결국 여행은 단발적인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매몰 비용 등 경제 원리가 여행 곳곳에 숨어 있지만 진정한 가치는 그 너머에 존재한다. 경제적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돈 낭비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 여행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 가깝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 대학생 시기에 나만의 기준과 계획에 맞추어 소비하고, 새로운 문화 속에서 실패하고 하는 해외 여행 경험을 쌓아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