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유사과학인가?

김경훈 / 2020-01-02 / 조회: 960

제임스 M. 뷰캐넌(James M. Buchanan)과 고든 털럭(Gordon Tullock)이 설립한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의 '무정부-자본주의(anarcho-capitalism)'적 함의를 연구하는 저명한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Bryan Caplan) 조지메이슨 대학교 교수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 실질적으로 '메타-경제학(meta-economics)’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현대 주류 경제학의 경험주의-실증주의 방법론을 상당부분 옹호했다. 오늘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지배적인 인식론적 패러다임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학파는 많은 비판과 마주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과연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과학으로 간주할 수 있냐는 주제이다.


오스트리아학파가 종교집단과 같다고 비난한 폴 크루그먼의 발언이 아마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주류 학계의 시각을 가장 잘 대변할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해 가능한 가장 비판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오스트리아학파는 경험적 검증 혹은 반증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유사과학이다. 즉, 경험적-통계적 자료 혹은 정보를 통한 개선 혹은 비판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과학으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2. 극단적인 선험주의-합리주의에 기초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경험주의 비판은 마찬가지로 논리실증주의를 비롯한 극단적인 경험주의-실증주의에 관한 것이며, 비교적 온건한 경험주의-실증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즉, 오스트리아학파는 논리적 일관성의 추구를 위해 극단적인 시작점을 설정했으나, 그에 비례하여 간과한 부분이 생겨났기 때문에, 극단적 선험주의와 경험주의 모두를 경계하는 중도적인 입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첫번째 비판점은 과학을 협소하게 정의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가진다. 경험주의 패러다임이 우리의 인식체계를 장악한 이후, 과학은 곧 자연과학을 의미하는 뜻으로 변모하였으나, 사실 과학은 비단 자연과학뿐 아니라 학문일반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오늘날의 유사과학, 사이비과학이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과학 방법론에 부실한 것을 넘어 학문적 엄밀함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분명 자연과학과 매우 상이하지만 충분히 엄밀한 태도로 임해진 학적체계라 볼 수 있다.


두번째 비판점은 경제학이 반드시 선험적 차원에서 공리-연역적으로 유도되어야 한다는 오스트리아학파 주장의 타당성을 의문시한다. 단 하나의 입장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학파는 필연적으로 강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오늘날 권장되는 학문적 태도와 매우 상반되기 때문이다. 폐쇄적이고 비타협적인 오스트리아학파의 프로그램은 열린 태도와 검증 및 반증을 중요시하는 주류학계의 과학적 회의주의와 강하게 충돌한다. 오스트리아학파에 공감하거나 동의하더라도 오스트리아학파의 엄격한 비타협주의에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실례로 하이에크 전통의 오스트리아학파는 미제스-라스바드-호페가 주도하는 정통 오스트리아학파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주류영합적으로 발전하였다. 하이에크가 오스트리아학파의 폐쇄성을 보완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비타협적인 태도가 가지는 위험성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가능성이 다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위험성 때문에 비타협적 태도가 학문적으로 적절치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과학과 학문일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중립성과 실재성이다. 즉, 우리는 개인적인 가치판단을 중지하고 오로지 무엇이 사실 그 자체와 가장 합치되는가를 다루어야 한다. 오직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존중만이 학문하는 사람에게 허용되는 최소한의 가치판단이다. 이런 점에서 오스트리아학파 인식론의 타당성 여부가 오스트리아학파의 학문적 지위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오스트리아학파 인식론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약 오스트리아학파 인식론의 태도가 비타협적이라고 거부한다면, 그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인식론 일반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학파조차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견해를 내세울 자격이 없다. 따라서 오스트리아학파 인식론의 타당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확실한 진리, 즉 특정 학문에 대한 접근법은 그 학문 주제영역과 가장 합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연과학 방법론을 모든 영역에 적용하고자 하는 '물리주의(physicalism)’ 태도는 필연적인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여러가지 난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유클리드 기하학의 5대 공리와 기본적인 명제논리는 부정할 수 없다. 평면 위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언제나 180도이며, 총각은 언제나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 기하학과 논리학을 경험적으로 검증하려고 할 수는 없다. 물리주의 태도를 취하여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파악할 영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보조방법에 불과하다.


관건은 경제학의 주안점이 자연과학과 같은 경험주의 태도에 있느냐, 기하학 혹은 논리학과 같은 선험주의 태도에 있느냐에 있다. 우리의 직관은 전자를 향한다. 경제학은 경제현상에 대한 학문이다. 경제현상은 현실세계에서 발생한다. 현실세계에 대한 연구는 경험을 수반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현상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직관의 결론이다. 너무 자연스러운 추론의 연쇄이기 때문에 무어라 반박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심리적 타당성을 가지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제현상은 인간행동의 결과이다. 따라서 경제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행동의 학문이다. 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서의 경제를 넘어, 그것의 근본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어찌되었든 인간과 인간행동을 탐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모든 사회과학의 공통점이다.)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주류경제학은 지금까지 이상적 인간상을 가정하여 인간행동을 탐구해왔다. 가설에서 출발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었고, 그 다음으로 행동경제학이 대두했다. 이는 경험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파악하고자 하는 주류경제학의 시도이다. 행동경제학은 경험과학의 테두리에 있기 때문에 물론 한계를 가진다. 경험적 데이터를 완전히 파악하기도 힘들 뿐더러, 완전히 파악한다고 한들 인과관계 설정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행동은 가설적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학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경제학은 영원히 가설로만 가득 찬 학문으로 남을 것이다. 매우 유용하고 실재에 가까운 이론이라고 한들 진리는 아니다. 이는 현재 주류경제학의 학문적 지위일 뿐만 아니라 물리학을 비롯한 모든 자연과학의 태생적 한계이다. 주류학계의 테두리 안에 있는 그 어떤 경제학자도 이러한 한계를 필연적이라 받아들이며,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자연과학에 있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도 당연하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는 의문을 제기한다. 자연세계와 인간은 같은 인과관계를 공유하며, 같은 방법으로 탐구될 수 있는가?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자연세계는 인과적이고 경험적이지만, 인간은 목적론적이고 선험적이다. 인간이 자유의지가 없고 그저 사물에 불과한다고 한들 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행동의 형성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그것이 목적을 가지고 있고, 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결과보다 선행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가적으로, 개체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필연적인 인지적 한계가 인간행동을 구조짓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행동의 목적론적, 선험적 특징에 주목하며 오스트리아학파는 그러한 특징에서 논리적으로 유도되는 인간행동 법칙이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시간선호 등 기본적인 경제학 법칙은 검증 혹은 반증의 대상이 되는 가설적 지위가 아니라, 인간행동 법칙에서 반드시 유도되는 선험적 사실이다. 인간이 행동한다는 것이 사실인 이상 이를 반증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학파는 경제학이 순수한 선험과학이라고 선언한다.


주류경제학은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자연과학 방법론을 수용했지만, 오스트리아학파는 보다 비판적 태도에서 출발하여 경제학의 고유한 학문영역을 나름대로 설정하는데 성공했다. 오스트리아학파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경제현상에 대한 학문의 독특한 성격을 가능한 실재적으로 이해하려 한 그들의 시도는 매우 고무적이고, 학술적이다. 또 주류 경제학계의 자연과학 의존적 성격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다.


비주류라는 한계상 규모가 작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학파의 구체적 연구성과나 이론이 주류경제학보다 적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인식론과 철학적 기초라는 측면에 있어 오스트리아학파는 주류경제학이 다루지 않는 주제를 다룬다. 경험적 연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스트리아학파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점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학문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라는 면에서 주류경제학은 오스트리아학파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오스트리아학파가 유사과학이라는 비판이 타당하려면, 비슷한 맥락에서 주류경제학은 근본없는 가설 덩어리라고 비판받아야 한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엄밀성과 과학성을 의심함으로써 더 나은 발전을 도모한다면, 그것은 권장될 만한 태도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무시하고 비하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학문적으로 적합한 접근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가 일반적인 경제학에서 다루는 것 이상의 영역에 집중한다는 브라이언 캐플란의 지적은 일견 옳다. 이는 오스트리아학파가 가지는 학문적 함의가 주류경제학이 간과한 부분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경제현상, 사회현상,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오스트리아학파를 회피하지 않고, 하나의 엄밀한 학문으로 대우하며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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