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권하는 사회

이태경 / 2024-05-10 / 조회: 36

“약국에 약을 사고 싶어서 지방에서도 이 약국으로 몰려와요”. 한 언론 인터뷰의 한 인터뷰이의 말이다. 일명 '성지’라고 불리는 서울의 한 약국의 이야기이다. 각종 맘카페,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에서는 이 약국에서 판매하는 약들의 가격과 후기, 그리고 판매하는 약사의 친절도 등이 공유된다. 이러한 입소문을 타고 이 약국에서 약을 구매하고자 지방에서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상경하는 이른바 '약소핑 족(族)’도 생겨나고 있다. 약국에 되도록이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누가 의도적으로 아파서 약을 처방받으러 약국에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 서로에게 약을 사러가라고 '약을 권하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니.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서울의 이 '성지 약국’에 방문해 시장경제가 피워낸 가치를 확인했다.


이 약국이 약쇼핑 족들의 성지가 된 것은 싼 가격 때문이었다. 흔히 많은 사람이 두통이나 진통이 있을 때 먹는 약의 경우 기존 다른 약국에서는 3500원에 판매하는 약을 2500원에 판매한다. 감기 등 기본적인 상비약에 비해 여타 영양제는 기존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앞에 줄을 선 주부들의 경우에는 수십만원 치를 한번에 사들고 큰 가방에 넣어 들고가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B약국의 약사는 “기존의 가격에 비해 많게는 70%까지 저렴한 제품도 있기에 지방이나 타지에서 많이 방문한다”며 인기 비결을 소개한다.


필자가 방문한 약국을 포함해서 이 곳에는 '약국 거리’가 만들어져 있다. 약국거리에서는 이 약국과 같이 다른 일반적인 약국에 비해 매우 낮은 가격으로 약을 판매한다. 이 약국 거리가 만들어진 원리는 시장경제와 경제학적 원리에 기반한 '경쟁’에 있다. 이 약국 거리가 형성된 것은 한 약국의 실험에서 시작됐다. 이 약국은 '박리다매 전략’으로 개별 제품에 대한 가격을 대폭 낮춰 이윤을 최소화했다. 대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낮춘 가격을 통해 판매량을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약국들은 이 약국에 손님들이 몰려들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 함께 가격을 낮춰 '약국 거리’를 형성한 것이다. 약국이 늘어나니 이 거리에서 약이라는 재화의 공급은 늘어나고 공급 곡선은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새로운 균형가격이 형성되면서 일종의 표준 가격이 만들어진다. 또 판매자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가격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이 지역 B약국의 약사는 “이와 같이 가격이 싸지면서 수요도 늘어남에 따라 약을 공급하는 도매 업체도 가격을 보다 낮춰 공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국 거리’는 시장경제가 피운 꽃이다. 아마 약값을 대폭 낮춰 판매한 약사의 경우 이윤추구가 제 1의 목표였을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에서의 행위자는 합리적 행위자이며 이기적 행위자라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부합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이기적 행위는 이타적 결과를 불러왔다. 싼 가격으로 약을 공급한 약국의 인기는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약을 구매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약국과 경쟁하기 위해 다른 약국들도 경쟁적으로 약값을 내렸다. 이에 하나의 거리가 형성되고 이 약국 거리의 약국들은 입소문을 통해 지방에서도 찾는 약국이 되었고 많은 이윤을 창출했다. 또 소비자들도 기존의 가격에 비해 싼 가격으로 약을 구매해 이익을 얻었다. 소비자도, 판매자도 모두가 이익을 본 이타적 결과를 불러왔다. 시장경제의 이타적 나비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약국거리에서 약을 구매하기 위해 많은 지역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이 지역 주변의 식당 등 상권도 활성화 된다는 지역 상인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소비자와 판매자 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까지 시장경제의 파급효과가 퍼진 것이다.


이 약국거리는 경쟁과 시장경제가 가지는 가치와 힘의 상징이다. 외부의 개입없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가져다주는 파급효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다. 그러나, 경쟁과 정부 등 외부세력의 불개입은 나쁘다는 여론의 인식은 팽배하다. 여전히 정부는 기업들의 제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개입해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인 개입은 기업의 의욕을 억제하며 궁극적으로 경쟁을 저해해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 사례는 소비자가 먼저 나서 '약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경쟁을 통해 다른 제품들도 직접 경쟁을 통해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높여 소비자가 먼저 '권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시장경쟁의 가치를 보여줄 수있는 사회가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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