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착한 청교도들 기근 계기로 공동사회 포기…
사유재산 인정하자 수확 급증…이후 시장경제 전환
현재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는 명실상부 미국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맹주인 미국마저도 한때 사회주의를 경험한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1620년, 청교도 이주민들이 미국에 처음 정착했을 무렵이었다.
공동생산을 포기하다
당시 이주민들은 개인의 선택을 최소화하고 공동체 중심 생활을 했다. 부의 공유를 지향하고 개인의 소유를 철저히 금지하는 등 모든 재화의 공동관리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청교도 이주민들의 공동체 생활은 3년도 채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기근이었다. 기근 앞에 무너진 청교도 이주민들은 공동사회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체제로 회귀했다. 하지만 단순히 기근만으로 체제 전환이 이루어졌을까? 당시 이주민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윌리엄 브래드포드의 「프리머드 개척」이라는 논문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부의 공유를 원칙으로 하는 공동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효율적으로 변했으며 사람들 사이에 불만과 혼란을 야기했다고 한다. 아무리 시간과 공을 들여도 돌아오는 결과가 똑같았기 때문에 먼저 열성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자연히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수확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는 기근이라는 악재로 돌아왔다. 결국 이주민 지도자들은 굶주림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낼 결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고수하던 공동생산과 공동소유라는 공동체적 생활을 과감하게 버리고, 각자 생산한 만큼 소유하는 방식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은 하지 않고 불평·불만을 하기 바빴던 사람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부지런히 일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생산성이 올라가고 수확량도 크게 증대되었다. 당연히 그해에는 기근이 찾아들지 않았다.
미국을 있게 한 것
청교도 이주민들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시장경제체제의 경이로운 힘을 몸소 체험하면서 두 번 다시 공동사회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청교도 이주민들의 공동사회는 일종의 사회주의가 적용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생산도구의 공유화를 통한 부의 사회적 공유,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골자이다. 그런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강화로 체제 전환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부국이며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미국을 있게 했다.
자본주의는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실현하는 경제체제이다. 자원의 낭비를 최대한 막고, 한정된 자원을 통해 최대한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이다. 이 점이 바로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가능케 하는 강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인류는 수많은 경험 속에서 ‘가장 덜 나쁜 체제’로서 자본주의를 역사의 교훈으로 갖게 되었다. 청교도 이주민들의 공동사회 실험에서 20세기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일련의 사회주의 실험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오로지 자본주의만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라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완전무결한 경제체제라는 뜻이 아니다. 자본주의 역시 숱한 허점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자본주의가 가장 유효한 경제체제로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노력이 무의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언컨대 자본주의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더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기 위해 인류를 괴롭히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자본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 기억해주세요
부의 공유를 원칙으로 하는 공동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효율적으로 변했으며 사람들 사이에 불만과 혼란을 야기했다고 한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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