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는 인간, 그리고 자유로의 항해

구설영 / 2020-09-24 / 조회: 2,293

"영원한 봄이었다. 나이팅게일이 노래를 부르고 꽃들이 만발하고 숲은 푸르렀으며 강물은 굽이쳐 흐르고 산은 높았다. 주민들은 순진하고 행복했다."


콜럼버스는 그의 항해일지 속에서 자신이 다다른 신대륙의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달라고 요구해도 거절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사이좋게 나누어 쓰는 원주민들의 삶, 이것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그려온 원시적 삶의 양태였다.


지나친 소유욕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소유의 격차로 인해 피로와 소외감을 느끼게도 되는 세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소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머나먼 낙원을 공상으로나마 그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시대였다면 지금처럼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거나 매일매일을 허덕이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위안을 상상 속에서 잠시 누리며,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껴왔던 것이다.


리처트 파이프스의 '소유와 자유’라는 책은 우리가 누려온 그러한 상상의 세계와 소유에 대한 편견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책이다. 저자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사회를 아우르며, 당대의 대표적 지성들의 견해를 빌려 논리적으로 전개해나가는 소유에 대한 이론을 읽어가다 보면 우리가 지녀온 다소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태도는 허구적 상상에 기댄 것일 뿐이었다는 통렬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비단 현대사회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소유와 미덕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유에 대해 사뭇 다른 태도를 취했는데, 그는 소유가 인간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인간이 더 높은 윤리적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해준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를 탐욕이나 악과 연관 짓는 서구 사회의 반()소유 정서는 오랫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토마스 모어 역시 1516년 출판된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소유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가 현재도 이상적 세계를 표현할 때 쓰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가 그린 세계는 모든 것이 철저히 통제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경직된 모습이다.

  

"모어의 가상의 섬은 암울한 곳으로 모든 도시가 똑같은 계획에 따라 지어지고 시민들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주택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며 10년마다 추첨을 통해 서로 교환한다. 프라이버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공동시설에서 노예가 만든 음식을 같이 먹는다. 어느 누구도 허락 없이 여행하지 못한다. (중략) 시민들은 정부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만약 개인적으로 “공동의 관심사를 조언해줄 경우” 사형을 당한다."


각자가 그릴 수 있는 삶의 무늬가 존재할 수 없는 이러한 사회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방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광장만이 존재하는 사회의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산업화와 개인주의의 물결은 소유에 대한 많은 이들의 태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개인의 번영은 합리적 삶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졌으며 공동의 복지는 개인의 번영을 모두 합친 총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언을 빌려 로크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소유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유 개념은 단순히 개인이 소유한 자산뿐 아니라 개인의 인격과 육체, 개인이 창조한 것까지를 포괄하는 것이기에 소유는 필연적으로 자유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주요 근대민주제도의 상당 부분이 중세 도시 자치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자치도시에서 무역과 제조업을 통해 탄생한 중산층들은 자신의 재산을 자유의 일부분으로 여겼다. 경제적 독립심과 함께 개인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싹트면서 자유라는 관념이 보다 확고해진 것이다. 


소유는 인간을 부자유하게 얽어맨다는 다소 감상적 시각에서 소유와 자유의 관계를 살펴왔던 나에게 저자의 견해는 신선한 통찰로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인간은 취득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살아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유아들은 대체로 자기 소유물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그것을 남과 공유하거나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애쓴다. 오히려 나눔의 미덕에 대해 체득하게 되는 것은 사회생활의 경험이 쌓여가고 공중 예절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저자는 이러한 소유의 심리학적 측면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의 동기는 단순히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윤에 대한 희망에도 있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공공재로 주어져 있을 때 인간은 그것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지극히 일시적인 순간에 국한될 뿐이다. 자원은 무한하지 않고 인간의 이기심에는 쉽게 제동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의 소유권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그것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자연히 애쓰게 된다. 그러한 행위가 장기적으로는 공동체의 이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장기와 개성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된다. 영국에서 특허권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발명품을 내놓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것이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한 영국의 사례와 차르의 전제정치가 오랜 기간 동안 이어졌던 러시아의 사례를 대조하며 소유와 자유 간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고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군주가 나라를 지배하긴 하지만 백성의 재산과 그 개인을 소유하지 않으며 이를 몰수하거나 침해할 수도 없다는 공고한 원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국 의회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나 왕실의 사치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한 영국 왕실이 의회에 자금을 요청하는 대신 헌법적 권리를 점차 내어주게 되면서 결국 의회가 왕권과 동등해지는 것을 넘어서 마침내 나라의 중심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양상이 관찰된다. 이러한 권력 이동의 핵심에는 결국 소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러시아에서는 약 260년 동안(1600~1861년) 많은 이들이 국가나 지주의 농노로 땅에 묶여 살았다.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그들은 시민권이나 경제적 안정을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러시아 군주는 사적 소유에 적대적이었으며 모든 출판물은 강도 높은 사전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소유의 부재는 오랫동안 임의적이고도 전제적인 정부가 유지되는 바탕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현대의 소유와 자유의 관계는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는 위의 두 사례와 달리,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공황으로 사상 초유의 실업 사태가 일어나자 인간의 기본적 요구와 이에 대한 사회의 책임에 관한 개념이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복지에 대한 개념 역시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게 되었다. 이전의 복지가 국민들을 사고나 재해의 불행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조처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공익을 고려한 국가 권한의 확대가 불가피해지게 마련이고 많은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에 동조하기도 한다.


이는 절대 왕정의 시대에 왕권의 강화로 개인의 사적 소유와 권한이 제한받던 시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환경이나 공공의 안전, 각종 차별 문제 등을 해결하고 자유를 보호받기 위해 이제는 국민들이 국가의 간섭을 어느 정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역사적 사례와는 구별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정부의 권한이 점점 강화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에크는 “민주적 정부는 오직 국가가 자신의 활동을 사람들이 동의한 소수의 분야에만 한정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의 의견을 빌려 국가가 공익을 명분으로 권한을 남용하게 되면 개인의 소유권과 자유가 침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취업난이 극심한 시대에 각종 쿼터제나 가산점 문제는 항상 민감한 이슈로 다루어지곤 한다. 그러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평등을 위한 필수적 조치라는 의견과 오히려 그러한 제도가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국가가 환경 보호를 이유로 합당한 보상 없이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다거나, 채용에 있어 쿼터제가 실시됨으로써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보다 여타의 다른 요소가 평가에 포함되는 경우 등을 강력히 비판한다. 지나친 복지는 오히려 사회 구성원의 의존성을 높일 뿐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사회복지, 평등, 환경 보호 등의 명분으로 국가가 사회 전반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는 과정이 자칫 자유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표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오랜 역사 속 인식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역시 그동안 소유를 다소 부정적인 것, 탐욕과 직결되는 것으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을 소유한 자들은 동생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 급급한 전래 동화 속 놀부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인식되기 일쑤였다. 나누지 않는 부, 자신의 소유권에 대한 분명한 주장 등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부정적 시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금도 특정한 재난 상황에서 대중의 인기로 많은 부를 축적한 연예인들이 명성에 걸맞은 금액을 사회에 기부하지 않았을 경우, 그것이 개인의 자유 의지에 달린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비난받는 일이 생기는 것도 우리 사회의 부에 대한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이 책 속 저자의 주장은 다소 파격적이고 솔직하다는 인상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이 책을 발표한 1990년대와 현재 사회 속에서의 부의 분배 양상은 더욱더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으며, 지금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유례없는 전염성 질환의 여파 속에서 각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재난 상황 속에서는 긴급한 구호와 원조를 필요로 하는 곳이 늘어나게 마련이고 이는 자연스레 국가의 권한 강화를 수반하게 된다.


어쩌면 무비판적으로 이러한 방향성을 용인하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저자의 주장은 더욱더 곱씹어볼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벌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존재하지 않는 합의를 전제한 뒤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고 제한하는 정부의 강압적 간섭은 지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공동체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경우, 개인의 자유와 개성은 확장되기는커녕 설 자리조차 잃게 될 위험성이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옷과 장신구, 무기 등은 먼 옛날 그것을 소유했던 이가 직접 손으로 자신의 영혼과 개성을 담아 만든 것이다. 인류는 그러한 소유물을 통해 세상으로 그 자신을 확대해나갔으며, 그러한 개별적 존재의 개성은 지금까지도 그 다채로움을 빛내며 특유의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해왔듯 개인에게 소유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은 인류학적 연구로 볼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소유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 개성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커다란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유를 확보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유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인간들이 분투해온 기나긴 역사의 축도와도 같았다. 저자는 역사 속 고증을 통해 '고결한 야인’, '완전한 평등’과 같은 고정관념과 허상을 논파해나가며 인간이 생득적으로 지녀온 소유본능이 우리 삶과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나갔는지를 생생히 그려 보였다. 점점 다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소유와 자유의 가치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커다란 흐름에 있어 주목할 만한 이정표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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