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르고 모두 유일한데, 나는 모든 사람을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고정 관념을 형성하기보다 그들을 개인으로서 대우하려고 한다. 나는 모든 사람을 내가 그들이 나에게 베풀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대우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나는 비(非)각성이고 각성 문화(woke culture)와 정체성 쟁점들(identity issues)의 몇몇 측면의 배후에 있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겠음을 자백한다.
나는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린 이 기사(▶링크)로 자극받아, 여기서 그 쟁점 중 두 가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 기사는 우선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자메이카 카니발 복장을 한 푸른 눈의 가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외관상으로는 문화 전유이다. 다른 문화에서 비롯된 유행들을 찬양하고 채택하는 것이 어째서 “문화 전유”인가? 만약 이것이 문화 전유라면, 아프리카계의 어떤 사람이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한다면−유럽에서 비롯된 유행−그것도 역시 문화 전유가 아닐까? 일정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행해질 때는 찬양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행해질 때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문화 전유는 의복에는 적용되지만, 음악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블루스 음악이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에 기원이 있지만, 많은 백인 블루스 음악가가 대단히 존경받는다. 한편, 교향악단들에서 소수파 음악가들의 수를 증가시키라는 압력이 있지만, 이것은 문화 전유로 여겨지지 않는데, 설사 오케스트라 레퍼토리가 그 기원에서 심하게 유럽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그러나 《뉴요커》 기사의 주요 초점은 문화 전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인종을 잘못 전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그 기사는 어느 조지 워싱턴 대학교 역사학 교수에 집중하는데, 그녀는 흑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배경에 관해 더 많이 발견함에 따라, 자기가 “내가 주장할 권리가 없는 흑인 특성 내에서 정체성들을 가장했다,”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기사는 또한, 워싱턴주 스포캔에서 NAACP(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를, 2015년까지, 이끈 여자, 레이철 돌레잘(Rachel Dolezal)도 언급하는데, 그때 그녀는 실제 백인인 것으로 쫓겨났다.
각성 문화의 비각성 관찰자인 나에게 비논리적인 것 같은 것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동일시하는,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고 칭찬할 만하지만, 자기들의 인종 정체성을 선택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한 성과 동일시하면서 자랄 수 있고, 자기들의 생애 어떤 시점에서든 자기들이 이제 다른 성과 자기를 동일시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가?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의 성 정체성을 바꾸고 싶다고 결정하고 자기의 몸을 자기의 새 정체성과 더 가깝게 합치하도록 바꾸기 위해 주요 수술을 하는데, 모든 것은 각성 문화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머리 모양을 전형적으로 다른 인종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바꾸면, 그것은 문화 전유로 낙인찍힌다. 왜 그런가?
하나의 가능성은 사람들이, 다른 인종들이 가지지 못하는 이점들을 가진다고 인식되는, 인종과 자기를 동일시하기를 원한다는 점일 수 있을 것이다. 인종적 평등으로의 지속된 운동들에도 불구하고, “백인 특권(white privilege)”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뉴요커》 기사에서 언급된 두 사례에 적용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언급된 양 개인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백인으로부터, 사회의 주변적인 지위로 내쫓기고 불리한 조건에 놓인, 흑인 정체성으로 이동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쪽 다 백인 여자였고, 만약 그들이, 자기들이 지금 남자로서 일체감을 가진다고, 말한다면, 각성 문화는 그 정체성 변경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각성 문화는 그들이 시도한 인종 정체성 변경을 강하게 거부했다.
각성 문화의 이 (그리고 다른) 측면들이 내게 모순적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모든 사람을 개인으로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존경심을 가지고 대우하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유일하고 모두 다르다. 내가 여기서 말한 어떤 것도 비판으로 여기지 마시라. 나는 그저 명백한 모순들을 포함하는 것 같은 현대 문화 측면들에 관해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은 독립 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 선임 연구위원,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드보 무어(DeVoe Moore) 경제학 교수, 그리고 독립 연구소 책 ≪위험에 처한 자유: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권력(Liberty in Peril: Democracy and Power i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
원문은 https://blog.independent.org/2020/09/15/identity-issues-probing-woke-culture/에서 읽을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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