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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하이에크를 돌아보며

김재환 / 2022-12-06 / 조회: 1,856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게르첸 사범대학교에서 자비유학생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아름다운 넵스키 대로와 기숙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에르미타쥬 박물관, 수많은 운하와 제정 러시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화려한 건물들, 현지 친구들과 보낸 시간들은 유학생활의 아름다운 추억이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한편, 2월 막바지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서방의 제재, 인플레이션과 요동치는 루블화 가치는 나의 유학생활의 이면이었다. 2022년 1월, 1원에 15루블 정도였던 환율은 3월에 가서는 8루블로 떨어지더니, 다시금 올라 5월에는 1원에 25루블이 되었다. 불안한 환율로 인해 현금인출을 할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아 ATM에서 무작정 현금을 뽑았던 기억이 난다. 비상시를 대비해 급하게 달러를 샀고, SWIFT 결제망 퇴출 소식에 우회 결제가 가능한 카드를 알아보는 와중에, 기숙사 옆에 있던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문을 닫았으며, 시내 백화점 매장은 폐쇄되어 텅 비어있었다. 


1월부터 같이 공부하던 영국, 미국, 벨기에 국적의 학생들은 4월 무렵 본국의 귀국명령으로 모두 떠났다. 그 이후 학교에는 한중일 학생들만 남아 공부를 이어나갔다. 전장과 멀리 떨어져있어 전쟁을 직접 체감할 순 없었지만, 기숙사가 넵스키 대로와 가까운 탓에 대규모 반전시위와 전투경찰의 진압 현장을 목도했다. 시위에 참가한 선생님은 한동안 학교를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더 이상 러시아에서 코카콜라를 팔지 않는다는 소식에, 나는 콜라를 대량으로 사놔야겠다고 웃어넘겼지만, 기숙사 앞 넵스키 대로를 따라 곤봉을 든 전투경찰 무리를 보곤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른 한편으론 인플레이션을 통해 전쟁의 여파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60루블 정도였던 콜라는 귀국 직전에 90루블로 올라있었다. 싸다고 느껴졌던 식료품 가격은 양이 줄거나 가격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대졸자의 초봉이 80만원 수준인 러시아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의 인상폭이었다. 강경한 반전시위 진압 탓에 사회는 고요했지만, 평화로운 러시아의 분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러시아의 생활경제지표들은 나빠지고 있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2000년 푸틴이 집권하고 나서 러시아 사회는 “강한 러시아”라는 기조 이래 경제가 발전하여 급속도로 자본주의화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특유의 국가주도발전 모델은 공기업들에게 주요 자원의 독점 판매권을 주는 형식이었고, 이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권력과 자본이 집중되어 사회의 계층이동이 차단되어 버렸다. 또한 소련시절부터 내려온 관료주의로 인해 개별기업의 경제적 자유도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특유의 도장문화로 인해 공무원의 이른바 보신주의가 팽배하여 업무 진행 속도와 생산성이 국가 규모에 맞지 않게 낮다. 나는 외국인 등록 하나를 하려고 도장을 몇십개를 받아야 했는데,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도장을 천개는 받아야 한다는 농담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자비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그 간의 러시아 생활을 돌아보았다. 나는 20세기의 사회주의 실험이 남긴 휴유증이 21세기 러시아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간섭주의 경제학의 극치인 완전계산의 환상이 아직도 러시아에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 이성이 완벽할 것이라는 환상과 인간의 집산주의적 본능, 견제받지 않는 정치권력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이에크의 명언이 떠올랐다. ‘자유로운 사회를 지키고자 한다면, 어떤 바람직한 상태를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 것은 개인의 자유가 제약되는 현 러시아의 어두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경제학을 전공하며 러시아어를 복수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단순히 언어 하나 잘해서 취업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의 단계를 넘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선언한 나의 생각을 확고히 하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기도 했다. 러시아 사회와 경제구조를 공부하며 대척점에 있는 자유주의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며 한편으론 러시아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아름다운 문학과 미술, 발레를 비롯한 음악을 가진 러시아가 소련 해체 이후에 다시 집단주의의 굴레로 빠지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러시아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교육수준이 높고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수준 높은 시민들이었다. 자유주의 볼모지인 러시아에 새 바람이 불길 바라며 하이에크의 명언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자유로의 투쟁이란 개개인이 더 잘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가로막는 강압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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