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 동네, 몰락인가 도태인가 몰락인가

김종운 / 2024-05-10 / 조회: 32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내가 살던 옛 동네에 갔다. 나의 옛 동네는 서울의 끝자락에 위치한 터라 지은지 오래된 주공아파트와 그에 맞는 작은 단지 내 상가가 초등학교 앞에 있다. 내가 살았을 때도 다 까진 페인트와 부식된 콘크리트가 눈에 띌 정도로 낡고 오래된 상가였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책임질 많은 가게들이 있었었다. 학창 시절 나의 준비물을 책임진 문방구,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분식집, 500원 동전 하나를 들고 친구들과 나눠먹었던 소위 불량식품이라 불리는 간식을 팔던 구멍가게 등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그런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가 모습은 내가 알던 상가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상가의 심장이었던 문방구는 소비자인 아이들이 줄어 이미 폐업을 한 지 오래된 상태였고 그 자리에는 어른 소비자들을 위한 인테리어 용품 매장이 들어와있었다. 또한 아이들이 북적거리며 서로 떡 하나씩 나눠먹던 식용유 냄새가 가득하던 분식집은 반찬 가게로, 출처 모를 간식거리와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운영하던 구멍가게는 온갖 종류의 공산품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 디스플레이 되어있고 귀찮은 표정의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편의점으로 바뀌어있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이렇게 영혼 없이 바뀌었다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 출산율이라는 기록을 가진 우리나라에는 굳이 많은 가게가 필요하지 않았다. 시끄럽고 빠르게 울려대던 발소리는 사라지고 조용하고 느린 발자국만 남은 동네에 굳이 가게들은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변화보단 진화라는, 하지만 긍정적이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소비자들의 수요가 더 이상 시장의 공급되지 않으니 그런 식으로 진화하는 게 당연한 사회지만 과연 그들도 이런 식의 진화를 원했을까?


너무나도 변한 상가에 사실 나는 그들이 몰락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마치 그들에게 어떠한 의무라도 있는 거처럼 나의 추억을 이렇게 쉽게 포기한 그들이 밉고 서운했다. 결국 돈한테, 이 자본주의한테 굴복하고 몰락한 나쁜 어른들이라고. 하지만 이건 어린 감정의 잠식된 나의 생각이고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경쟁력이 없고 수요가 없는 산업은 시장경제에서 결국은 도태되고 사라진다는 것을. 그렇지만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웠던 모습이 변한 걸 보니까 마치 오랜 불알친구가 한순간 날 등한시하고 떠난 기분이었다.


그렇게 서운한 기분을 가진 채 상가 쪽을 바라보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가게들을 쳐다보았다. 내가 느낀 감정들과는 다르게 가게들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했다. 걱정과 다르게 여전히 손님들로 가게는 북적거렸고 여전히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있었다. 노후된 아파트의 하자들을 완벽히 이해한 인테리어 가게는 손님이 오는 족족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주고 있었고, 참기름 냄새가 가득한 반찬가게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콩나물과 젓갈을 무치고 있었고, 편의점에는 아직 남아있는 청소년들에게 문방구, 분식집, 구멍가게의 역할을 도맡아서 해주고 있었다.


나는 나의 옛 동네에서 시장경제의 도태와 변화를 아름답게 느꼈다. 그들의 진화는 결국 이전보다 많은 효용을 창출하였다. 과거 하나씩의 역할만을 맡았던 가게들은 여러 가지의 역할을 맡아 다양한 효용을 창출하였고, 동네라는 작은 사회에서 그들의 고유한 역할들을 뽐내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진화를 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바라던 낭만과 추억이 과연 아름답게 보존되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장경제인 이 사회에서는 도태되는 순간, 아무리 아름다웠었대도 빛이 바래 흉측하게 변해있었을 것이다. 변화는 나의 옛 추억을 오히려 아름답게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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