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자유> - 코로나 시대를 향한 경고

장용준 / 2020-09-24 / 조회: 455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소유’에 관한 학자들의 논의와, 소유제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역사적 경과를 보여준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왕정이면서도 사적 소유를 발달시켜왔고, 그 결과 공적 권한을 제한시키고 시민의 권리와 자유, 의회주의를 촉진시킬 수 있었다. 개인의 소유에 대한 존중이 자유권이라는 개념을 촉발시킨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제정 군주의 통치 하에서 개개인의 토지에 대해 직접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곧 거대한 전제적 권력의 시민권, 정치권의 제약으로 이어졌다. 소유에 대한 존중 없이 자유가 성장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두 나라의 사례는 결국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소유가 먼저 보장될 때, 자유의 발전도 가능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시민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자신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다. '권리’가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삶, 자유, 재산을 침해할 수 있다는 개인에게 주어진 일종의 보장인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정부로부터 지배받는다는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권력은 점점 더 비대해지며 규제가 강화되어 가는 실정이다. 


올해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대공황에 빠져있다. 한국의 경우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확산세가 약해졌고 전국적인 대유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이에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며 관련 소셜 미디어나 공식 발표물로 한국의 코로나19 관련 방역 시스템을 선전하기 위해 이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곤 했었다.


그러나, 8월 둘째주부터 5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집단 감염과 전염경로를 알지 못하는 '깜깜이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8월 23일 기준 전국 단위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일일 확진자가 400명을 넘는 등 상황이 악화되었고 30일 0시를 기해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었다. 3단계라고 칭하지 않았을 뿐 구체적인 조치들은 3단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조치로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뒤따를 예정이다.


기존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는 유흥주점, 헌팅포차, 노래연습장, 실내 스탠딩 공연장, 뷔페, PC방, 300인 이상 대형학원 등이 고위험 다중이용시설로 선정되어 영업 중단의 행정명령이 발표, 시행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서는 고위험 시설은 물론 카페와 300인 미만 학원, 워터파크, 놀이공원, 종교시설, 결혼식장, 공연장, 영화관, 청소년 수련시설, 멀티방·DVD방, 실내체육시설, 카지노 등 중위험 시설도 운영이 사실상 금지된다. 경제 활동이 사실상 마비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확진자 수 감소를 위해 개인의 소유권까지 일정 부분 제한하는 행정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자유권이 존재하지만 개인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권리 제한은 경제적 자유에 관한 조치일 것이다. 사회 전체에 즉각적인 효과를 줄 수 있기에 이러한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미 소상공인들과 가게 점주들, 영세 자영업자들은 큰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보상 방안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다. 


사회적 형평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이들 시설의 영업금지가 확진자 수 감소에 기여하는지, 중⋅고위험 시설 분류 기준이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지 여부를 행정 주체는 항상 자문해야 한다. 더 이상 “왜 pc방은 고위험 다중이용시설이고 카페는 아니냐?”는 등의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지 않게 임의적인 위험시설 기준이 아닌 효과와 실효성을 잘 검토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복지국가 등 정부주도 행정의 확대는 시대의 흐름이고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밀접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개입의 허용 범위에 대해 국가는 수시로 성찰하고, 지나친 개입은 경계해야 한다. '공익’, '공공선’ 이라는 명목 하에 과도한 기본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개인의 경제적 소유에 대한 제한을 가하는 것은 항상 그 적정성과 비례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역사가 경고하듯 과도한 국가주의의 결과는 전체주의적, 파시스트적인 정부의 출현이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 이 책은 과연 '공익’과 '공공선’이라는 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안겨주며, 또한 국가의 개인에 대한 소유권 제한의 정당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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