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을 위한 국가는 없다

김영준 / 2019-10-14 / 조회: 8,984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의 기원에 관한 두 가지 설명이 있다. 그 중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물론 사회계약론 설명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국가가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사회계약에 그 국가의 구성원이 될 시민들이 동의하여 국가는 생겨나게 된다. 다른 설명은 맨슈어 올슨이 제시했던 대안적인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유랑을 하며 약탈을 일삼던 도적이 한 곳에 정착하여 불완전하지만 지속적, 영구적으로 수탈을 하는 것으로 생존 전략을 바꾸면서 생겨나게 된다. 두 설명에서 국가는 각각 시민들의 안위 보장과 지속가능한 수탈을 위해 존재하지만, 어쨌든 공통적으로 자신의 영토 내에 속한 시민들의 기초적인 안위를 보장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지금 홍콩인을 위한 국가는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앙정부는 지금 홍콩인의 기초적 안위와 시민적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포기하다 못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안위를 위협하고 시민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친중파 폭도들에게 두들겨 맞은 일도 있었고, 홍콩 경찰은 송환법 반대시위를 하던 한 시민의 눈에 고무탄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중국 공산당은 홍콩으로부터 10분 거리에 있는 선전에 군대를 보내 홍콩을 위협했다. 최근에는 시위에 참여한 학생이 홍콩 경찰이 발포한 실탄에 왼쪽 가슴을 맞는 일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일련의 시위에 참여해온 여중생이 나체 상태의 주검으로 바닷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홍콩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강압적 과잉진압, 모여드는 군대, 진압 과정에서의 반인륜적 행위들, 민주화와 자유를 향한 외침, 중앙정부의 언론통제, 1980년 5월의 광주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날 광주에서 불렸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늘날 홍콩의 투쟁 속에서도 울려 퍼졌다. 조슈아 웡은 한국이 침묵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했다. 2014년 우산혁명을 주도했고, 지금의 최근 또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대한민국은 중국 공산당의 만행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물론 어려운 일이긴 하다. 중공 권위주의 정부 하에는 14억의 소비자들이 있다. 블리자드, 디즈니, 애플, 구글 등의 초국적 거대기업들도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유치하게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일본에게 그랬듯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한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불매운동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지구상에 널려있는 다른 시장을 찾으면 된다.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해 자력갱생을 외치던 민주당 정부의 논리 중 하나가 이것 아니었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왔다는 이미지를 그렇게도 이용해온 정당이, 일본에 대해서는 민생을 걸고 내기를 하면서도 홍콩의 참상과 위기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홍콩인들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중공 정부가 아닌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부를 세우지 않을 수가 없다. 중공 정부는 더 이상 홍콩인들을 위한 정부가 되어줄 생각이 없고, 그런 중공 정부를 돌려세울 대외적인 억제력도 사실상 없다. 며칠 전 홍콩에서 임시정부 수립의 선언이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물론 그 선언 자체에는 홍콩인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홍콩인이라면, 폭압적인 중공 정부와 홍콩 괴뢰정부로부터 자유를 쟁취해야만 하는 홍콩인이라면, 언젠가 자신들을 위한 정부를 새로이 수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중공 정부의 신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홍콩의 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나의 중국’과 같은 폭압적인 전체주의 체제는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지배를 강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수탈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지배하고 규율할 국가와 정부를 자신이 스스로 고를 수 없다면, 그런 자신은 납세자로서 지배자에게 봉사하는 노예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때문에 중공 치하의 반자유적이고 임의적인 지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중공 정부는 이런 측면에서 홍콩인에게 불리한 질서를 강요해왔고, 홍콩인은 그러한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을 이어온 것이다.


홍콩이 만일 독립을 이루어내게 된다면, ‘하나의 중국’이라는 체제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독립을 바라는 소수민족들에게는 홍콩의 독립이 좋은 명분과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종국에는 여러 개의 국가로 분열해야 한다. 그래야만 동아시아는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고, 더욱 번영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중국’으로서 남아있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제정치의 문제를 각 세력 간의 땅따먹기 문제 정도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일리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미국의 패권이 절대적인 이유는 전 세계가 달러화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러에 대한 신뢰는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에서 온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야만적인 폭군 행세를 한다면 미국은 오히려 그 패권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오늘날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패권국가임은 틀림없지만, 그 패권은 아무렇게나 휘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패권을 창출한 논리의 틀, 미국의 경우에는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의 확대라는 명분 안에서만 자유로이 쓰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국제 질서에 중국과 미국이라는 2강 구도가 형성되어야 할 당위는 없다. 중공 정부의 폭압에 맞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에 맞설 ‘하나의 중국’보다 미국 밑을 기는 ‘여럿의 (자유) 중국’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2강 구도가 필요하다면 유럽 연합과 같은 대안도 존재한다. 미국을 압박하는 힘이 꼭 ‘하나의 중국’과 같은 모습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달러를 무기로 제멋대로 구는 미국에 유의미한 경고와 압박을 줄 힘이 정말 필요하다면, 더 나아가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아시아적 질서가 필요하다면, ‘여럿의 중국’은 연합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폭압적 무력행사와 같은, 시민을 향한 중앙권력의 위협이 자리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홍콩의 독립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절실하다. 1980년 5월의 광주 때와 같은 무력진압의 위험은 앞으로 더욱 커지겠지만, 이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체제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홍콩이 물러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제사회도 관심을 놓지 않고 홍콩을 지켜봐줘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의 자유의 바람은 홍콩에서 불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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