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The Beacon)≫에의 최근 게시글 (링크)
에서, 나는 미국 경제학회(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연례 회합에서 발표되고 ≪미국 경제학회지(American Economic Review)≫에 게재되는 논문들로 나타나는 대학 경제학자들의 연구 관심들을 논했다. 이번 게시글은, 그 학회의 연례 회합에서 발표되었고 ≪미국 경제학회지≫ 바로 그 호에 게재되었던 미국 경제학회 특별 강연에 집중한다.
그 강연은 “인간 행동의 역학에 관하여: 문화, 갈등, 그리고 협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On the Dynamics of Human Behavior: The Past, Present, and Future of Culture, Conflict, and Cooperation)”라고 제목이 붙여졌고,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교수 네이선 넌(Nathan Nunn)이 발표하였다. 내가 그것을 논할 때, 이러한 것들이 미국 경제학회가 자기 회원들에게 촉진하기로 선택한 생각들이라는 점을 명심하시라.
넌 교수는 사람들이 가치들, 문화, 그리고 공공 정책에 관한 자기들의 견해를 두 가지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채택하기 때문에 잠재적 갈등이 일어나는 모형을 전개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작동했던 것을 배우고 그런 가치들을 미래에 적합한 것으로서 채택한다. 그런 사람들은, 넌 교수의 용어를 사용하면, 전통주의자(traditionalists)이다. 그러나 전통은 지속성을 발생시키고, 사정이 변함에 따라, 일을 하는 새로운 방식이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여 더 적합하다. 이것은 전통주의자들과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하여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가치들, 신념들, 그리고 문화의 부조화를 일으킨다.
나는 그것이 그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넌 교수의 23페이지 논문의 공정한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넌 교수는 이 아이디어를 어디로 가지고 가는가? 그의 논문 맨 끝에서 인용해 보겠다.
이해할 수 있게, 정부들, 국제 조직들, 지도자 지위들, 그리고 학계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들, 즉 개인주의 특성과 WEIRD 심리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나 부조화의 논리는 미래의 유리한 특성들이 과거의 그것들과 다른 것이라는 점과 성공 가치들, 그리고 미래의 신념들과 행동들이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것들과 아주 다를지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WEIRD는 넌 교수가 사용하는 약자이다. 그 글자들은 서양의(western), 교육받은(educated), 개인주의적인(individualistic), 부유한(rich), 그리고 민주적인(democratic)을 나타낸다. 넌 교수가 미래에 성공적인 가치들, 신념들, 그리고 행동들이 WEIRD 것들과 “매우 다를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우리가 포기해야 한다고 넌 교수가 제안하고 있는 것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버려야 한다고 넌 교수가 제안하는 것을 고찰하는 동안, 그의 논문 어디에서도 그는 WEIRD 심리를 대신할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여기에 우리가 버려야 한다고 그가 생각할지 “모르는” 것이 있다.
서양의: 문화적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는 세계에서, 서양의 가치들, 서양의 문화, 그리고 서양의 문명 그 자체는 종종 의문시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서양으로 여겨졌던 것의 많은 부분은 이미 버려졌다. 음악, 유행, 식품에서, 그리고 더욱 일반적으로 문화에서, 우리는 세계 공동체에 살고 있다. 확실히, “서양의” 큰 요소가 남아 있지만, 나는 모든 문화의 매력적인 특징들을 수용하는 데 저항을 거의 보지 않는다.
교육받은: 이것은, 하버드 대학교 교수에게서 와서, 다소 놀랍다. 교육은 인간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을 개선한 성공적인 성분이었고, 일반적으로 이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만약 우리가 서양의 가치들을 넘어가면, 탈레반 같은 조직들이 교육의 가치를, 특히 여자들에 대해, 의문시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넌 교수가 염두에 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나는 그가 교육을 대체할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다.
개인주의적인: 이 생각은 무서운 생각인데, 부분적으로 왜냐하면 나는 현대의 문화가 이미 개인주의의 가치를 버리는 여러 방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에 대한 명백한 대안은 집합주의(collectivism)−20세기에 소련과 그 밖의 사회주의 독재 정권들이 의거했던 원리−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이미 개인주의를 넘어가려고 시도했고 그것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넌 교수의 논문에서의 인용은 특히 개인주의에 적대적인 것 같다. 그는 그것을 두 번 공격하는데, 한번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이고 다시 한번은 그가 그것을 WEIRD 심리에 포함할 때이다.
21세기에, 개인주의가 사라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나의 이전 ≪등대≫ 게시글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개인으로서보다는 더욱더 집단 구성원으로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유 사회에서 성공의 열쇠인, 개인 자율은 손상되고 있다. 개인주의의 궁극적인 반정립(反定立; antithesis)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집단을 위해 일하는 방향을 향해 있다. 실제로, 그것은 모든 사람이 국가의 하인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개인주의와 자유는 손에 손잡고 간다. 하나를 포기하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개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넌 교수가 제안하고 있는 것인가?
부유한: 대부분 인간 역사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숨을 유지할 충분한 열량의 탐색이었다. 자본주의의 하사품들은 대개 가난에 빠져 꼼짝 못 한 세계를 모든 사람의 물질적 복지를 증진한 세계로 전환했다. 우리의 물질적 복지를 당연하게 여기기는 쉽다. 부유한 것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가난한? 나는 미래 성공이 부보다 빈곤에 기초할 것이라고 넌 교수가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물질적 안락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것들을 달성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서양 나라들에서 대부분 사람이 그 점에서 잘 돌보아지지만, 많은 사람은 소득 불안정으로 정말 고생한다. 그들이 자동차와 살 멋진 곳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근근이 살아간다. 부유한 사람들은 부를 비축해 두고 있고, 그래서 만약 예견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면, 그들은 그것들을 처리할 능력을 가진다. 그것은 “부유한”이 사람들에게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가치를 넘어가기를 원해야 할까?
민주적인: 다시, 나는 그 대안을 탐색하고 있다. 그것은 독재적인가? 넌 교수는 민주적 가치들을 넘어가기를 제안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것들 안에서 우수성을 본다.
위의 인용은 지도자 지위들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 성공했던 문화적 배경들을 가진 개인들에 의해 지배되”지만, “미래의 특성들이 과거의 그것들과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공 기록들을 증명한 지도자들을 과거에 성공하지 못한 개인들로 대체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함축한다. 나는 넌 교수가 자기 메시지에 관한 나의 해석에 동의할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가 말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인용하고 있다.
이 논문의 주요 문제는, 이것이 사회 과학들에서 흔하지만, 그 논문이 그럴듯한 제도 개발 모형을 전개하고 그것을 모형에서 뒤따르지 않는 결론들을 도출하는 데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래, 상황이 바뀔 때, 과거에는 잘 작동했던, 일을 하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미래에는 과거만큼 잘 작동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성공을 가져왔던 서양의, 교육받은, 개인주의적인, 부유한, 그리고 민주적인 가치들과 행동들을 우리가 넘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사회들더러 변화하는 상황을 역점을 두어 다룰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가치들과 신념들이다.
진보와 혁신은 서양 문화의 주요 요소였고, 새로운 문제들을 역점을 두어 다룰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도입을 촉진한다. 비슷하게, 개인주의는 변화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이다. 개인들은 자기들 자신의 분권화된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행동들과 활동들을 모방한다. 교육은 새로운 도전들을 역점을 두어 다룰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개발을 촉진한다.
확실히, 사정이 바뀔 때 일을 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적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넌 교수가 의문을 제기하는 서양 가치들과 개인주의는 변화하는 상황에 매우 반응적이다. 경제학을 포함해서, 사회 과학들은 자유, 개인주의, 그리고 개인적 책임의 개념들에 더욱더 적대적으로 되었는데, 이 논문이 한 예이다.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은 독립 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 선임 연구위원,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드보 무어(DeVoe Moore) 경제학 교수, 그리고 독립 연구소 책 ≪위험에 처한 자유: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권력(Liberty in Peril: Democracy and Power i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
원문은 https://blog.independent.org/2022/06/08/research-interests-academic-economists/에서 읽을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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