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실패 - 도서정가

구민규 / 2024-05-09 / 조회: 58

수많은 책이 독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종잇값도 받지 못한 채 폐기되고 있다. 오래 팔리지 않는 책들을 보관하는 재고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쓰레기로 폐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는 시장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적인 원리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배웠다. 이에 따르면 책의 폐기는 책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시장은 자연스럽게 이런 불균형을 맞춰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도록 작동한다. 이때 조절되는 변수가 바로 가격이다. 가격의 하락은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므로 책을 할인해서 팔면 책의 폐기는 일어나지 않거나 최소한 폐기율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도서 시장에서는 이러한 시장경제체계가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200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도서 출판 후 18개월간은 최대 10% 할인만 가능했지만, 이후에는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고, 가격 할인과 별도로 10% 포인트 적립도 가능했다. 이때도 정가제 시행 이전에 책을 사재기하거나 혹은 신간의 판매율이 떨어지는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런데 2014년 이후 개정 도서정가제는 더욱 강화되어 발매일과 관계없이 10% 할인만 가능해졌다. 정부가 시장 경제에 인위적으로 가격 하한선을 도입해 규제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도서정가제는 효과가 있었을까? 정부에서 도서정가제를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밀리는 지역 서점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도입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2004년 이후 지역 서점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발표한 24년 서점편람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지역 서점의 수는 2,484개로 2005년 3,429개에 비해 약 1,000개 줄어들었다. 도서정가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시장 참여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먼저 소비자를 확인해보면 소비자는 비싼 책을 사지 않고 책을 안 읽는 것을 선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3년에 72.2%였던 종합독서율은 24년 43%로 감소하였다. 약 30%의 소비자가 책 읽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독서 시장의 감소로 이어지고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큰 타격을 준다. 소비자가 책을 구매하지 않으면서 많은 책이 재고로 남게 되고 그 기간이 길어져 재고 비용조차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면 책들을 쓰레기로 폐기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점의 손해는 오히려 도서정가제 시행 전보다 커진다. 만약 도서정가제가 없었다면 안 팔리는 책들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춰 판매함으로써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은 자유시장경제에 의한 자연스러운 시장 조정과정이다. 그런데 도서정가제로 인해 시장 조정과정이 불가능해지면서 멀쩡한 책들이 쓰레기로 폐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서정가제의 시행은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책의 출간 이후 12개월이 지나면 책의 정가를 재조정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를 통해 도서의 정가를 조정함으로써 도서정가제를 우회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책의 정가를 재조정하는 일이 매우 번거롭다는 점이다. 재조정 과정에서 책에 있는 가격을 모두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재조정을 진행해도 책이 모두 판매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 때문에 소수의 출판사와 책만 정가 재조정을 진행하고 나머지 책들은 모두 버려진다. 만일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단순히 책의 할인 폭만을 높이면 됐지만 도서정가제의 시행으로 번거로운 절차만 추가된 셈이다. 결국 정부는 웹툰과 웹소설을 도서정가제의 적용에서 제외했다. 정부도 도서정가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간접적으로 정책이 실패하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와 개입은 시장의 비효율성으로 이어진다. 시장 경제는 그 자체로도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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