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김정호 / 2020-09-15 / 조회: 7,822


김정호_2020-28.pdf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s4MK6HtC1wI


오늘은 기름값, 국제유가 이야기입니다.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산업 1위는 항공-여행 산업이고 2위는 아마도 석유산업일 것 같습니다. 석유 수요가 줄어 유가가 곤두박질쳤고 그로 인해 산유국 및 정유사들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세계 주가도 출렁였습니다. 연관 산업인 조선산업 특히 해양플랜트, 유조선 등의 수주도 급격히 줄었죠. 유가가 어떻게 되는지는 세계의 정세와 여러 산업들에 치명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0년 이후 국제 유가의 움직임과 코로나로 인한 충격, 그리고 전문가들은 유가의 앞날을 어떻게 보는지 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급격한 유가 상승과 함께 했습니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은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 증가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은 중국과 아시아 나라들의 폭발적 성장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소비 증가가 두드러졌지죠. 중국도 산유국이긴 합니다만 2001년 WTO 회원국이 되고 본격적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하면서 중국의 원유 소비가 자체 생산을 훨씬 뛰어 넘게 됩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신흥개도국들이 급속한 성장에 동참하면서 석유 수요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하지만 공급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2001년 이라크 전쟁과 2002년의 베네수엘라 석유 파업 때문이었습니다. 공급이 정상화되었지만 수요 증가로 석유 가격의 상승은 지속되었고 2008년 7월에는 배럴당 140달러(WTI: 서부 텍사스 중질유)를 넘어가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2000년 이후 국제유가 추이(배럴당 WTI 가격)>


그 때 서브프라임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옵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도 급감하면서 2009년 1월엔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추락했습니다. 하지만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와 경기 회복으로 2011년에는 100달러 선을 회복해서 3년 정도 그 수준을 유지합니다.


2014년 유가가 다시 폭락하는 사태가 찾아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사우디의 증산 때문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미국의 셰일 혁명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셰일이란 진흙이 굳어 형성된 바위를 말하는 데 그 중에는 석유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조지 미첼은 셰일 바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상업화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그 방법을 프래킹이라고 부릅니다. 파쇄추출이라는 뜻입니다. 2008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대량 시추가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 그래프는 세계 1, 2위 생산자였던 러시아와 사우디, 그리고 신흥강자로 등장한 미국의 원유 생산량입니다. 2012년 무렵부터 미국의 생산량이 급증해서 2018년에는 급기야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셰일 혁명에 의한 원유 공급의 증가는 원유 가격에 하락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6월 국제유가는 70달러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러시아, 사우디, 미국의 석유 생산량 추이>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주도해 감산을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사우디는 오히려 치킨게임을 선포하고 증산에 들어갑니다. 미국의 셰일업자들을 파산시킬 목적이었습니다. 그후 유가는 급락해서 2015년 8월 27일 급기야 30달러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 여파로 셰일업자들의 상당수가 파산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산유국들도 부도 위기에 몰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016년 2월 사우디, 러시아, 카타르, 베네수엘라 등이 생산 동결에 합의하게 됩니다. 유가도 반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존 산유국들의 의도와는 달리 미국의 셰일업자들은 합병과 신기술 개발을 통해서 살아남았고 생산은 다시 증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가 회복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2016년 11월 결국 사우디는 치킨 게임을 포기하고 다른 산유국들과 감산에 합의하게 됩니다. 가격도 50달러 선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산에 동참할 이유가 없는 미국의 셰일업자들은 값이 올라갈수록 생산을 늘리기 때문에 나머지 산유국들이 감산을 통해 유가를 올리기는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2020년 1월 3일 중국의 우한에서 코로나 폐렴이 번질 무렵 국제유가는 배럴당 63달러였습니다. 코로나가 중국 밖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유가도 하락하기 시작해서 3월 6일에는 41달러로 추락했습니다. 사우디는 가격 회복을 위해 감산을 하자며 오페크 회원국들과 러시아를 제네바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3월 6일 그 회의장에서 러시아가 감산에 동참할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고 사우디도 본때를 보이겠다며 감산이 아니라 증산을 선언했습니다. 석유전쟁이 벌어진 겁니다.


코로나로 수요가 줄어드는데 공급 경쟁까지 겹친 결과 유가는 끝을 모르고 추락했습니다. 4월 12일 트럼프의 주선으로 사우디와 러시아가 겨우 감산에 합의는 했지만 유가가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급기야 4월 20일에는 서부텍사스중질유의 5월 인도분 선물가격이 마이너스 37달러가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돈을 줄 테니 제발 석유를 가져가 달라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4월 23일 트럼프가 걸프만의 이란 해군 전함을 격침시키라고 지시하자 유가는 최악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1 5월 11일 사우디가 6월부터 일일 생산량 749만배럴로 100만배럴 추가 감산을 결정하면서 국제 유가는 40달러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9월 13일 현재 서부텍사스 중질유의 가격은 배럴당 37달러입니다.


<코로나 전후의 국제원유가격(WTI)>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2 아래 그래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앞으로의 가격에 대한 예측치입니다. 평균 42~43달러 정도가 될 것이지만 20~90달러 사이에서 출렁거릴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석유 메이저 중 하나인 BP는 조금 다르게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3 석유 수요는 이미 정점을 지났으며 앞으로는 줄어들 일만 남았다는 것이죠. 아래 그래프는 블룸버그에 보도된 BP의 예측인데요. 최악의 시나리오인 파란색 선은 2050년경에는 석유 수요가 현재의 1/5 수준으로 수축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국제 유가도 많이 낮아지겠지요.



물론 EIA의 예측이 주류 의견이고 BP의 것은 소수 의견입니다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견해이니 기억해 두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쓰는 휘발유도 어느 정도는 국제유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휘발유 값에는 세금이 워낙 많기 때문에 국제유가의 등락만큼 큰 변동이 있지는 않을 겁니다.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휘발유 값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조선업 경기입니다. 유가가 하락하면 해양석유시추 시설 발주도 줄고 유조선, LNG 선 등의 주문도 줄어듭니다. 올해 들어 글로벌 주문 규모가 60%나 줄었다고 합니다. 한국 조선 기업들은 다른 나라보다 선전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시장 규모가 줄었으니 조선소 노동자들의 고통이 보통이 아닐 겁니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급격히 떨어지면 고통이 따르는군요.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1 https://www.cnbc.com/2020/04/23/rebound-in-oil-is-temporary-prices-will-turn-negative-again-analysts.html

2 https://www.eia.gov/outlooks/steo/

3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0-09-13/bp-says-the-era-of-oil-demand-growth-is-over?sref=9fHdl3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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