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상장사 합병 시 공정가액 적용, 시장의 자율성과 구조조정 유연성을 해칠 위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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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유기업원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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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이 상장사 합병 시 기존의 시장가격 대신 자산·수익 등을 반영한 '공정가액’을 의무 적용하도록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겉으로는 소액주주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합병과 구조조정을 더욱 경직시키고 민간의 판단을 정부 규율 아래 두려는 조치에 가깝다.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법률이 정하는 공식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주가가 저평가된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타당할 수 있으나, 이를 일률적인 공정가액 산정 의무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더 큰 정책 실패를 불러올 위험이 크다.
공정가액은 본질적으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가치 개념이며, 자산·수익·미래가치를 종합한다는 표현 자체가 모호하다. 어떤 비중으로 어떤 변수들을 반영할지 법률로 정할 수 없고, 평가 과정에서 기업은 더 많은 비용·시간·법적 리스크에 노출된다.
더구나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으로 이미 경영판단이 과도하게 사후 규율되는 상황에서, 합병가액 산정에 대한 입증 책임까지 강화된다면 기업은 '합병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하지 못하는’ 환경에 내몰릴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M&A 위축 → 구조조정 지연 →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최근 한국 기업들은 중복 사업 정리, 계열사 통합, 비효율 축소 등을 위해 전략적 합병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 그러나 공정가액 산정과 외부평가·의견서 공시 의무가 법률로 묶일 경우, 정상적인 구조조정마저 불필요한 심사와 절차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시장 변화에 맞춰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법이 정한 '적정성’이라는 추상적 기준에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나아가 물적분할 후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를 의무 배정하는 조치 역시 지나친 개입이다. 특정 주주군에게 배정 비율을 법으로 할당하는 것은 자본조달과 기업 전략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상장 과정에서 필요한 유연성을 크게 저해한다.
이는 결국 기업의 성장 전략을 표준화된 틀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며, 장기적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는커녕 더 고착화할 위험이 크다. 자본시장 제도는 시장 참여자 스스로 위험과 보상을 판단할 수 있는 투명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주 보호라는 근시안적인 목적은 이해하지만, 시장의 자율적 판단을 제한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순간 그 피해는 결국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가장 바람직한 합병가액은 법이 정하는 값이 아니라, 투자자와 시장이 스스로 판단한 값이다.
2025.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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