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의 탈라스 전투는 東西 무역로 전쟁
길이 열려야 문화가 퍼지고 자유와 문명이 발전
고선지와 탈라스 전투
아버지가 고구려 유민이었다고는 하나 고선지 본인은 당나라에서 태어나 당나라에 충성한 군인이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고구려와는 별 관계가 없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 고선지전에 그를 분명히 고구려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자치통감』에는 동료 장군들로부터 “개똥 같은 고구려 놈”이라는 모욕까지 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봐 망국 유민의 삶이 그다지 평탄하진 않았던 듯하다.
고선지는 당나라의 서역 방면 절도사였다. 절도사는 오늘날 지방군 총사령관쯤 되는 자리다. 당나라는 절도사로 흥하고 절도사로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절도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복된 이민족의 후예에게 그런 자리가 돌아간 걸 보면 고선지의 재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사 시간에는 탈라스 전투에 대해 꽤 중요하게 다루지만 정작 당시의 전투 규모로는 그리 큰 싸움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나라 사람들도 탈라스 전투의 결과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탈라스에서의 패배에도 고선지는 별다른 문책을 받지 않았고 중앙정부로 복귀해 고위직을 지냈다는 게 그 방증이다. 하지만 이 전투의 후폭풍은 동시대 당나라 사람들의 생각만큼 간단치 않았다.
비단길과 국력
비단길은 동서양의 특산물뿐만 아니라 종교, 사상, 문화가 활발히 교류되던 문명의 통로였다. 중국의 비단길 경영은 역사가 오래됐다. 중국의 통일 왕조들은 예외 없이 비단길 경영에 공을 들였다. 최초의 시도는 한나라다. 비단길이 처음 열린 건 한나라 문제 때의 일이며 비단길을 통한 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가 바로 고선지가 활약한당나라 때였다.
당나라는 중원에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까지 이어지는 비단길을 경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상당한 국력을 소모해 가면서 서역까지 자국의 영토로 유지했다. 중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조로 한나라와 당나라를 꼽는데 이 두 나라는 비단길을 경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송나라와 명나라는 한족이 세운 왕조였지만 비단길을 경영하지 못했다.
비단길은 '팍스 몽골리카’를 구현한 몽골 제국 때 가장 번성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자신들의 바다로 만들었다면 몽골은 비단길을 자신들의 가도로 만들었다. 몽골이 동에서 서에 이르는 무역로를 단일 세력권으로 통합하면서 비단길은 완전히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몽골 제국이 비단길을 완전히 통제하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무역은 내륙 국가가 해양 국가보다 못한 게 현실이지만 이 비단길 덕택에 전형적인 내륙 국가였던 중국은 상당 기간 동서 교역을 통한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탈라스 전투는 고선지 개인에게는 잊고 싶고 당나라에게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세계사적으로는 기억해 둘만한 사건이다. 탈라스 전투를 통해 중국의 제지 기술이 이슬람으로 전파된 것이다. 이슬람 군대에 잡힌 당나라 포로 중엔 기술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중국의 제지 기술은 막 피어나던 이슬람 문화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유럽에 전파되면서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은 도시를 만든다
탈라스 전투는 고대에 길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탈라스 전투에는 문명의 교류란 평화적인 교역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단길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끝내 전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놀랍게도 전쟁 중에도 문화는 교류되고 있었다. 비단길은 오늘날에도 파키스탄과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잇는 포장도로로 부분적으로나마 남아 있다.
길은 자유를 확산시킨다. 사람들은 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더 나은 것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길이 자유로운 통로가 되고 도시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면서 현대 문명의 고도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유롭게 활동적인 삶을 만들어간다. 자본주의 시장이 발달하면서 도시는 자유의 상징적 존재로 발전했다. 국경을 넘어 세계의 중심지로 발달한 도시들이 나왔는데 런던, 뉴욕과 같은 도시들이 대표적이다.
■ 기억해주세요
길은 자유를 확산시킨다. 사람들은 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더 나은 것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길이 자유로운 통로가 되고 도시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면서 현대 문명의 고도화가 이루어진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NO. | 제 목 | 글쓴이 | 등록일자 | |
---|---|---|---|---|
198 | [시장경제 길라잡이] 정부는 부모가 아니다 최승노 / 2020-02-24 |
|||
197 | [한비자로 세상읽기]문재인 정권, 권력의 대기실은 없는가? 임건순 / 2020-02-18 |
|||
196 | [문화칼럼] <기생충> 아카데미상 쾌거는 국가 문화지원 덕택이다? 이문원 / 2020-02-17 |
|||
195 | [시장경제 길라잡이] 박제가의 `북학의` 최승노 / 2020-02-17 |
|||
194 | [한비자로 세상읽기]모두가 당당한 소인(小人)되는 세상 임건순 / 2020-02-11 |
|||
193 | [시장경제 길라잡이] 사유재산권과 사막 최승노 / 2020-02-10 |
|||
192 | [한비자로 세상읽기]국가의 진정한 유능함이란 무엇인가? 임건순 / 2020-02-04 |
|||
191 | [시장경제 길라잡이] 청교도 실험과 자본주의 최승노 / 2020-02-03 |
|||
190 | [문화칼럼] 홍콩영화는 상혼에 찌든 졸속 속편 양산 탓에 몰락했다? 이문원 / 2020-01-30 |
|||
189 | [한비자로 세상읽기]리더는 부하의 충성에 의지하지 않는다 임건순 / 2020-01-28 |
|||
188 | [시장경제 길라잡이] 선택권 최승노 / 2020-01-27 |
|||
187 | [한비자로 세상읽기]신뢰(信賴)자원의 부국(富國)으로 임건순 / 2020-01-21 |
|||
186 | [시장경제 길라잡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최승노 / 2020-01-20 |
|||
185 | [문화칼럼] 연예인은 공인이므로 사생활에도 제약이 따라야 한다? 이문원 / 2020-01-16 |
|||
184 | [한비자로 세상읽기]새해 소망, 한국병 탈출 임건순 / 2020-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