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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퍼펙트 스톰, 삼각파도 속에서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파도는 브렉시트, 즉 유럽연합과의 결별 사건이고요. 두 번째 파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코로나 사태, 세 번째 파도는 홍콩 국가안전법 제정 때문에 중국과의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적대적 관계입니다. 세 개가 모두 핵폭탄 급이어서 영국에 어떤 피해를 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브렉시트부터 알아보죠. 영국이 드디어 브렉시트를 했습니다. 즉 유럽연합(EU)를 떠났습니다. 1월 23일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법을 통과시켰고, 29일에는 유럽연합 의회가 영국의 탈퇴를 승인했습니다. 영국 시간 1월 31일 23시로 드디어 영국은 EU의 회원국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2016년부터 시작된 브렉시트가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완전한 마침표가 아닙니다. 탈퇴 이후 영국과 EU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탈퇴가 이뤄졌습니다. 어정쩡한 브렉시트인 거죠. 그래서 영국 EU 양측은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정하고 그 안에 협상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브렉시트 이전과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관세 문제, 비자 문제, 노동력 이동 문제 등 협상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에 누가 봐도 12월 31일 시한이 너무 빠듯했습니다. 협상에 속도를 내야만 했죠.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공교롭게도 브렉시트가 이뤄진 1월 31일 영국에서 2명의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후 영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가 나온 나라가 되었습니다. 6월 7일 현재 사망자가 4만 명, 확진자가 28만 명을 넘었습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자신도 코로나에 감염 되어 격리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협상을 하겠습니까? 브렉시트 협상은 거의 진척이 없습니다.
브렉시트와 코로나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영국인에게 홍콩 사태까지 겹쳤습니다. 중국이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키자 많은 영국인들이 격분했습니다. 특히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랬습니다. 홍콩 반환 전에 영-중 두 나라가 맺었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 경은 이 법이 홍콩 시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중국을 비난했습니다.1 7인의 전직 외무장관들도 성명을 내고 존슨 총리가 G7 국가들을 규합해서 중국에 대항할 것을 촉구했습니다.2 원래 존슨 총리는 친중적 성향이었는데 보수주의 매파의 분위기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민법을 개정해서라도 홍콩시민 285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홍콩 시민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은 브렉시트의 취지와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영국인이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민자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300만 명에 가까운 홍콩인을 새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브렉시트를 했던 목적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지요. 실제 홍콩 이민을 받아들일 때 영국 내부에서 또 다시 큰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멀어지는 것 자체도 영국에게 큰 손실이 될 겁니다. 1984년 대처 수상이 등소평과 공동선언을 한 후 영국과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영국의 기업인들이 중국과의 비즈니스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을 비롯한 보수당 정치인들은 친중 행보를 보였습니다. 경제 강국이 되어 가는 중국과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브렉시트 이후에는 EU와 멀어지더라도 중국과 FTA를 맺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현직 총리인 존슨도 친중 성향이었습니다. 런던 시장 재직 시절 낡은 항구인 Royal Albert Dock의 재개발을 위해 중국 부동산 기업의 투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수상이 된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5G 네트워크 설치를 화웨이에 맡기겠다고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복동생이 중국 비즈니스에 깊이 관여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영국은 EU 대신 중국과 손을 잡을 복안이 있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순식간에 중국이 적대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국은 EU와 결별하자마자 대안이었던 중국과의 관계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입니다.
경제에 어떤 충격이 올까요? 만약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채 EU와 결별할 경우 관세와 비자, 통관절차 등 EU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다 폐지되었던 장애물들이 다시 생겨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WTO 규정을 따르게 되는데요. 평균 3.2%의 관세가 생겨납니다. 이것을 적용하게 된다면 당연히 수출입이 줄어들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UK in a Changing Europe이라는 연구소는 10년간 GDP의 약 3.3%의 직접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3 생산성 추락 등 간접손실까지 합치면 8.1% 감소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과의 관계단절로 인한 충격이 겹칠 테니 실제 경제 손실은 이 숫자를 훨씬 넘을 겁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EU와 자유무역 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죠. 하지만 EU는 자유무역의 대가로 만만치 않은 대가를 요구합니다. EU 회원국들에게 영국 영해에서의 어업권을 인정해야 하고, 국내법을 개정해서 EU 회원국일 때와 동일한 노동 및 환경규제법을 만들 것을 요구합니다. 분담금도 내야 합니다. 회원국일 때와 큰 차이가 없어지는 거죠. 이런 것에 반대하는 영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EU와의 자유무역 합의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협상 상대방인 EU도 사정이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EU 회원국은 27개국인데 코로나로 인해서 이들이 서로 마음을 합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돈 문제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EU 명의로 채권을 발행해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합니다. 반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소위 Frugal Four(검소한 4인방)라고 불리는 이 네 나라는 반대 입장이죠. 평소에 흥청망청 쓰느라고 빚더미 위에 앉아 놓고 왜 자기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느냐며 EU 명의의 채권 발행에 반대입니다. 독일도 원래는 반대 입장이었는데 뜻밖에도 찬성으로 태도를 바꿨습니다. 잘못 하다가는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나라들마저 EU를 탈퇴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러면 EU 자체가 해체될 수 있습니다. 그건 독일이 원하는 바가 아니죠. 그래서 독일은 EU 명의의 채권을 발행해서 남유럽 국가들을 돕자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검소한 4인방 네 나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습니다.
EU의 결정 방식은 만장일치입니다.4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통과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의견이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에 영국과의 협상에서도 EU 27개의 회원국들이 어디까지 합의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합의 없이 영국과 EU의 협상은 12월 31일 시한을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EU 27개국과 남남이 되고, 영국 경제는 타격을 받을 겁니다. 그런데 그 충격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 영국이 분열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영국에 속해 있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분리하여 EU에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북아일랜드 역시 영국을 탈퇴해서 아일랜드 모국과 합치려 할 수도 있습니다. 2020년 영국은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에 휩싸였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6.8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영국, 퍼펙트 스톰에 들다. 브렉시트, 코로나, 홍콩 사태>의 텍스트입니다.
2 https://hongkongfp.com/2020/06/01/uk-ministers-call-for-intl-hong-kong-monitor-group/
3 https://ukandeu.ac.uk/research-papers/revisited-what-would-trading-on-wto-terms-mean/
4 https://www.eumonitor.eu/9353000/1/j9vvik7m1c3gyxp/vh75n47fr4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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