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국가 문화발전은 경제적 풍요와 아무 관련 없다?

이문원 / 2019-10-31 / 조회: 1,991

생각 외로 많이들 퍼져있는 믿음이다. '가난한 예술가만이 진정한 예술을 한다’는 식 낭만적 통념에서 비롯된 믿음 같은데, 의외로 문화예술 거의 전 분야가 산업화된 2000년대에도 이런 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물론 상식적으론 말이 안 되는 개념이다. 문화상품도 다른 많은 상품들과 똑같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그 퀄리티가 향상될 수 있다. 그러려면 일단 '시장’이 그런 경쟁을 부추길 만큼 활성화돼있어야 하고, 또 그러려면 대중의 소비력이 뒷받침돼줘야 한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대체로 문화도 발전하게 된다.


애초 한국 대중문화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상징하는 '한류’란 현상부터가 그렇다. 한류는 1997년경부터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국 TV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으며 등장했다. 한국도 아니라 대만서 처음 붙인 단어다. 원인도 간명하다. 수년 동안 경제성장률 7% 이상을 기록하며 달려온 한국의 경제력이 바탕이 된 결과다. 그 지표도 대중문화 흐름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한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박은 고도성장을 통해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시작된 이른바 '용돈시장’의 탄생을 알린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영화가 멜로와 에로 일색에서 벗어나 로맨틱 코미디, 액션, SF 등으로 장르를 크게 넓힌 시점 역시 1990~1995년 사이였다. 고도성장의 열매를 따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 경쟁에 경쟁을 더해 한층 나아진 퀄리티로 내수시장을 확대케 됐고, '안에서 끓는 물이 밖으로 넘친다’는 논리처럼, 그렇게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마침내 해외로까지 시장이 확보된 것이 바로 1990년대 후반 한류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한류가 진행될수록 묘하게도 위와 같은 믿음, 즉 특정국가 대중문화 발전도는 그 나라의 경제적 풍요와는 별반 관련이 없다는 믿음도 싹트기 시작했다. 일단 중국 상황부터 그런 믿음을 부추겼다. 상황을 지켜보면서다. 한국 대중문화상품은 아시아 전역에 걸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지만, 초강대국이자 어마어마한 소비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 대중문화상품은 '그 어느 것’도 해외 각국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있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핫100 차트 2위에 랭크되면서 알려진 정보다. 싸이 이전 빌보드 핫100 10위권 내 입성했던 마지막 아시아 가수와 노래가 필리핀 록커 프레디 아길라의 '아낙’이었단 점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아낙’은 1978년 당시 빌보드 5위까지 랭크됐었고, 세계 23개국으로 음반이 수출돼 총 800여만 장을 팔아치우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필리핀이다. 지금도 후진국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나라에서 빌보드 5위에 전 세계 800만 장 판매다.


그 전엔 2001년 예술영화전용관에서 개봉돼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쇼크가 있었다. 미국 음악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쿠바를 방문해 1940~1950년대 하바나의 대표적 사교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연주했던 보사노바 뮤지션들을 찾아나서는 내용이다. 저명한 독일감독 빔 벤더스가 그 과정을 담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 역시, 쿠바다. 남미공산권 후진국이다. 그런데도 라이 쿠더와 빔 벤더스에 의해 발견되자마자 새롭게 레코딩 된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미국 최고권위 대중음악상 그래미상까지 수상했다. 영화가 많은 팬층을 생성한 한국에까지도 그 멤버들 일부가 찾아와 공연하기도 했다. 후진국이라 해서 대중문화 수준과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 아니란 얘기다. 다만, '발견’이 안 될 뿐이란 입장이 그 근거를 찾게 된 시점이다.

 

필리핀과 쿠바의 공통점은 '한때나마’ 부유했던 국가란 점


그럼 '실제’는 어떨까. 과연 위와 같은 널리 퍼진 전제, 즉 한 국가의 문화예술 분야 발전 정도는 그 나라의 경제적 풍요와 아무 관련 없는 것일까. 먼저 필리핀 사정부터 보자.


물론 1978년 당시 필리핀은 빈국의 길을 한창 걷고 있었다.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의 계엄령 선포 이후 지독한 독재체제 하에서 필리핀은 막장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레디 아길라와 '아낙’의 성과는 필리핀의 소위 '잘 나가던 시절’ 역량이 해외에까지 닿는 데 걸린 시간으로 보는 것이 옳다.


1960년대까지 필리핀 경제는 어마어마했다. 유엔 아시아극동위원회가 발간한 '아시아 극동 경제 보고서'에서 필리핀의 1946~1954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4.5%로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1위였다. 1960년대 말레이시아의 1인당 GDP는 $287.44~$380.68 선으로 1969년이 돼서야 한국에 추월당했다.


그렇다면 문화는? 나무위키의 '필리핀/경제’ 항목 설명을 보자.


“21세기 초에 와서도 대한민국 청소년/대학생의 부모님 세대들은 그때를 기억한다. 일본과 쌍벽을 먹을 정도였으니 한때 “아시아 록의 양대 산맥은 필리핀과 일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으니, 자연 대중문화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심지어 컬러TV방송도 아시아에서 두 번째(첫 번째는 1960년에 컬러 방송을 개시한 일본)로 빠른 1966년에 개시했다. 이는 정상급 강대국인 소련, 서독, 프랑스, 영국보다도 빠른 것.”


프레디 아길라는 1950~1960년대 필리핀 대중문화 최전성기에 닦여진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이었다. 아시아 2위 부국이란 명성에 걸맞게 1950~1960년대 필리핀의 경제는 활황을 이뤘고, 그만큼 풍족한 환경 속에 문화소비도 커졌다. 음반 레이블만 1000여개에 달했다는 시기가 바로 1960년대 중반이다.


그처럼 탄탄한 경제력이 바탕이 돼 다양한 제작사들이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니 자연 뛰어난 퀄리티의 상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 분야는, 위 나무위키 설명처럼, “아시아 록의 양대 산맥은 필리핀과 일본”이란 말까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필리핀이라는 이름의 예외’마저도 궁극적으론 그 이전, 경제 활황기에 쌓여진 역량을 통해 등장한 후대 뮤지션이 빌보드 차트 5위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는 답을 도출해내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쿠바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차례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쿠바 역시 1930~1950년대 사이 경제적으로 매우 윤택한 나라였다. 이 시기 쿠바는 남미에서 고기·야채·곡물 1인당 소비율과 자동차·전화·라디오의 1인당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이탈리아와 비슷했고, 일본보단 상당히 높았다. 이렇듯 경제적으로 부흥하던 시기, 1940년대 쿠바의 하바나에 있던 가장 유명한 사교클럽들 중 하나가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53년 쿠바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경제는 주저앉고, 1959년 대통령에 오른 마누엘 우루티아 레오는 아예 향락적 문화생활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치기까지 했다.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하면서 쿠바의 전통음악들은 가히 사멸단계로 접어들고 말았다.


바로 이런 쿠바의 전통음악 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대표되는 씬을 되살려낸 게 미국 월드 서킷 레코드의 프로듀서 닉 골드와 앞서 언급한 미국 뮤지션 라이 쿠더였단 순서다. 쿠바 경제호황이 끝나갈 무렵인 1959년 이후로 40년 가까이 묵혀졌던 경제 불황 속 쿠바 뮤지션이 미국의 경제력과 자본에 의해 비로소 세계에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쿠바의 경제적 몰락은 이렇듯 세계적 가치가 있던 자국 음악상품들이 시장을 형성하지 못해 사멸단계에 이르게 했을 뿐더러 '이미 있던 것들’조차 제대로 팔 수 없는 위기에 몰려있었던 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일정부분 이상 경제력을 갖춘, 그만큼 문화의 생성과 유통에 통달한 국가의 민간시스템만이 이토록 좋은 '물건’들을 해외에 알리고 팔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추게도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발전의 기본토대는 일단 '문화적 자유’


그럼 중국의 경우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사실 단순하다. 이른바 '문화적 자유’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다. 가장 최근 사례가 지난 봄 실시된 고한령(古限令)이라 불리는 상식 밖 규제다.


지난 4월 중국광전총국은 TV와 웹드라마 플랫폼, 극장 등에서 사극 상영에 대한 일시 금지조치를 내렸다. 지난해 광전총국은 허구가 일정부분 이상 가미될 수밖에 없는 사극 형식을 놓고 “역사적 허무주의를 단호히 반대한다”며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마음대로 희화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번 조치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란 판단이다. 이를 중국선 고장극(古装劇, 고전복장극=사극)에 대한 제한령으로서 '고한령(古限令)’이라 부르고 있다.


왜 중국이 아직까지도 아시아 엔터테인먼트를 제패하지 못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대목이다. 막대한 자본력과 시장규모만이 문화발전 및 그 경쟁력 강화의 절대배경은 아니란 얘기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바로 문화적 자유 확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입장에선 최소한 지난 사반세기 동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일이어서 체감이 잘 안 될 뿐이다.


공적개념이 통제하는 문화산업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위축된다. 문화적 상상력과 도전정신 자체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메시지와 무관한 상품들에서조차 그렇다. 언제 어떻게 '거기까지’ 제한이 들어올 진 아무도 모른다. 그럼 그만큼 크리에이티브 역량과 의지도 떨어지게 되고, 결국 이미 통용된 해외문물을 꾸준히 카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론이 돼버린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중국 외에도 '딴죽’을 걸 수 있는 사례들은 많다. 예컨대 북유럽 국가들도 반론사례가 될 수 있다. 핀란드, 덴마크 등 1인당 국민총소득이 높은 국가들 대중문화는 왜 발전하지 못했느냐는 의문 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쉽다. 문화는 내수시장에서 단련되고 가다듬어져 해외로 나가는 원칙, 언급했듯 '냄비 안에서 끓어야 밖으로 넘칠 수 있는’ 구조인데, 이들 북유럽 국가 내수시장은 일단 인구규모 차원에서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517만 명, 덴마크 566만 명, 핀란드 548만 명, 그나마 북유럽에선 가장 인구가 많다는 스웨덴조차 1,027만 명 수준이다.


시장이 너무 작다보니 자국 영화나 뮤지션은 찾아보기 힘들고, 국가가 자국문화 보호를 위해 직접 세금을 투여해 제작한 콘텐츠가 자국 콘텐츠 중심인 경우들까지 존재한다. 그런 '공무원 콘텐츠’가 시장경쟁력이 있을 리가 없고, 대부분 해외 콘텐츠를 수입해 소비하고 있다. 흔히 '선진국스러운 선진국’ 기준을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들로 잡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저 3만 달러 이상-5,000만 명 이상 국가들 대중문화상품만이 현 시점 세계 대중문화계를 휘어잡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서도 중국 같은 특이사례는 또 빠지지만 말이다.


'경제적 동경’을 살 수 있는 나라만이 '층계’로 문화로 내려 보낼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좀 더 냉정한 속성도 존재한다. 애초 문화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며 그저 서로 '다를 뿐’이란 입장에 반발하며 시작되는 화두다. 그럼 왜 해외로까지 팔려나갈 수 있는 상품들이 존재하고 아닌 것들이 따로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간명하지만, 치명적이다. 다음은 서울경제 2012년 2월27일자 기사 '[서경이 만난 사람] 나윤선 재즈 보컬리스트’ 중 일부다.


“지난 1995년부터 프랑스에서 유학했는데 언젠가부터 LG TV, 현대차, 기아차 이런 것들이 주변에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참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이런 게 처음 느낀 한류였어요.”


그로부터 몇 년 뒤부터는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을 만나면 하나같이 영화 얘기를 물어봤다고 한다. 박찬욱·홍상수·김기덕 등 작가주의 감독들이 유럽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후 몇 년 전부터는 유럽 젊은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K팝을 즐기게 됐고 이는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급속히 확산됐다. 이것이 유럽에 한류가 전파된 대략의 과정이다.


이를 흔히 '층계효과’라고 부른다. 당연히 해외로까지 기술상품을 팔 수 있을 정도 국가라면 어느 정도 이상 경제발전이 이뤄진 나라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세계적 차원에서 위상과 권위를 일정부분 이상 확보한 나라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오는 '경제적’ 동경심과 인정이 그 나라의 문화상품까지도 받아들이도록 심리적으로 유도한다는 것, 즉 경제적 위상 차원에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층계 식으로 내려오는 게 바로 문화전파 순방향이란 것.


경제적 풍요가 마련돼야 각종 문화상품 퀄리티가 향상돼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된단 차원도 존재하지만, 경제가 발전한 나라만이 그 상품을 해외에 팔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한단 차원도 존재한단 얘기다. '문화강국’이 되기란 참 여러 요인들이 한꺼번에 클릭돼야 가능한 법이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의 이름은 언제나 '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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