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00일 평가와 과제 / 외교·안보·통일분야
8월 17일로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다. 통상 정권 초기 100일 동안에는 조직 정비, 인력 배치, 정책 설계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이 기간은 임기 5년의 방향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0일 간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통일 분야에서 한 일을 정리해 보자.
우선 윤석열 정부는 대외정책의 기조로 ‘가치외교’를 제시했다. 이는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밝힌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국정목표의 외교적 투영이라 할 만하다.
5월 20~21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과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국정철학과 이를 수호·증진해야 한다는 소신을 공유했다. 그리고 국격에 걸맞은 ‘가치외교’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미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북한 퍼스트’, 종전선언, ‘사드 3불 공약’ 등으로 불화했던 한미동맹을 복원·강화한 것이었다.
한미 양국은 동맹의 지평을 전통적 안보동맹은 물론, 가치동맹, 경제기술동맹 나아가 글로벌 전략동맹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모든 분야에서 한미 협력의 폭과 깊이를 심화시켜 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과 안보, 가치, 경제기술, 글로벌 전략동맹 확대 합의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신냉전의 도래로 인해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커지고 있는 현 국제사회에서 신국제안보질서의 형성에 적극 참여한다는 자세를 보여줬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6월 29일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정치·군사 분야에서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참가국 정상들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협력을 당부했다. 특히 경제안보, 사이버안보를 거론하며 “나토 동맹국과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는 적극적 입장을 표명했다.
작금 국제사회는 코로나19 사태와 기후 위기를 계기로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품목의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고 탈중국화를 위한 공급망 재편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추세에 맞게 윤석열 정부도 능동적 경제안보 및 과학기술 외교를 전개한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배터리 등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한 국제협력 참여, 원전 수출 및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 확대, 미국 등과 우주 등 과학기술협력 확대, 지역·국가별 맞춤형 방산 세일즈 외교 강화에 시동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의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 보상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것을 과거사에 종속시키는 문재인 정부의 근본주의적 입장을 지양하고,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안보(북한 핵·미사일 위협), 경제교류, 과거사, 영유권 갈등 등 현안 문제를 이슈별로 대처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NATO 정상회의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 등의 계기를 활용해 양국 간 대화 재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외교부는 7월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역별로 특화된 협력 네트워크 구축 ▲ODA 및 디지털 공공외교 강화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 강화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를 외교분야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출범 초기 윤석열 정부가 맞닥뜨린 안보 현실은 너무나 엄중한 것이었다. 우선 북한의 핵공격 능력 증강 및 핵사용 위협이 현실화됐고, 중국의 핵전력이 대미(對美) 핵보복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핵 방어를 제공하는 한미 간 ‘확장억제’ 공약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 수단으로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모든 방어역량을 사용하겠다는 점을 천명하는 등 미국의 굳건한 대한(對韓)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또 양국 정상은 미 전략자산의 적기 전개와 필요시 추가 조치를 모색하기로 하는 한편, 그동안 중단·축소된 연합훈련의 확대를 위한 협의를 개시했다.
이후 한미연합훈련의 정상화가 육해공에서 속속 진행됐다. 7월 11~14일 한미 공군의 연합비행훈련, 7월 15~18일에는 한미 보병의 과학화전투연합훈련, 이어 7월 19~22일에는 유사시 항공전력을 활용해 전방으로 물자를 보급하는 상황을 가정한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KMEP)이 각각 실시되었다.
한편 7월 29일 한미 국방장관은 8월 말 연합훈련(을지프리덤실드)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훈련에는 국가총력전 개념이 도입됐다. 우리 군 당국은 이번 훈련에서 전시체제 신속 전환과 함께 북한 공격 격퇴와 반격작전까지 전 과정을 숙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대규모 실기동 훈련도 2023년부터 재개하기로 하고,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도 더 강화해 실시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은 북한 핵능력 고도화에 걸맞은 한미안보협력(특히 북핵 안보태세)의 업그레이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국방부는 7월 22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국형 아이언돔’ 조기 전력화 ▲북한 위협 대응 한국형 3축 체계 확충 가속화 ▲유·무인 복합체계 시범부대 본격 가동 ▲ ‘국방AI센터’ 창설 등을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북한 바라기’ 정책과 대북 저자세로 일관했다. 하지만 임기말 북한의 도발과 협박으로 3차례의 정상회담은 빛이 바랬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추진’과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통일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원칙(자유민주주의와 인권)에 입각하면서도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이어달리기’의 입장에서 지난 정부가 성과를 낸 부분은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북한이 핵포기에 호응할 경우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경우 미·일·EU와 협력해 독자제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이밖에 통일부는 7월 22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 비핵화와 신뢰 구축의 선순환, 상호 존중에 기반한 남북관계 정상화, 북한인권 증진 및 분단 고통 해소, 민족동질성 회복, 내실 있는 통일준비의 5대 핵심과제와 ▲인도적 협력 ▲그린데탕트 추진 ▲국민참여형 사회적 공감대 형성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발전적 계승 등을 세부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실용주의적인 대북정책을 전개하면서도 보편적 가치 존중의 차원에서 ‘북한인권법’을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 20일 이신화 고려대 교수를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2017년 이후 공석 상태)에 임명했다.
통일부는 국회와 긴밀한 협력 하에 북한인권재단을 조기 출범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하에서 발생한 귀순 어민 강제북송과 서해상 우리 공무원 피격사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재발방지 보장 및 피해구제 조치를 실시하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윤석열표 외교·안보·통일정책은 전체적으로 잘 설계되었다. 앞으로 실현가능성 및 국내외 환경을 고려한 우선순위 설정과 전략적 추진이 요망된다고 하겠다.
제성호 미래한국 편집위원·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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