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COVID19, 코로나 독재 시대

자유기업원 / 2020-10-21 / 조회: 169       미래한국

‘우리는 매일 사신(死神)의 품에 안겨 잠이 들고 사신(死神)의 품에서 잠이 깬다.’


괴테의 시집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 철학적 문장은 그러나 1970년 연탄가스 중독이 일상사가 되었던 우리 사회를 개탄하던 국내 한 신문 사설에 등장한 글이다.


196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연탄가스 중독은 그 규모나 치명률에 있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연탄가스 중독 사망은 전염병에 대한 방역체계가 미비했던 그 시절의 제1종과 제2종 전염병을 모두 합친 발생률과 사망률보다 높았을 뿐 아니라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면에서 공포와 충격 그 자체였다. 연탄가스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은 세입자가 연탄가스로 사망하면 집주인을 구속하는 식의 터무니 없는 규제들과 처벌들을 양산했다.


2020년 대한민국에는 연탄가스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 대신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질병의 공포가 엄습해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연탄가스와는 달리 코로나19가 사람으로부터 전염된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사람이 마치 연탄처럼 위험 인자로 다뤄진다는 점이다. 이런 유행성 질병의 확산 시기에는 반드시 희생양이 등장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국 의학 역사가 귄터 리스(Guenter B. Risse)는 1656년 로마의 역병, 뉴욕의 1832년 콜레라 유행과 1916년 소아마비 유행을 조사한 결과 유행병이 창궐하게 되면 사회는 이러한 질병 유행의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수 인종들처럼 그 사회의 주변부 집단에 돌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로 빈민, 이민자, 유태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러한 인간사회의 본성은 정치가들로 하여금 ‘공공의 적’을 설정하고 싶은 유혹을 선사한다. 그러한 포퓰리즘 선동 과정에서 권력의 획득이 맹목적인 지지로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는 자들


지난 5월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팬데믹은 도시를 바꾼다’라는 제하의 논문에서는 20세기 초 독일 도시들의 독감 사망자와 나치 득표율을 분석을 토대로 스페인 독감 때 사망자가 많았던 독일 도시들이 나치에 더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제시됐다.


1918~1920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은 미 질병관리본부의 추산에 의하면 전 세계에 약 50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독일에서는 약 29만 명이 사망했다. 이 보고서를 제출한 블리클 연구원은 그 이유를 나치의 반(反) 유대인 노선 등이 전염병 피해에 대한 분노를 남에게 돌리려는 경향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비슷한 상황은 대한민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정치적 국정과제로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나치가 유태인을 ‘사회 악’으로 규정한 것처럼 자신의 정치적 반대 세력을 ‘불살라 버려야’ 할 대상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런 대상에는 보수적 기독교 세력도 포함됐다. 코로나19 방역은 광화문에 시민들의 집회를 경찰 차벽으로 차단하고 교회 예배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개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모인 그런 밀집 공간의 성격이 밀집이 허용된 러시아워 시간대에 출퇴근 승객으로 가득한 만원(滿員) 지하철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코로나19 방역이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게 된 이유다.


이러한 방역의 정치성은 국가 권력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도 무의식적 침해를 가하게 되는 경로를 찾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자가격리자에 대해 성범죄자에게 하는 방식의 손목밴드(안심밴드)를 강제 착용하도록 하려다가 인권 침해 논란에 직면하자 자가격리 위반자에 대해 착용하는 방식으로 변경된 경우다.


자가격리자를 무슨 예비 범죄자라도 되는 듯이 다루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발상은 그 내부에 전체주의, 파시즘적인 내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을 자아낸다. 이에 대해 이상철 변호사는 ‘공동체가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희생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들의 경우 그 인권적 침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코로나19에 걸린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일단 ‘확진자’라는 이유로 모든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 그의 과거 동선은 모두 국가에 보고되어야 하고 그가 만난 사람들이 모두 고백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방역 때문이라면 그렇게 해서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기대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8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밝힌 바와 같이 전파경로가 오리무중인 깜깜이 확진자 증가세는 31.9%에 달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이 강력하다는 점에서 아무리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고 접촉자들을 받아낸다고 해도 이처럼 30%에 달하는 깜깜이 확진자들이 존재하는 한 정부의 확진자 추적 방역은 개인들이 당하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인권보다 그 공익이 크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이와 관련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은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권한을 갖게 되면 이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한번 시작된 간섭과 통제는 반복되거나 일상화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부는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유보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자유의 본질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규정이다.


이때 자유의 본질이 침해되는가는 정부의 과잉대응성 여부로 판단된다. 이때 공익을 달성하려는 정부의 목적과 수단 간에 정합성은 중요한 헌법적 판단 근거가 된다. 아무리 정부의 목적이 좋아도 이를 달성하려는 수단에 정합성이 없는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은 위헌이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의 목적과 수단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는 점은 서울과 수도권의 깜깜이 확진율 30%가 말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록다운(봉쇄조치)을 풀고 완화조치를 통해 집단면역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그럴 경우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기에 관료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현실이다.


집권당인 민주당 역시 정치 방역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국을 유지하고자 하는 판단으로 인해 완화조치는 수용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를 보는 관점이 변해야


질병의 사회사 연구의 문을 연 찰스 로젠버그(Charles E. Rosenberg)는 미국에서 1832년, 1849년과 1866년에 세 차례 크게 유행한 콜레라가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한 질병이었으나 미국 사회가 콜레라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바가 세 시기가 모두 달랐다는 것을 그의 고전적 역작<콜레라 시대 The Cholera Years>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즉, 동일한 질병이라도 사회에서 이를 인식하는 것은 각 시기의 구성원들의 지식, 가치, 문화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그에 따라 이에 대한 해결과 대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질병과 환경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조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코로나19에 대해 봉쇄조치들을 풀고 집단면역을 실시하자는 주장도 결국 코로나19에 대한 관점을 단순한 위협에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관점은 연탄가스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돌아볼 때 더 설득력이 있다. 1970년대 들어서면 연탄가스 사고의 피해는 ‘온돌쟁이’라는 시공업자들의 책임으로 몰아 이들을 구속하거나 심지어 가정부가 연탄가스로 사망하면 가정부를 고용한 집 주인이 구속되어 처벌받는 식으로 규제가 전개됐다.


셋방에 아버지와 딸이 연탄가스로 중독사하자 집주인을 과실치사혐의로 입건해 처벌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연탄가스 중독에 대한 처벌과 감시는 70년대 홍수처럼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사고가 감소하지는 않았다. 연탄가스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킨 것은 경제 발전으로 가정의 연료가 연탄에서 도시가스로 변화였다.


같은 원리로 코로나19도 결국은 그 예방과 치료가 시장에서 강력한 수요로 등장할 때만이 극복될 수 있고 우리는 이를 위해 자유와 성장과 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행성 질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한 주체는 언제나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었다는 점은 코로나19 역시 그 해결의 수단을 기업들이 제공할 것이라는 합리적 믿음을 가져다 준다.


그러기 위해 통제와 억압의 수단에서 우리는 자율과 협력이라는 자생적 질서(Spontaeneous Order)의 섭리와 지혜를 믿어야 한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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