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선 안 될 가치로서의 행위, ’소유’

강은아 / 2020-09-24 / 조회: 439

한참 동안 책 표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쩐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소유’와 ‘자유’가 어떤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길래 한데 묶여있는 걸까? 또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닐까?

이 책은 ’무소유’가 진정한 자유를 가져온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소유’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귀한 책이다.


저자인 리처드 파이프스는 미국 레이건 정부에서 동유럽 담당 안보 보좌를 맡은 인물로, 공산주의와 소련의 붕괴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정치체제와 사회제도가 어떻게 해서 영국, 미국과 현저히 다른지에 대해 숱한 고민을 품어왔는데, 그 원인이 ‘소유’에 있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서, 사적 소유권의 존재 여부가 그 사회와 나라의 자유 발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소유’의 뜻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일하고, 또 그에 맞는 정당한 대가로서 받는 보수. 그리고 욕구에 의해 구매하는 공산품들, 살기 위해 사는 주택. 아주 사소하게는 반려견조차 자신의 간식과 장난감에 대해서는 저 나름의 방식으로 소유를 알리곤 하며 소변을 통해 영역표시를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소유는 아주 가깝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아니, 일상 그 자체다. 그리고 이쯤에서 환기하건대, 소유가 일상인 우리는 지금 자유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소유’라고 하면 반감을 갖거나 터부시하기에 이르렀다. 어쩐지 죄를 짓는 것만 같고, 탐욕과 억압을 외부에 표출하는 듯한 모든 감정과 행위의 집약체쯤으로 여겨온 탓이다. 나 또한 무턱대고 그런 오류를 범하였음을 반성한다.

기실 ‘소유’란 멀리해야 할 그릇된 마음가짐이나 불법, 불합리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고대에도 인류는 자신의 사냥감과 식량에 대해 소유욕을 지녔다. 그만큼 태초부터 인류가 품어온 자연스러운 본능이자 권리라는 뜻이다.


저자는 바로 그러한 ‘소유’가 어떻게 인류 역사 속에서 사회와 정치제도의 발전을 좌우했는지 영국과 러시아를 예로 들었다.

개인의 소유를 존중하던 영국 시민들은 자유는 물론이고 그로 말미암아 참정권까지 획득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왕이 함부로 독단적으로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반면에 사유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러시아는 사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부실하니 자유를 주장할 수 없었고, 그것은 곧 정치적 무력감을 가져왔다. 그 후는 불 보듯 뻔하다. 시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독재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긴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온 전제 통치가 그러했고, 지금도 장기집권을 하는 푸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문득, 언젠가 저작재산권을 등록한 일이 떠올랐다. 누가 나의 치기 어린 글 몇 줄을 탐내겠느냐마는 들뜬 기분에 앞서 수수료를 물고서라도 등록을 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소유권’을 천명하는 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타인의 억압과 방해로부터 자유를 보장받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와 같은 지식 재산법의 보장을 받는 창작자들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곧 국력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소유는 자유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하지만, 나를 섬뜩하게 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소유를 침탈당하고 있다는 저자의 예리한 지적 때문이었다.

정부의 풍요로운 복지정책을 받아들이며 부끄럽게도 나는 그저 태평성대가 온 것처럼 마냥 기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몸에 해로운 것은 달콤하다고 했던가? 그것은 점차 우리에게 ‘태만’과 ‘무한한 의존성’을 물속에 물감이 퍼지듯 스며들게 하고 있다. 또한 최악의 경우에는 줄곧 ‘공공선’을 주장해온 거대 정부가 개인의 소유권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개입’이 곧 ‘규제’와 ‘억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그저 정부의 지원과 풍요로운 복지정책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정당한 소유행위’에 준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무조건 ‘소유’가 ‘자유’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가 만들어진 그 배경에는 언제나 ‘소유’가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책 제목에도 ‘소유’가 ‘자유’보다 앞서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학으로 분류되지만,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는 그 어떤 문학 서적보다 더 깊은 자극을 내재하고 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소유의 소중함에 대해 쉽게 이해할 뜻깊은 기회를 얻게 되어 독자로서 지적 자극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소유’한 자는 ‘자유’를 누린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자유롭기 위해 소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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