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엄마, 우리 아이 키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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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장윤성 200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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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아기 키워주세요?
장윤성
나는 네 살 난 딸아이의 아버지이고 아내와 난 맞벌이 부부이다. 몇 년 전 내 딸아이가 태어나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 자주 받은 질문이 있었다.
"애기는 어디다 맡기셨어요?"
다행히 나는 어린이집을 하는 장모님을 두고 있다. 장모님은 일 년 미만의 아이들도 맡아주신다. 당연히 사람들은 나 같은 경우는 특수하고 드문 경우이므로, 내 대답이 자신들의 육아 고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자연히 대화는 어린 아기들을 어디다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는 푸념으로 흐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을 어디에 맡겨야할지 고민하는 엄마아빠들의 경우, 돌도 안 된 아이를 육아시설에 맡기자니 채 받아주는 곳이 많지 않고, 개인적으로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을 고용하자니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친정 부모님 또는 시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경우가 있지만 직접 아이를 키워주는 것을 거절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설령 키워준다 해도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냉큼 좋은 대답이 서질 않는다.
여기서 몇몇 사람들은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전문으로 받아주는 영아 전문 육아시설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익의 사회 환원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러한 사업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정부는 이런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을 미리 예언(?)하고 이에 대한 지뢰밭과 같은 규제를 이미 요소요소에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규제들은 아이들을 좀 더 쾌적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키우고자 하는 정부의 선한 의지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정부는 한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시설이 받을 수 있는 값을 일방적으로 매겨 놓았다. 그 값으로는 육아시설은 이익을 충분히 낼 수 없다. 물론 어떤 이들은 육아시설을 하면서 무슨 큰 이익을 내려고 하느냐며 윤리적인 화살을 쏘아댈 것이다. 그러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은 육아시설의 과실 없이도 사망할 영아사망증후군의 위험성이 있다. 더군다나 원인을 부검을 통해 밝히기도 전에 당장 그 시설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매우 의존적이면서 감염의 위험성도 높고 어손이 많이 가고 그렇게 해도 병원에 갈 일도 많다. 한마디로 제대로 키우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온 국민이 차별 없이 육아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용을 하향 제한하였다. 결과는 어떻겠는가? 영아를 받아주는 육아시설은 찾기 어렵고 대신 법적인 테두리에서 비껴난 미자격 보모들이 상당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학원 강습을 막았더니 불법 무면허(?) 개인 과외만 늘어난 셈이 되었고, 고액의 육아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회 저소득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대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정말 밤낮없이 엄마, 아빠 모두 맞벌이를 하고 있다. 적절한 영아 육아 시설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한다.
내가 비록 육아나 경제학에 전문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몇 가지 자유시장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해보고 싶다.
첫째는 영아 육아시설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간소화하는 방법이다. 꼭 필요한 보건 위생 부분의 최소 규제만 남기자. 육아 시장 진입이 쉬워져야 많은 엄마 아빠들이 쉽게 아기들을 맡길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면 형편없는 환경에 아기들을 방치할 수 있다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육아시설에 문제가 있다면 아기들의 엄마 아빠들과 서비스 수혜자인 아기들이 스스로 가장 훌륭한 판단자가 되어 좀 더 훌륭한 환경을 제공하는 다른 육아시설을 훨씬 쉽게 (시장에서 공급자의 규모가 커졌으므로) 선택할 것이다.
둘째, 육아비용에 대한 규제는 완전히 풀어 버리길 바란다. 시장에서 어느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을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하도록 해야 불법적인 무면허 암시장의 등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영아들은 면역학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이므로 이들을 같이 키운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대단한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 이런 필수적이고도 고가의 육아라는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가격을 하향 규제한다는 것은 결국 육아사업자들을 불법으로 몰아가고, 아이들을 위험한 환경으로 내모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가격이 자유화 된다면 서로 다양한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 당연히 저소득계층은 나름대로의 최소한의 필수적인 육아서비스를 선택할 자유가 생겨난다.
지금 신문과 방송의 매체를 통해 육아 시설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보면, 십중팔구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언론이나 소위 시민단체가 제시하는 문제해결 방법일 것이다. 결국은 국민의 현재 세금에서 나오거나, 장차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세금을 내고 채권을 갚아가며 지불하는 비용인 것이다. 어느 경제학자의 표현대로, 이런 비용은 '나무 뒤에 숨은 우리의 미래'가 지불하는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영아 육아 시장의 성장을 고의적으로 (또는 선한 의도로) 억누른다면, 고비용의 비전문적인 (암시장과 같은) 양육자가 그 시장을 잠식할 것이고 비효율적인 사회 비용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처음에 '아기 어디다 맡겨요'라는 질문은 육아와 교육의 문제를 국가에게 일임에 버린 이 땅의 부모들의 푸념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젊은 엄마 아빠들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여전히 사회주의적 잣대로 찾고 있다.
내 아이가 이제 네 살이다. 이 아이의 동생이 이제 생기면 아내는 다시 장모님께 이런 부탁을 할 것이다. '엄마, 우리 아기 키워주세요'라고. 하지만 결국 나도 다른 대다수의 엄마 아빠들과 같은 푸념 섞인 고민을 조만간 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좀 더 자라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우리 딸을 위해 내가 교육 이민가야 할 것인가'라고 고민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