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철학사적 위치

김경훈 / 2020-02-27 / 조회: 502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철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그러한 시도는 철학계에서 이미 개발된 이론을 입맛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다분하다. 스스로의 철학적 기초를 독립적으로 계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거의 유일한 학파는 오스트리아학파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분명 경제학으로 출발하였으나, 그 범위가 점점 방대해진 까닭에 지금은 더 이상 경제학파에 국한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비교적 경제학과 가까운 영역인 역사학과 사회학은 물론, 정치철학, 법철학, 윤리학, 심지어 인식론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학파의 범위는 포괄적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철학적 기초가 주류 학계와 매우 상이하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학파의 의의를 사상사의 맥락에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분명 엄청난 노력이 소모된다. 주류 학계에서 관련 연구가 거의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상술한 주제로 글을 쓸 때, 지금 당장으로서는 오스트리아학파 혹은 미제스의 철학사적 업적을 자평하는 오스트리아학파 내부의 연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당한 비약일 수 있지만 대개 서양의 근대철학은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라는 두 개의 조류로 구성된다고 여겨진다. 그 이후에는 임마누엘 칸트를 시작으로 하여 이 두 전통만 가지고 모든 철학자를 분류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경제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사회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에도 상당한 발자취를 남긴 오스트리아학파의 철학사 인식은 독특하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입장에서 볼 때, 적어도 근대 이후의 서양철학사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대결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오스트리아학파의 자체적인 정의에 따르면, 합리주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선험적인 진리의 존재를 믿는 전통이며, 경험주의는 그것에 반대하는 전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이 합리주의 인식론의 전범을 보여준다. 반면에 경험주의에는 흄, 논리실증주의, 포퍼, 현대 비-유클리드 기하학,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속한다. 그것들이 선험적 진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자신들이 라이프니츠와 칸트 전통의 합리주의 철학의 최후의 계승자이자 가장 발전한 형태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고유의 인식론인 '인간행동학(Praxeology)’이 경험주의 철학의 논리적 파산을 이끌어냈으며, 합리주의의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다고 가열차게 선언한다. 대표적인 오스트리아학파 철학자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에 따르면, 오스트리아학파는 일개 경제학 학파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지식체계가 인식론의 궁극적인 토대이자 합리주의 철학의 궁극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식과 지식을 가장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참된 인식의 여부를 따지는 것인데, 그 과제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학의 오스트리아학파에 의해서 완전히 종결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치철학과 경제학은 궁극적인 인식의 기초로부터 논리적 결함 없이 연역적으로 도출되었으므로, 곧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보편적으로 타당한 선험적 진리로서의 자격을 가진다. 그에 비례하여, 오스트리아학파가 아닌 모든 다른 입장은 최소한 부분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완전히 잘못된 것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적어도 사회과학, 인식론, 정치철학에 있어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이 역사의 종언이자 최종형태라는 것이 그들이 굳건히 고수하는 입장이다.


본인이 전문적인 학자는 아니기에 확언할 수는 없는 바 이지만, 오늘날의 학계에서 상술한 오스트리아학파와 같은 비타협적인 학적 태도를 가진 학파 단위의 입장은 상당히 드물다고 생각된다. 유사학문이 아니라 학계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비주류 전통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주류 패러다임과 극심하게 상충하는 전통 중 하나로 분명 오스트리아학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가 그들의 주장대로 인식론의 완성인지는 보다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 중 무리없이 인정할 수 있을 법한 사안 역시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오스트리아학파가 합리주의 전통의 가장 일관된 계승자라는 평가이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과학계의 일반적인 패러다임을 살펴보면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물론 합리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학파 혹은 학자는 철학계 내에서 여전히 다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합리주의가 함의하는 바, 즉 부정불가능한 선험적 진리의 발견과 그것의 응용을 가장 충실하고 근본적인 영역까지 발전시킨 입장은 아마 오스트리아학파일 것으로 사료된다. 베르그송, 후설, 하이데거 등 20세기의 유럽철학은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으나 그에 비례하여 치명적인 실수를 종종 저지르곤 했다. 그들이 '행동하는 인간’을 인식의 시작점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오스트리아학파는 '행동하는 인간’을 시작점으로 하여 그것으로부터 논리적 결함 없이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행동하는 인간’ 이상의 궁극적 기초를 더 이상 논할 수 없다면, 오스트리아학파는 가장 근본적인 인식론적 함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여러 주장은 분명 보다 엄격한 검증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주장이 상당히 비타협적이고, 일반적인 상식과 종종 충돌하며,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주류 학계에 대응은 완전한 무관심에 가깝다. 오스트리아학파가 분명 과학이면서도 선험적 진리를 추구하는 매우 독특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철학적 성격을 따지는 전문 철학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오스트리아학파가 그들의 주장만큼 엄밀하고 궁극적인 학파가 아니라고 한들, 그들이 합리주의 전통의 현대적 계승자로서 가지는 사상사적 의의는 부정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와 관계 없이, 그들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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