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바이크(Stefan Beig)는 ≪유대 동향(Jüdische Rundschau)≫을 위해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최초 2024년 9월 독일에서 게재되었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아주 오래된 현상이지만, 반자본주의(anti-capitalism)는 그저 약 200년 전에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당신이 최근 X/트위터에서 말했듯이, 반자본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쌍둥이 형제(twin brothers)”가 될 수 있습니까?
반유대주의는 반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오래됐습니다. 자기의 학위 논문 “현대 편견 연구의 관점에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us im Lichte der modernen Vorurteilsforschung)”에서, 수잔 그니히비츠(Susan Gniechwitz)는 지배적인 현대 반유대주의 고정 관념이 초기 기독교와 중세 시대 동안 지배했던 고정 관념과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니히비츠는 종교적 반유대주의에서 두드러진 감소와 유대인들의 경제적 행동에 집중하는 언명들에서 막대한 증가를 기록합니다. 이 경제적 고정 관념들은 “아주 우세하게 되어서 그것들은 이제 현대 반유대주의 고정 관념의 핵심을 형성한다.” 이것은 현대, 서양 세속 사회들에서 확실히 사실입니다.
자동차 제조업자 헨리 포드 같은, 반유대주의 자본가들도 또한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반유대주의와 반자본주의 사이 '친족 정신(kindred spirit)’의 관념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1920년대, 포드는 반유대주의 교과서들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위조된 “시온 장로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를 믿었습니다. 그는 후에, 그저 마지못해서긴 했을지라도, 자기의 초기 진술들에서 멀어지려고 시도했습니다. ≪나의 투쟁(Mein Kampf)≫의 최초 판들에서 포드를 칭찬한 아돌프 히틀러는 포드의 180도 전환에 실망했고 본문에서 포드의 이름을 제거했습니다. 히틀러는 썼습니다, “오늘의 포드는 더는 과거의 포드와 똑같지 않다. 과거의 포드는 반유대주의자였다. ... 반면에, 오늘의 포드는 유대인들과 화해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분노는 지속되지 않았고, 1938년에, 히틀러의 정부는 포드에게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물론, 반유대주의 기업가들이 항상 있었고 항상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또한 반자본주의자들이기도 한 기업가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도적인 반유대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 중 한 사람인 오이겐 뒤링(Eugen Dühring)(1833-1921)의 시절 이래로 반유대주의와 반자본주의가 자주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을 바꾸지 않습니다.
반대로, 테오도르 아도르노 같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반유대주의에 반대해서 적극적으로 투쟁했습니다. 반유대주의가 진정으로 반자본주의 사고의 그러한 근본적인 측면입니까?
물론, 자기의 유대인 증오가 반자본주의로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 예를 들면, 종교로 동기가 부여되)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있고 많은 반자본주의자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와 반자본주의 사이에 주목할 만한 관계가 있는 점도 똑같이 명백합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신이 유대인이었지만, 그는 틀림없이 반유대주의적이었습니다. 그는 한 친구에게 유대교가 자기에게 “비위에 거슬린다,”고 편지 썼습니다. 그 이유는 마르크스가 유대인들을, 그가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썼듯이, 돈을 자기들의 진정한 신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유대주의의 비종교적 기초는 무엇인가? 실제적 필요, 자기 이익이다. 유대인의 세속적 종교는 무엇인가? 소상인이다. 그의 세속적 신은 무엇인가? 돈이다.”
반자본주의와 반유대주의 사이 강한 관계가 여기에 명백합니다: 비판은 인식된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에 돌려지는데, 이것들은 마르크스가 유대주의와 자본주의 양쪽 다에 관련지은 특성입니다.
마르크스로부터의 이 진술들은 결코 고립된 착오들이 아닙니다; 많은 다른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동시에, 또한 인종 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확고하게 반대하는 많은 사회주의자도 있었다는 점이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 견해를 신봉하는 저명한 사회주의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이마누엘 칸트 같은 사상가들에게도 적용되는데, 이들의 철학은 또한 쉽게 반유대주의 없이 지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다르기라도 합니까?
물론, 모든 반자본주의자가 또한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자주 함께 나타나는 것 같은지는 인상적입니다. 독일 좌파(Die Linke)당 출신 좌익 정치인 클라우스 레더러(Klaus Lederer)는 좌파계 안에 반유대주의의 광범한 보급에 자기가 놀랐다고 최근에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세계를 이해하기 더 쉽게 만드는 데 반유대주의를 사용한다. 자본주의의 모든 인식된 병폐는 한 집단, 즉 유대인들에 투사된다.” 이 감정은 반자본주의자들이 자주 반이스라엘 수사를 신봉하는 대학교들에서 특히 명백합니다. 레더러는 놀랐습니다. 나는 놀라지 않았는데, 내가 이 전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1938년의 11월 대학살(November pogrom)의 31주년 기념식에서, 좌익 극단주의 집단 “투파마로스 서베를린(Tupamaros West Berlin)”은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를 폭파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독일 RAF(Red Army Faction; 적군파) 테러 조직의 단원들은 좌익 팔레스타인 집단들과 함께 훈련했고 팔레스타인 해방 마르크스주의 인민 전선(Marxist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과 함께 일했습니다. PFLP 테러리스트들은 RAF 테러리스트들을 구하기 위해 1977년 10월에 비행기를 공중 납치했습니다. 호르스트 말러(Horst Mahler)는 평생의 반유대주의자이자 반자본주의자였습니다. 그의 길은 그를 마르크스주의 RAF에서 나치당 NPD(Nation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독일 국민 민주당; 1964년 창당한 독일의 네오나치즘 정당)로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반유대주의가 현실 세계에서 사회주의 적용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습니까? 스탈린의 유대인 박해 같은 사건들을 제외하면, 이것이 줄곧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스탈린 치하 유대인 학대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역사가 미하엘 볼프존(Michael Wolffsohn)은 유대인들이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사회주의 동독(GDR; German Democratic Republic; 독일 민주 공화국)과 그 밖의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박해받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련, 헝가리,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약간의 유대인은 처형되기조차 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범죄(offence)”는, 볼프존에 따르면, 그들의 유대인 유전이었습니다. 그 밖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처럼, GDR에서 관리들은 1950년대 초기와 1967년에 “유대인 명부들”을 만들었습니다. “이것들이 국외 추방 명부라는 점에 거의 어떤 의심도 없다,”라고 볼프존은 말합니다. 폴란드에서는, 공산당이, 특히 1956년과 1968년에, 반유대인 운동들의 선봉을 맡았고, 이로 인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과반수가 폴란드를 떠났습니다.
반유대주의의 핵심 교의는 유대인들이 세계에 대한 위협이고 많은 갈등에 대해 책임져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자본주의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습니까?
반자본주의자들과 반유대주의자들은 한 가지 주요 특성, 강력한 음모 사고 경향을 공유합니다. 이것은 반유대주의자들과 관련해서는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반자본주의자들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반자본주의에 관해 세계에서 가장 자세한 설문 조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들이 잡지 ≪경제 문제(Economic Affairs)≫에 발표되었습니다: 35개 나라 중 34개에서, 반자본주의자들은 친자본주의자들보다 더 음모 사고 경향이 강했습니다.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ecaf.12591 반유대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의 인지된 적들은 흔히 중첩하고, 양 집단은 로스차일드가와 조지 소로스 같은 부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데, 그들은 이들을 “금융 유대인(financial Jews)”으로 낙인찍습니다. 반자본주의자들과 반유대주의자들의 눈에는 똑같이, 초부자들은 세계의 문제들에 책임져야 마땅하고, 항상 막후에 숨어 있으며, 비밀리에 배후 조종하고 있습니다.
10월 7일의 하마스 대학살 이래로, 세계는 세계적인 반유대주의 물결을 경험했습니다. 이 이스라엘 관련 반유대주의는 어느 정도 또한 반자본주의적이기도 합니까?
모든 이스라엘 비판이 반유대주의적이지는 않지만, 반유대주의는 종종 이스라엘 비판으로 변장합니다. 좌익 학생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를 대표합니다.
당신은 반자본주의자들을 반유대주의 적의로 이끄는 동기들을 발견하셨습니까?
과학적인 편견 연구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종종 혼합된) 고정 관념 내용의 모형(model of (often mixed) stereotype content)”에 따르면, 다른 사회 집단들에 관한 감정적 인식은 두 차원에 따라 결정됩니다. 첫 번째는 “따뜻함(warmth)”입니다: 집단들은 따뜻하고 우호적으로나, 차갑고 비우호적으로 고정 관념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차원은 능숙함(competence), 즉 능력과 숙달입니다. 그러므로 능숙하지만 따뜻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 집단들은 찬탄과 시기심의 혼합된 감정에 직면합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집단들은 유대인들, 부자들, 그리고 아시아인들을 포함합니다.
반자본주의와 반유대주의 둘 다 중요한 동기, 즉 시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자본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시기심은 부자들과 관련됩니다. 나는 또한 이것에 관한 연구들도 수행했고 그것들을 책 ≪여론에서의 부자들(The Rich in Public Opinion)≫에 발표했습니다. https://therichinpublicopinion.com/ 시기심은 또한 많은 반유대주의자에게도 역할을 합니다. 그들의 견해로는, 유대인들은 특히 금융 부문에 “과도 대표되고(overrepresented)” 있습니다. 19세기 중엽까지는, 유대인 부에 관한 서술이 이미 흔했습니다: “그들은, 금과 은 조각들로, 정교한 진주들과 보석들로 치장하고, 뽐내며 돌아다닌다; 자기들의 결혼식에서 그들은 은그릇들에서 식사하고 아주 많은 사발과 콩피(confit)로 식탁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은 지위와 대규모 수행원을 갖춘 아주 화려한 마차를 타고 도착한다.”
당신의 새 책 ≪한 자본주의자의 세계 여행(Weltreise eines Kapitalisten)≫에서, 당신은 네 대륙 30개 나라를 방문하는 동안 당신의 관찰들에 관해 씁니다. 바로 지금 반자본주의가 상승하고 있습니까?
반자본주의가 그것이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랬던 것보다 오늘날의 사회에 더 보급되어 있다는 점에 의심이 없습니다. 과거 그 당시에는, 세계 무대는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레셰크 발체로비치, 그리고 덩 샤오핑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들이 붕괴한 후에,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명백히 더 나은 체제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서 배운 교훈들이 망각되었던 것 같고, 반자본주의가 지금 많은 나라에서 지배하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도 역시 다시 더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역시 이슬람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이 추세는 대학교들과 시위들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 사이 통일 전선의 형성에서 특히 명백한데,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공유된 적의로 연료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당신의 책은 또한 리버테리언 운동에 대한 통찰도 제공합니다. 당신은 또한 리버테리언들의 층 안에서 반유대주의 혹은−반대로−친유대주의도 만났습니까?
리버테리언 운동의 많은 선구자는 유대 유전을 가지고 있는데, 루트비히 폰 미제스, 밀턴 프리드먼, 아인 랜드, 그리고 머리 라스바드를 포함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리버테리언은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입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대주의에 관해 항상 매우 호의적으로 말했고 명백히 유대주의로의 개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터무니없는 음모 이론들을 시인하는 리버테리언들도 있습니다. 내가 반유대주의적인 어떤 리버테리언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지만, 그들이 아마도 정말 존재할 것입니다. 하여간, 그것은 주변 현상일 것입니다.
경제적 리버테리언으로서, 당신은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해독제라고 보십니까?
자본주의와 리버테리어니즘은 어떤 형태든 인종 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대해서 가장 철두철미한 반대자입니다−오직 성과만 중요성을 지닙니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1863-1941) 같은 반자본주의 사상가들은 독일에서 반유대주의의 보급을 촉진하였습니까?
그의 책 ≪유대인들과 현대 자본주의(The Jews and Modern Capitalism)≫는 매우 영향력이 컸습니다. 좀바르트는, “유목민(nomadic people)”으로서의, 유대인들이 토지에 강한 연결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좀바르트에 따르면, 그들은 추상적인 돈 개념에 독특한 친근성을 발현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자본주의 영역에서 뚜렷한 이점을 주었습니다.
에두아르 드루몽(Édouard Drumont)과 오이겐 뒤링 같은, 19세기 가장 저명한 반유대주의 대표들에 대해 반자본주의가 얼마나 중요했습니까?
프랑스 반유대주의 동맹(Anti-Semitic League; Ligue antisémitique)의 창립자, 에두아르 드루몽은 1890년에 썼습니다: “유대인은 장사를 좋아하고, 탐욕스러우며, 계획적이고, 명석하며, 교활하다. ... 유대인은 세속적이어서, 내세의 생에 거의 어떤 관심도 없다. ... 유대인은 본능상 사업가이다; 그는 타고난 상인이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래하고, 다른 사람을 이길 모든 기회를 붙잡는다.” 그러한 인용들은 반유대주의, 부자들의 증오, 그리고 반자본주의 감정들의 뒤얽힌 본질을 강조합니다. 드루몽은 현대 반유대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사회주의자 오이겐 뒤링이 그랬던 것과 같습니다.
영어로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Hitler’s National Socialism)≫(https://hitlers-national-socialism.com/)로 출판된, 당신의 1987년 학위 논문 “히틀러, 한 혁명가의 자아상(Hitler. Selbstverständnis eines Revolutionärs)”에서, 당신은 아돌프 히틀러의 세계관을 분석합니다. 히틀러는 반자본주의자였습니까?
유대인들에 대한 히틀러의 적의는 종교적으로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고, 반자본주의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왜 반유대주의자인가?”의 주제에 관한, 1920년 8월 13일에 한 연설 같은, 그의 초기 연설들에서 특히 명백하게 표현되었고, 여기에서, 그는 “국제 주식 시장과 대부 자본”을 공격했는데, 그는 그 후원자들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본은 증가했고 오늘날 실제로 전 세계를 지배하며, 금액들에 관해 측정할 수 없고, 그것의 거대한 관계들에서 상상할 수 없으며, 초자연적으로 증가하고−최악의 부분으로서−모든 정직한 일을 완전히 부패시키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무시무시한 부분이어서, 오늘날에는 이 자본에 대해 이자 부담을 져야 하는 보통 인간은 부지런함, 근면, 검약에도 불구하고, 실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저 혼자만 먹을, 그리고 하물며 입을, 거의 어떤 것도 어떻게 자기에게 남겨져 있지 않은지를 대기해서 보아야만 하고, 그와 동시에 이 국제 자본이, 그가 지급하기를 도와야만 하는, 이자만으로도 수십억을 먹어 치우고, 그와 동시에 자신을 위해 이자를 수금하는 것과 쿠폰들을 잘라내는 것 외 어떤 다른 일도 하지 않는 한 인종 계급이 국가에서 자신을 늘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최근에, 정치학자 위르겐 W. 팔터(Jürgen W. Falter)는 무엇이 사람들에게 NSDAP(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 가입하게 동기를 부여하는지 분석했고 반유대주의 태도와 반자본주의 태도가 종종 손에 손잡고 간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더욱 최근의 연구가 당신의 관찰들을 확증할 수 있었습니까?
나의 책(https://hitlers-national-socialism.com/)은 최근 다시 인쇄되었고 지금 다수의 언어로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나는 새로운, 50페이지 머리말을 썼는데, 거기서 나는 그 분야에서 현 연구 상태의 개관을 제공합니다. 내가 나의 학위 논문에서 도전했고, 그 당시 연구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던, 중심 명제 중 하나는 히틀러가 반근대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했다는 관념이었습니다. 내가 이 명제를 아주 설득력 있게 논박하였으므로, 그것은 오늘날 좀체 개진되지 않습니다. 한 잡지에 게재된 서평에서, 국가 사회주의의 저명한 전문가, 볼프강 미할카(Wolfgang Michalka)는 썼습니다: “30년 후에 그것을 다시 방문하니, 지텔만의 자극적인 연구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쓸모없이 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NS(국가 사회주의; national socialism) 사회 및 경제 정책과 '민족 공동체(national community)’에 관한 더욱 최근의 연구로부터 추가적인 확증을 얻었다.” https://historiker-zitelmann.de/wp-content/uploads/2018/07/Neues-von-NSDAP-und-Hitler_HPB_66_2.pdf
논쟁적인 역사가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는 정반대를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심하게 비판받는−명제에 따르면, 국가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유대인 대량 살해는 10월 혁명(October Revolution)에 대한 그리고 그 혁명을 지지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 언명들에 대한 '과도한 반응(excessive reaction)’이었습니다.
내 이름이 때때로 놀테와 관련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나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했다고 종종 주장되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지금 “취소 문화(cancel culture)”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그를 변호했을 뿐입니다. 실질적인 내용의 면에서, 나는 실제로 놀테와 반대 의견을 간직했습니다. 나는 독자들에게 나의 논문 “국가 사회주의와 반공주의(National Socialism and Anti-Communism)”를 보라고 권하겠는데, 나는 그것을 앞에서 언급한 나의 히틀러 책 신판(https://hitlers-national-socialism.com/)의 부록에 포함했습니다.
자기의 생애 동안 출판되지 않았던, 1928년의 자기의 ≪두 번째 책(Second Book)≫에서, 히틀러는 미국을 모범적인 이민 정책을 가진 “인종적으로 일류(racially first-rate)” 사회로 서술했지만, 소련은 “볼셰비키 유대(Bolshevik-Jewish)”로 서술되었습니다. 이것은 반유대 반자본주의에 맞지 않은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히틀러는 “유대 볼셰비키주의(Jewish Bolshevism)”의 명제를 정말 믿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언급하는 ≪두 번째 책(Second Book)≫에서, 그는 썼습니다: “참으로, 유대 요소가 다소간 러시아 민족주의 요소로 어쩌면 대체될 수 있도록 러시아 자체에서 내부적 변화가 볼셰비키 세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1928년에 가정으로서 시작했던 것은 1940년대에는 히틀러에게 확실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총통의 본부에서 했던 그의 독백들로부터 그가 더욱더 스탈린을 찬탄하게 되었다는 점을 압니다. 히틀러에 따르면, 스탈린은 “그가 아직도 지배 계급으로 필요로 했던 유대인들을 끝내기 위해 자기가 그저 자기들 자신의 지식 계급이 성숙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치스 독일의] 외무 장관 리벤트롭(Ribbentrop)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이것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히틀러의 의견으로 자본주의 미국의 경제보다 훨씬 더 우월한 소련의 계획 경제는, 그가 스탈린을 그렇게 찬탄한 이유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느 사상가들이 히틀러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믿습니까? 그들 중에 누군가 사회주의자들이 있습니까?
히틀러는 독학자이자 절충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많이 읽었고 그다음 서로 다른 단편을 결합하여 자기 자신의 “세계관(world view)”을 형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생활 공간 이론(living space theory)”은 여러 원천에 의존했지만, 축소하는 시장들의 개념에 심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와 니콜라이 부하린(Nikolai Bukharin) 같은 사상가들의 지지를 받은 이 이론은 농업 국가들의 산업화로 재화들을 판매하는 데 도전을 겪을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것에서 완전히 다른 결론들, 즉 수출 지향적 경제 정책이 유리하지 않다는 점과 독일이 “동부에서 새 생활 공간”을 정복해야 한다는 점을 끌어냈습니다.
오늘날까지, 좌익분자들은 국가 사회주의를 파시즘으로 분류합니다. 당신은 이 성격 규정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파시즘(fascism)”이라는 용어는 오도합니다. 좌익분자들은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라는 용어를 피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들의 아름다운 사회주의 개념을 더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나치스(Nazis)”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국가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 요소를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국가 사회주의는 어느 인구 집단들 사이에서 가장 광범한 지지를 얻었습니까?
이 점에 관해, 위르겐 팔터의 연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NSDAP의 투표자들과 당원들에 관한 그의 획기적인 연구들에 따르면, 국가 사회주의당은 몇몇 측면에서 인민의 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정 집단들에서는, 특히 가톨릭교도 사이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 당은 노동 계급 사이에서 상당한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노동자들이 투표자와 당원 기반의 약 40%를 구성했습니다. 이 수치는 팔터의 분석들 이전에 연구자들이 가정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았습니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반자본주의자들의 열 가지 거짓말(In Defense of Capitalism)≫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471405/)과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Hitler’s National Socialism)≫(https:/hitlers-national-socialism.com)의 저자이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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