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로서 바라본 영화 ‘기생충’의 인기

배민 / 2020-02-13 / 조회: 719

아카데미 영화상을 4개 부문에서 받은 봉준호의 영화가 며칠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연한 주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예상했듯, 미디어에서 조명하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영화감독 봉준호에 대한 기사들은 하나같이 극찬 일색이어서 이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평론은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이 역시도 이해가 갔다. 아카데미 영화상 역사를 감안했을 때 당연하리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예상했듯, 그러한 언론의 조명 중에선 한국 nationalism의 일면을 보여주는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언론인 존 밀러(Jon Miller)가 봉감독의 영화를 비하했다고 전하는 기사들이었다. 실제로 그 내용을 보도한 한국 언론들은 존 밀러가 뭐라고 말했는지 보다 존 레전드(John Legend)의 존 밀러 비판 기사를 대부분 더 자세하게 싣고 있었다. 하지만, 존 레전드의 발언은 그저 존 밀러의 발언을 조롱하는 데에 치중한 별로 언급할 만한 의미 있는 발언은 아니었다. 즉, 요 며칠간 한국인들은 봉 감독의 영화를 폄훼하는 어떤 비평도 용납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존 밀러가 '이 사람들이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고 발언한 트윗의 원문은 매우 짧았다. 애매하게 표현된 주어 '이 사람들(these people)’을 한국의 언론들은 대부분 존 밀러가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들 같은 타국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 일부 미국 언론과 존 레전드의 발언을 통해 인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존 밀러는 '이 사람들’이 계급적 갈등의 관점에서 상을 수여하는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이라는 것을 자신의 트윗을 통해 밝혔다. 결국 존 밀러의 발언의 본질은 할리우드에 팽배한, 그리고 오늘날 미국의 문화계에 팽배한 좌파 시각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몇 년 전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던 '문라이트(Moonlight)’ 때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해에 경합을 다투었던 경쟁작 '라라랜드(La La Land)’ 보다 문라이트가 더 작품성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영화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평가였겠으나, 존 밀러의 트윗에도 언급됐듯, 사회적 차별, 사회적 정의와 같은 현상과 개념에 대해 깨어 있는 지식인이라는 것을 영화 심사위원들이 어필하고 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영화상뿐만이 아니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노벨 평화상은 아예 논외로 하고, 노벨 경제학상 역시 친좌파적 경제학자들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위에 언급한 상들의 내막을 그 영역 안의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느끼는 그 분야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세밀히 알긴 힘들 것이며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순진하게 보인다. 단순히 순진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nationalism에 경도되어 있는 감성적인 면까지 보여준다. 집단 감성의 시대, 어떤 의미에서 낭만주의 (romanticism)의 시대를 한국인들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회에 독립된 개인, 사적 주체로서의 책임감을 요구 받는 개인이 과연 설 자리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강하게 든다. 이 점이 비슷하게 문화계와 학계, 언론계가 좌파에 기울어 있는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서도 더 한국사회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영화 '기생충’의 작품성은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 영화가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social view)은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명백히 좌파적, 사회주의적 시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작년에 그런 비슷한 영화가 할리우드에도 있었다. 조커(Joker)가 그런 영화이다. 본질적으로 두 영화는 도덕(morality)과 인간성(humanity)을 계급과 연관시키는 공통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가진 자의 비도덕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 없이 이를 전제로 하여 캐릭터들이 창조되는 반면, 못 가진 자의 비도덕성에 대해서는 그 안의 사회적 요소, 사회적 굴레를 한없이 친절하게 파헤쳐서 보여주는 비슷한 시도를 두 영화가 하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쟁과 선택의 관점이 아닌, 착취와 억압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회주의의 논리는 자연히 그 착취와 억압으로 인해 못 가진 자의 도덕과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계급성에 대한 자각… 좌파는 마르크스 이래로 변한 것이 없다. 마르크스가 수학적 논리를 끌어다가 무슨 과학화 시도를 하는 듯했지만, eugenics나 phrenology 와 같이 대중의 감성에 맞춘 응용과학이 인기를 끌던 딱 19세기적 지성의 분위기에 맞는 논리였을 뿐이다.


가령 moral reform, institutional reform 등 온갖 사회적 개혁(reform)이 주 화두였던 19세기 영국 사회는 분명 자유로운 생각들이 활화산처럼 분출되던 공간이었다. 새로이 성장한 중산층(middle classes)은 다양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보다 '도덕적이며 지성적인(moral and intellectual)’ 인간 사회를 향한 자신들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공유하였다. 밀(Mill)이나 벤담(Bentham), 스펜서(Spencer) 같은 엄청난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 급 사상가들뿐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이름의 단체들이 그들의 요구에 맞춰 대중 강연 및 집회를 열었다.


의미는 있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위선의 잔치였다. 보다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는 했던 열망은 인간이 자신이 어떤 동물인가를 보다 더 정확히 알게 되는 20세기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에 의해 도전 받게 된다. 결국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외면한 이상적인 열망 만으로는 어떠한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정치적으로도 경험하게 된 것이 20세기 세계사의 교훈이었다. 물론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이라는 낭만적인 테제로만 역사를 바라보게 만드는 한국의 교육은 그러한 교훈을 외면하고 있지만. 사실 한국사 교육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 중 하나 역시 6.25 전쟁의 원인을 너무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 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이 비극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 전쟁의 철학적 원인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변화무쌍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관찰과 분석이 아닌, 수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감성으로 인간을 재단하고 사회적 이상을 논하는 환원론적, 갈등론적 사고를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 지길 고대한다. 사람들이 '세뇌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내가 볼 때 좌파적 집단 감성의 메트릭스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해 좀더 냉철하게 직시하고, 약하고 모순된 인간의 한계성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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