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보이지 않는’ 원인

김경훈 / 2020-01-28 / 조회: 656

미제스 연구소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마크 손튼(Mark Thornton)은 2015년작 영화 '빅 쇼트'를 지금까지 '자본주의'를 다룬 모든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가장 사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높게 평가했다. 모기지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2007-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 미국 금융시장의 왜곡된 상품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세계 경제위기를 이해하는 시발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훌륭하다. 사실 시나리오 자체는 상당히 지루한 편이다. 종종 영상미가 돋보이기는 하나 그마저도 독특한 수준을 이루진 못했다. 이 영화는 미학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영화적 성격이 강한 다큐멘터리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전 미제스 연구소 부대표 및 현 미국경제연구소(AIER) 대표 제프리 터커(Jeffrey Tucker)의 지적대로, '빅 쇼트'는 매우 위험한 영화이기도 하다. 분명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다루고 있는 영화지만, 선명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보이는 것'만 다루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은 다루고 있지 않은 영화이다.


시장에서 불량 금융상품의 판촉이 촉진되었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원인인지, 즉 경제위기의 원인이 은행 및 금융 산업계의 탐욕, 혹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 인센티브 구조의 선천적 결함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이는' 것 만 가지고 사태의 인과원인을 단정짓는 것은 엄격한 학문적 태도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으로 인과관계를 추적하고 현상에 대한 명석한 이해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교훈을 따라 '보이지 않는' 것 역시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후반의 미국 주택거품과 경제위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정부규제와 중앙은행의 역할에 있다. 이는 '경기변동이론(Business Cycle Theory)'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의 비효용적 통화 및 신용정책에 의해 시장에서 리스크 높고 불안정한 불량 금융상품이 파생되었다는 것이 2007년 경제위기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다. 경제위기를 다루는 매체에서 경기변동이론과 통화정책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빅 쇼트'에서는 중앙은행의 화폐정책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으며, 경기침체의 해소책이 시장규제에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는 분명 실재적이지 못한 분석이다.


그럼에도 (계속하여 언급하듯) 이 영화는 사실 그 자체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저널리즘 매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경기변동이론과 통화 및 신용이론의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감상한다면 유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이론적 내용을 배제하고 현상 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론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금융산업과 자본주의는 강력한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는 추론에 도달하기 쉽다. 분명 인과적으로 실재적이지 못한 결론이다.


정확한 이론 없이 '빅 쇼트'를 본다면 경제위기 이전의 대부분의 금융활동이 악의적인 사기행위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발생하는 시장 신호를 따라 과거의 행동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경제활동을 했을 뿐이다. 당시 금융시장에서의 손익 인센티브 신호가 비정상적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 금융시장 구조 자체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인센티브 신호가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한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 미국 중앙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인위적인 금리 인하는 곧 대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고 저축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출이 쉬워졌기 때문에 주택 자체를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 주택을 구매하는 행위가 서민층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가능하지 못했을 방향으로 주택시장이 비대해졌고, 그에 비례하여 금융상품 역시 정상적인 시장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불량 상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결국 2007-8년의 경제위기는 정부의 책임이다.


영화 '빅 쇼트'의 주인공 두 명은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한참 전에 이미 경제위기를 예측하였다. 금융상품이 건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 임계점을 도달한다고 정확히 예측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주인공은 영화 내내 바보 취급을 당한다. 정확한 경제학 이론에 입각하여 미래를 예상하고 현 상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과 기업가적 기민성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두 주인공 역시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미래 예측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촉이 좋았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파악하는 이론이 아니라, 개인적인 식견과 명백하게 관찰되는 것만 다루는 감각에만 의존하면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감각적으로 보았을 때 시장경제의 장기적 유지는 경제행위자의 개인적 도덕감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파악했을 때, 경제행위자의 '현시된 선호(demonstrated preference)', 수요-공급의 법칙 등을 감안한다면 시장경제는 도덕과 무관하게 가능한 최적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장해준다. 간섭받지 않는 시장경제에서도 실패와 성공의 반복은 계속되지만, 2007-8년의 경제위기와 같이 똑똑하고 경험 많은 최상위 엘리트들이 연쇄적으로 실수를 일으키는 경우는 일어날 수가 없다.


경제행위자의 행태를 보여주는 경기변동이론 없이 이 영화가 유일하게 성공한 비판적 조명은, 납세자들이 엘리트 계층에서 만연한 모럴 해저드의 보증인이라는 정확한 지적이다. 불황은 '과오투자(malinvestment)'를 바로잡는 기간이다. 잘못 배치된 자본을 정상적으로 재배치하여 시장경제를 원상복구하는 것이 불황이다. 이는 분명 고통스럽지만 결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경제구조가 잘못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만약 불황기간의 고통을 막자고 정부가 양적 완화를 시행하거나 파산한 기업에 대한 구제를 시행한다면, 불황의 고통은 더 장기적으로 오래 지속될 뿐이다. 지난 경기침체에 미국 연방정부를 비롯하여 전세계의 많은 정부는 파산한 기업의 부채를 면제하거나 대리 납부해주었다. 그러한 재원은 결국 일반 서민이 납세한 세금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마불사'를 이유로 파산을 막아준다면 기업가들의 실수는 반복된다. 실패한다고 해도 정부가 다시 복원해주기 때문이다. 구조 전체에 '보험'이 걸린 시장경제는 기능할 수 없다.


제프리 터커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경제학계의 로르샤흐 테스트라고 할 만 하다. 잘못된 경제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 경제이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 그리고 정확한 경제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점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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