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더, 사람들은 차이점들로 보일지 모르는 것을 적대감들로 단계적으로 상승시키는 데 재빠른 것 같다. 이것은 최근 몇 년간 많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정치에서 명백한데, 거기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것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본다. 정치는 타협과 협상이 차이점들을 가라앉힐 수 있는 무대가 덜 되고 있고,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지는 경기장이 더 되고 있다. 만약 한쪽이 다른 쪽을 자기들의 적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다른 쪽도 역시 그들을 적으로 볼 것이라는 점을 함축하는가? 그것은 단계적 확대와 충돌의 처방전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은 국제 문제에서 명백한 것 같다. 푸틴은 NATO를 러시아의 적−자기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선제 타격을 개시했다. 만약 러시아가 NATO를 자기의 적으로 선언한다면, 그것은 러시아를 NATO의 적으로 만드는가? NATO 나라들로부터의 군사 장비가 우크라이나에 흘러 들어가므로, 그것이 그런 것 같다.
사정은 이런 식으로 될 필요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과 일본은 그들이 1940년대에 전쟁하고 있었던 국가들과 협동적인 관계를,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협동적인 관계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왜 이 세계적인 협동의 일부가 아닌가? 그래, 그 냉전 역사가 있지만, 소련의 해체 후에, 러시아는 왜 자기의 유럽 이웃들과 더 나은 관계를 수립하지 않았는가? 하나의 이유는 푸틴의 대립적 수사(修辭)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그들의 공유 국경과 그들의 군사 충돌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군사 충돌 역사를] 그들의 과거지사로 돌리고 잊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왜 우크라이나나 핀란드가 러시아에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할까? 푸틴의 적대적 수사가 이 나라들을 자기 적이라고 선언할 때, 그것은 러시아가 그들의 적이라는 함의를 가져오는 것 같다.
이 수사가 발생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인종 관계이다. 백인들은, 그저 그들의 인종 때문만으로, 그들이 적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시애틀 타임스(Seattle Times)≫의 이 사설(https://www.seattletimes.com/opinion/to-be-anti-racist-dont-confuse-character-for-accountability/)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가 여기에 사는 부산물로 흼(whiteness)에 사회화된다. 흼의 주요 목적은 구조적 인종 차별주의를 통해 비백인 인종 및 종족 정체성을 희생시키면서 알고 존재하는 백인 서양 방식의 가치, 보호 그리고 보강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만약 백인들이 자기들이 흑인들의 적이라고 이야기 듣고 있다면, 이것은 흑인들을 백인들의 적으로 만드는가?
마르틴 루터 킹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피부색보다 자기들의 인격 내용으로 판단 받기를 희망했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피부색으로 판단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적이라고 이야기 들을 때도, 이것은 폭력의 처방전이다.
최근 젊은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한 버펄로(Buffalo; 미국 뉴욕주 이리호에 임한 항구 도시)에서의 슈퍼마켓 총격은 끔찍한 사건이었고, 그의 행동들에 대해 어떠한 정당화나 변명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백인들이 흑인들의 적이라고 말하는 인종적 수사가, 그러므로, 총 쏘는 사람에게 흑인들이 백인들의 적이라고 생각하도록 재촉하지 않을지 누구든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총격의 책임을 총을 쏜 사람 외 누구에게도 돌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수사는 비판적 인종 이론가들의 수사를 보강하고, 후자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반격을 재촉한다. 수사가 단계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양쪽 다가, “만약 당신이 나에게 내가 당신의 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나의 적이라는 점을 함축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수사는 분열의 씨를 뿌리는데, 그것이 정치에서 당파적 분열이건, 유럽에서 정치적 긴장들이건, 혹은 미국에서 인종적 긴장들이건 상관없이 그렇다. 그것의 기원은 인간 본성의 일부인 종족주의에 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이 모든 경기장에서 사정을 “우리 대 그들”로 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이 종족적 본능들을 어느 정도 길들일 제도들을 발전시켰는데, 아주 현저하게 스포츠에서 그랬다. 나의 팀이 당신의 팀에 대항하는 투쟁은 그런 종족 본능들을 평화롭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지만, 위의 예들이 보여주듯이, 우리의 종족 본능들은 완전히 길들지 않았다.
그 모든 예에서,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적이라고 선언하기보다 서로 협동하도록 일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더 나아질 것이다. 너무나 자주, 종족 본능들이 승리하고, 이기려는 욕망은 잘 지내려는 욕망을 이겨낸다.
그러나 만약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자기들의 적이라고 선언한다면, 다른 집단도 역시 그 두 집단을 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점에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은 독립 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 선임 연구위원,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드보 무어(DeVoe Moore) 경제학 교수, 그리고 독립 연구소 책 ≪위험에 처한 자유: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권력(Liberty in Peril: Democracy and Power i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 원문은 https://blog.independent.org/2022/05/19/what-makes-you-my-enemy/에서 읽을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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