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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본드 발행을 둘러싸고 심각한 의견대립을 겪던 유럽연합 EU가 일단 위기를 넘겼습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EU 명의 채권의 발행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진원지는 소위 코로나 본드, 또는 유로 본드 발행과 EU Recovery Fund(부흥기금)입니다. 본드는 채권을 뜻합니다. 코로나 본드, 또는 유로 본드란 코로나 사태 해결을 위해 각 나라가 독자적으로 채권을 발행하지 않고 EU 공동 명의로 채권을 발행한다는 겁니다. 각자 명의가 아니라 공동 명의로 돈을 빌리자는 거죠. 그렇게 빌린 돈은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배분을 한다, 그리고 상환은 공동 예산으로 충당한다, 이것이 Recovery Fund(부흥기금) 정책의 골자입니다.
그 돈이 누구에게 얼마가 배정되는지가 중요하겠죠. EU 집행부의 제안에 따르면 유로 본드로 조달할 전체 액수는 7,500억 유로입니다. 우리 돈으로는 1,016조원에 해당합니다. 큰 돈이죠. 이 돈은 Recovery Fund(부흥기금) 계정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의 2/3에 해당하는 5,000억 유로는 Grant, 즉 대가 없는 그냥 주는 보조금이고,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2,500억 유로는 Loan, 즉 대출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대출금은 Grant와는 달리 갚아야 하는 돈이죠.
대가 없이 지원되는 Grant가 관심의 초점인데요. Grant 지출 계획을 보면 대부분 남유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각국별 금액을 알아볼까요? 금액은 모두 유로입니다. 이탈리아 818억, 스페인 773억, 프랑스 388억, 그리스 226억, 포르투갈 155억 등입니다. 북유럽 국가로는 독일이 288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혜택은 남유럽에 집중되는데 상환은 공동예산으로 충당이 될 계획입니다. 공동예산은 각 국이 GDP의 1% 남짓을 갹출해서 조성됩니다. 그러니까 EU 부흥기금 정책으로 남유럽 국가들만 이익을 보고 북유럽 국가들은 손해를 보게 되죠.
이 지도는 위의 내용대로 할 경우 나라별 이익과 손해의 정도를 보여줍니다. 파란색은 이익이고 빨간색은 손해인데요. 가장 짙은 파란색이 GDP의 1.6% 이익, 가장 짙은 빨간색이 GDP의 1.2% 손해를 나타냅니다. 가장 짙은 파랑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나라가 가장 큰 이익을 봅니다. 반면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빨간색이죠.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유럽부흥기금 시행에 따른 국가별 손익 상황>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본드의 발행을 적극 찬성합니다. 게다가 이 나라들은 국가부채가 이미 100%에 근접했거나 또는 넘어섰기 때문에 더 이상 빚을 지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위험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국채 발행 시 보장해줘야 하는 금리도 높습니다.
이 지도는 나라별 GDP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을 보여줍니다. 자주색이 짙을수록 국가부채비율이 높고 초록색이 짙을수록 부채비율이 낮음을 표시합니다. 남쪽일수록 짙은 자주색인 반면 북으로 갈수록 자주색이 옅거나 초록색으로 바뀌죠. 즉, 남유럽 국가들은 빚이 많고 북유럽 국가들은 빚이 적습니다. 그러니까 남유럽 국가들은 어떻게든 북유럽 국가들에 업혀서 가야 하는 처지인 겁니다.
프랑스의 경우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위기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돈만 놓고 보면 굳이 유로 본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EU의 결속, 그것을 통한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이 정책을 밀고 나간다고 봐야 할 겁니다.
북유럽의 나라들은 그런 제안에 대해 반대해왔습니다. 남유럽 나라들의 코로나 피해가 심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과 돈 문제는 별개다. 돈이 필요하면 각자 채권을 발행해서 쓰면 되지 왜 공동명의로 하자는 거냐. 왜 우리에게 덮어 씌우려 하느냐. 쓰는 건 결국 남유럽 국가들이 쓰고, 갚을 때 다 같이 갚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입장이죠.
특히 Frugal Four, 검소한 4인방이라고 불리는 네 나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은 적극적인 반대국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돈을 아껴 쓰기 때문에 적자도 잘 안 내고 국가 부채 비율도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흥청망청 쓰느라 빚 더미에 앉게 된 남유럽 국가들을 도와주기 위해 자기들이 빚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런데 최근에 독일이 태도를 바꿔서 국면이 전환됐습니다. 독일의 경우 검소한 4인방은 아니지만 건전한 재정이라면 그들 못지 않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특히 빚 내서 쓰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Schwarz Null, 영어로는 블랙제로 정책이라는 것을 수립했습니다. 재정적자를 내지 않는 정책을 말합니다. 2011년에 헌법에다가 못을 박아 두었을 정도입니다.
이 그래프는 2010년 이후 독일의 재정상태를 보여줍니다. 독일도 2010년에 GDP의 4.4%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기록했는데요. 그런데 2011년에 블랙제로 정책을 도입했고, 바로 재정이 균형 상태가 됩니다. 적자가 사라진 거죠. 놀랍게도 2014년부터는 재정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2019년에는 재정 흑자가 GDP의 1.4%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독일은 나라 돈을 아끼고 빚 지기 싫어하는 나라입니다. 당연히 남유럽을 위해서 빚을 떠 앉는 것에도 반대해왔습니다.
그런 독일이 왜 입장을 바꿔서 EU 명의 채권 발행에 찬성하고 나섰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잘못하면 EU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들을 끌어안지 못할 경우 이들이 영국처럼 EU를 탈퇴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탈퇴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갑자기 해체된다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찾아올 수 있죠. 독일을 포함한 유럽 나라들 뿐만 아니라 세계가 금융 공황에 휩쓸릴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피해만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유럽의 독립성도 흔들리겠죠. 특히 중국의 침투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EU의 외교 수장인 조셉 보렐은 5월 16일자 칼럼에서 중국이 분할-지배 전략으로 유럽 분열을 기도해왔다고 경고했습니다.1 또 런던 SOAS 대학의 스티브창 교수도 익스프레스 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분할-지배 전략을 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2 중국 출신 교수가 그렇게 말한 겁니다.
중국이 동유럽의 17개 국가를 묶어서 일대일로 정책의 파트너로 삼고 있는데 이는 분할 통치 전략의 속셈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EU가 분열된다면 유럽 국가들은 중국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해서도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게 될 겁니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빚지기를 그렇게 싫어하는 메르켈과 독일 국민들이 입장을 바꾼 겁니다. 어느 정도 단기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EU를 지켜내는 것이 좋겠다는 거죠. 그래서 현재 유로 본드 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외에 독일까지 들어와서 4개국이 되었습니다. 독일이 합류함으로써 유럽부흥기금 계획은 큰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통과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EU의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로 합니다.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통과가 안됩니다. 검소한 4인방은 여전히 남유럽 국가들의 태도에 수긍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장 격인 네덜란드의 경우 국민의 60%가 반대하고 있답니다.
EU 최강대국인 독일이 앞장을 섰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 관철이 될 가능성은 높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에 아끼지 않으면 난관이 닥쳤을 때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원리는 개인이나 국가나 다를 것이 없군요.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6.22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메르켈과 독일의 결단, 해체 위기 넘긴 EU, 그러나 여전한 Frugal 4의 반대. Euro Bond & Recovery Fund 문제. 험난한 EU의 앞 날.>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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