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로운가

김영웅 / 2020-09-24 / 조회: 1,468

무언가를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경계해야 할 무언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유하기 위해 일을 하고, 더욱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가지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투자한다. 동시에 과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라 지탄받는다. 지극히 개인과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다. 그러나 조금 거시적으로 보면, 결국 이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이다.


물론 이를 이해하려면 소유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소유라는 개념이 없는 자유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사용, 양도, 매매, 생산하려면 우선 소유해야 한다. 공공재를 비롯한 사유재산이 아닌 재화를 사용한다 해도, 여기에 자유는 제한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사적 갈등은 수세기동안 서로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인간에게 소유욕이란 필수불가결 요소다. 동시에 신분제로 예를 들 수 있는 계급이 나타나면서 더 많은 소유를 위한 권력이 존재했다.


봉건제에선 핏줄, 타고난 계급이 그 권력이 되었고, 산업혁명 시대를 보면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지니게 된다. 더 많은 소유를 가능케 하는 요소는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 해 왔다. 소유는 공공의 권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엔 사노비가 있었으며, 이는 주인의 소유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현 대한민국에 법적인 노예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이 다른 개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도, 의미 없는 헛소리로 치부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헌법, 관습, 정부는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기득권의 독점을 위한 제도,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까지 해당 국가, 시대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소유권의 형태도 가변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산업혁명,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에 대한 역사서이다. 동시에 소유라는 개념이 꽃피울 수 있는 환경으로 대표된 영국과, 양극단에 있는 러시아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양극단의 정치와 경제, 자유에 대해 비교하고 우리 사회에 빗대어 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사적 소유를 제거했을 때 사회악이 해결되는 황금시대가 올 거라는 이상은, 그저 환상임을 알고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표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강압적인 폭정이 아니라, 평등이다. 평등은 일견 온화해 보인다. 그리고 공적인 속성을 지닌다. 폭정은 보통 이기적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평등은 기득권을 얻지 못한 다수에게 기득권자가 베푸는 형태로 많이 이루어져 왔다. 정부에선 일자리가 없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게 생계보조를 위한 지원금을 제공한다. 바람직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을 파괴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게 나가는 지원금은 국민들의 세금이고, 그 중 상당수는 자신이 열심히 피땀흘려가며 노력한 돈일 것이다. 그럼 누군가는 노동력을 제공하며 획득한 재화가 누군가에겐 보호라는 명분 아래, 힘들이지 않고(노동력 등의 대가를 제공하지 않고) 얻는 돈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등이라는 이름하에 잠식되는 자유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겐 억울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상당수의 민주주의 국가 시민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의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혹시나 해고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해 기초생활 수급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나 또한 이 정책으로 인해 보호받을 수 있다. 기본권을 인정받는 개념의 동등한 사회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니 당장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관대한 마음으로 납세의 의무를 질 수 있다.


복지제도 폐지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는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이고, 이런 불평등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제한조건과 금액에 따른 기준선이 존재한다. 이것은 지금 시행할 수 있는 최선임과 동시에,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 보호하는 방법의 차선일 것이다. 다만 차선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침해되는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와 평등은 애초에 공존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의 자유를 어디까지 포기하는지, 그 결과가 어떤지도 잘 모르는 채로 잠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의미는, 공익이라는 명분  하에 사익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사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 평소엔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는 통제권을 확보했으며, 노래방, PC방 등 개인 사업장에게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좋은 의도로 이루어진 정책이고, 필요한 정책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제한당한 누군가에겐 직접적인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평등이 제한하는 평등, 평등이 제한하는 자유,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정부 개입을 차단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극한의 자유방임, 무정부주의에서 국가가 굴러가는 것을 바라는 것은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가 유토피아라는 환상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양 극단에 서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한다면 희망은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디까지 등의 정도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가 소유 없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우리가 필요에 따른 국가의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적어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무었을 포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은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욕구를 채워 주는 관대함에 홀려 맹목적으로 의지한다면, 자유는 새장 밖으로 떠날 것이다. 이러한 근대복지국가는 국민들로 하여금 의지하게 함으로써 그 위에 군림한다. 핍박하지 않으나 부드럽게 입을 막고, 평등이라는 명분아래 당연한 듯 소유권을 앗아 간다. 국민들은 보호받지만 동시에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자신의 주관이 아닌 국가의 의도대로 사는 국민이 된다. 


과연 나는 자유로운 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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