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자유는 도덕적이다

송경섭 / 2020-09-24 / 조회: 372

“다주택자는 범죄자다.” 2020년 8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이다. 정작 그 자신이 집 말고도 상가와 다수 토지를 보유한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믿겨지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 배운 교과서에도 나온 상식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당한 방식으로 얻은 재산권을 보장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도입되고 있는 법안들을 살펴보면 이건 마치 소유를 죄악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공론 없이 거칠게 통과 중이다. 게다가 서점과 대학가에서는 자본주의와 시장을 비난하는 책들과 담론이 쏟아져 나온다. 역사학을 배우고 서점에서도 근무한 나였지만,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크게 배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읽게 된 『소유와 자유』는, 밑줄 긋기를 반복하게 만든 책이면서 탁월한 통찰이 담겨 있다. 처음 제목만 보았을 때는 다소 철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내용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저자는 역사학자답게 고대부터 현대까지 소유권을 둘러싼 방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소유제도의 발전이 어떻게 사회를 진보시키고 모두에게 더 이롭게 작용했는지 고찰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유권과 자본주의, 시장은 부정적인 용례로 쓰이고는 한다. 소유와 자본을 비판하는 것이 옳고 도덕적이며 마치 진보이자 미덕이 된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 날선 경고를 하며 왜 소유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지 들려준다. 소유와 자유라는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지난 4년간 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보통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귀결되고는 했다.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대학 교수들은 경쟁 사회의 폐해와 사회의 불공정함을 지적하며 학생들에게 자본주의를 비난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주택자를 범죄자나 도둑들이라고 지칭한 모 국회의원처럼, 이 사회에서 상위 계층에 해당하며 집과 차를 소유하고,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분배’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가진 부를 기꺼이 내놓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대학의 교수들 뿐 아니라 오만한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위선은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자신들이 소유한 부에 대해서는 조용했다.


여러 가지 모순에 의문을 품은 채로 사회로 나가 일도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깨달았다. 소유욕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존중받아야 할 본능이다. 이 본능은 그래서 도덕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지대한 공헌을 했다. 소유권에 입각한 시장과 협력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그래서 도덕적이다. 더 큰 소유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회가 발전하게 되고 혁신이 일어난다. 우리는 이렇게 풍요롭고 번영된 문명을 구추했다.


상투적인 미사여구를 쓰고 싶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역사학도로서, 시민으로서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고 있는지를 새기도록 해주었다. 저자가 그런 부분들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소유제도가 점점 더 죄악시되는 추세에 대한 노학자의 분노, 그러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애정이 담긴 분노가 느껴졌다. 그가 역사학자로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제도를 권위주의와 폭력에 기반한 국가가 멋대로 통제한 국가들의 결과는 비참하다.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기에 개성과 자유가 박탈당하고 결국은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궁핍한 사회를 살게 된다.  


발전 이후에 생기는 잉여 차이에 따른 소득 차이는 존재한다. 물론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여기서 국가가 해야할 일은 저자가 인용한 하이예크의 말마따나 누구나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강제로 개인의 출발 지점을 바꾼다거나 규칙을 바꿔서는 안 된다. 결과의 평등은 이상이 아니라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을 우리는 역사로 보았다.  


나는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전체주의적인 담론과 이미 실패 했던 공산주의에 유사한 논의들이 정의로 둔갑되어 떠돌아다니고 있다. 게다가 그 주체도 불분명한, 소위 ‘가진 자’의 정당한 소유를 두고 비난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그럼 어째서 오늘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일까. 답은 책에 나와있다. ‘자유는 상실할 때만 그 가치를 느끼지만 불평등의 고통은 매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간결하지만 저자의 혜안과 통찰이 담겨 있는 문장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르고 있기에, 자유의 가치는 무시한 채 그저 자신에게 결핍된 것들에만 집중하고 우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사회가 자기의 결핍을 무조건적으로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아무런 혁신도 일어나지 않고 성공과 자아성취를 위한 개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저러한 결과의 평등만을 지향하는 흐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대학의 교수답게 책의 말미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한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내 대답은 이렇다. 절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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