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는 어떻게 재정을 파탄냈는가
| 도서명 | 케인스는 어떻게 재정을 파탄냈는가 |
| 저자 | 뷰캐넌, 버튼, 와그너 / 옥동석 역편저 |
| 발행인 |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
| 출판사 | 자유기업원 |
| 발간일 | 2021-05-17 |
| 요약 | 자유기업원 콘텐츠팀 |
제Ⅰ부 케인시안 재정, 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pp. 21–41
고전파 재정관의 붕괴: 균형예산에서 적자재정으로
케인시안 이전의 고전파적 재정관은 애덤 스미스의 명언—"모든 가정생활에서 지혜로운 것은 위대한 왕국에서도 결코 어리석은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처럼, 국가 재정도 가계와 마찬가지로 절약과 균형을 덕목으로 삼았다. 정부예산은 원칙적으로 균형 또는 흑자여야 하며, 적자는 오직 예외적 상황에서만 허용되었다. '세이의 법칙'에 기반한 이 체제에서 최선의 정부 행동은 경제적 교란을 피하는 것이었다.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이 미국의 보편적 신념으로 정착하는 데는 약 한 세대가 걸렸다. 1960년대에 이르러 거시경제 관리가 정부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불황기에는 적자, 인플레이션기에는 흑자를 운용하는 '적정한 조정(fine tuning)'이 케인시안 경제정책의 이상(理想)으로 자리 잡았다.
케인스 가정의 치명적 오류: '하비 로드의 전제들'
케인스는 경제정책이 소수의 현명하고 계몽된 엘리트에 의해 결정된다는 '하비 로드(Harvey Road)의 전제들'에 기초하여 행동하였다. 그는 정치인들이 압력집단에 굴복하는 민주주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지배 엘리트가 항상 '공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현실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지식과 유인구조 모두에서 케인스가 가정한 계몽된 엘리트와 다르다. 따라서 케인시안 정책 계명은 정치적으로 비대칭적으로 편향(bias)되어 적용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재정적자의 구조적 편향
케인시안 비전이 일반화되자 균형예산 준칙이 사라지면서 예산제약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정치인들은 증세 없이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적자예산을 선호하게 되었고, 흑자예산은 정치적으로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케인시안 인플레이션 편향의 파멸적 결과
예산적자에 대한 정치편향은 통화당국이 적자에 대응하여 통화량을 증가시키면서 인플레이션 편향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의 심각한 결과는 절대가격 수준의 상승이 아니라 상대가격 구조의 왜곡에 있다. 정치인들의 지출정책은 특정 수혜자를 위해 상대가격을 선별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설계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F.A. Hayek)의 분석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의 초기 영향은 자본재 가격 상승 등 상대가격 구조의 변화이다. 이 왜곡된 가격신호에 반응하여 형성된 지속불가능한 생산구조와 자원배분은 인플레이션이 멈추면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이 재조정 과정이 곧 실업과 불황을 낳는다. 불황은 회복과정의 불가피한 부분이며, 케인시안 적자재정이 초래한 정치적 행동의 대가인 것이다.
"케인시안 경제학은 정치인들을 느슨하게 만들었고, 세수를 분명하게 확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정치인들의 지출요구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던 제약을 파괴하였다. 냉철한 평가를 내린다면, 정치적으로 케인스주의는 민주주의의 장기적 생존에 치명적인 심각한 질병이다."
결론: 케인시안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케인시안의 문제는 단순한 경제이론의 오류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질서를 팽창·수축 가능한 단순한 '풍선'으로 보는 케인시안 모형과 달리, 실제 경제는 수많은 참여자들의 기대·계획·계약이 복잡하게 연결된 '조립완구 세트'와 같다. 한 지점의 변화(재정정책 주입)는 예상과 계획의 전체 체계를 교란시키며, 그 결과는 여러 기간에 걸쳐 드러난다. 케인시안이 건전재정의 헌법적 원칙을 파괴함으로써 예산적자, 인플레이션, 정부규모 증가가 동시에 심화되었다.
제Ⅱ부 '위대한 영국'에서 '바보 같은 영국'으로
pp. 42–101
1. 영국 재정의 변천: 케인시안 이전과 이후
케인시안 이전(1790~1935) 시기, 예산적자는 전쟁이나 경기후퇴기에 한정되었고, 평화·번영의 '보통' 기간에는 균형예산 또는 소폭 흑자를 목표로 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는 평상시에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1941년 케인시안 원리에 기초한 최초의 예산 편성 이후, 영국은 재정헌법상 균형예산 준칙을 사실상 폐기하였다. 그 결과 전후 시기 재정적자는 만성화되어, 공공부문차입소요(PSBR)는 1975년에 GDP의 11.4%까지 치솟았다.
피코크-와이즈만은 전쟁 등 충격 후 정부지출이 '상방 도약'하여 새로운 수준에서 안정화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가설은 ① 19세기 전쟁 후 지출이 더 낮은 수준으로 복귀한 사실, ② 전후 30년간 지출이 평준화 없이 지속 증가한 현실, ③ 케인시안 재정헌법에서 조세수입이 더 이상 지출 상한을 제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결정적 설명 변수는 '케인시안 재정헌법으로의 전환'이다.
2. 균형예산 준칙의 역사적 형성과 붕괴
영국의 19세기 재정헌법은 성문화되지 않은 7가지 핵심 관습으로 구성되었다. 금전 제안권을 행정부에 한정하고, 모든 지출과 과세는 하원 다수결로 승인하며, 예산편성 이전의 고충 처리 절차를 의무화하는 등의 관습이 그것이다.
3. 케인스의 오류: '하비 로드의 전제들'
케인스의 정책처방에는 세 가지 근본적인 오류가 내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습관적인 도덕, 관습 그리고 전통적인 지혜를 완전히 거부하였다. 지금부터 인류가 관습, 전통적 가치, 경직적 행동규칙 등 외부적인 제약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 자신의 분별력, 선을 향한 순수한 동기와 신뢰가능한 직관을 가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4. 케인시안 재정이론의 설계와 현실의 괴리
케인스의 후계자들(미드, 달톤, 칼도)은 케인시안 통화-재정 헌법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정부는 경기주기 내에서 예산균형을 추구하고('기능적 재정'), 자연실업률 이하로 실업을 낮추려 하지 않으며, 통화안정을 추구하고, 정치인은 미래세대의 수탁자로서 장기적 시계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한낱 공상으로 밝혀졌다. 심각한 불황 없이 흘러간 전후 25년은 케인스의 시대로 불리지만, 그의 비전과는 사뭇 달랐다. 정치적 경기변동이라는 칼렉키의 냉소적 표현이 더 적합한 것이 되었다."
5. 정치 현실과 케인시안 전제의 충돌
케인시안 전제와 정치 현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전면 충돌한다.
6. 중기재정계획(PESC)의 실패
1961년 플라우덴 보고서에 기반한 PESC(공공지출 검토위원회)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정부지출 계획·통제 시스템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케인시안 재정헌법의 근본 결함을 교정하는 데 실패하였다. 오히려 지출팽창 편향을 악화시켰다.
7. 1976년 외환위기 대응과 그 한계
1976년 영국은 IMF에 SDR 39억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현금한도 도입, 재정정보시스템 구축, 정부지출 재정의(통계상 GDP 대비 비율을 60%→52%로 낮춤), IMF의 PSBR 상한 부과 등의 위기대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는 케인시안 재정헌법의 근본적 결함—지출과 과세의 분리, 그리고 적자편향의 유인구조—을 해소하는 데 실패하였다.
8. 결론: 재정헌법 개혁의 필요성
저자들은 영국의 입헌 민주주의가 존속하려면, 케인시안 전제들이 초래한 재정편향과 정치적 파탄을 해결하는 헌법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정치적 행동들에 대해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는 '교묘함'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케인스 자신이 만든 재정헌법 하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자들이 직면하는 그 유인구조이다."
제Ⅲ부 재정통제를 위한 헌법적 준칙
pp. 102–118
핵심 주장: 케인시안 재정운용의 폐해와 헌법적 제약의 필요성
1. 균형예산 준칙의 필요성
케인시안 정책을 소수 '전문가 집단'에 위임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민주적 가치에 반할 뿐 아니라 정보 획득의 난제와 유인 설계 문제를 무시하는 순진한 접근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키면서 정치적 편향을 해결하려면, 선출된 대표자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재정헌법(fiscal constitution)이 필수적이다.
재정개혁의 전망이 어둡더라도 운명론에 빠져선 안 된다. 현재의 해악적 정책이 낳는 결과를 정확히 이해할 때 사회현상과 자기이익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재정행위도 변화할 수 있다. 뷰캐넌·와그너의 『적자 속의 민주주의(Democracy in Deficit)』와 같은 경고가 그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이 된다.
2. 재정준칙 헌법의 구체적 제안
역사적으로 의회의 역할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칙 아래 국왕의 방만한 지출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 즉 '정치이익을 위한 경제운용은 없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영국의 통화·재정 헌법 개혁을 위해 다음 여섯 가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3. "케인스 없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 반박
균형예산 준칙 도입에 대한 가장 큰 반론은 '양차 대전 사이의 대불황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저자들은 이를 다음 두 가지 근거로 정면 반박한다.
② 대불황의 원인은 잘못된 정부 정책이었다. 1925년 처칠의 금본위제 복귀 결정은 영국 경제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고(케인스 자신이 '처칠의 경제적 파탄'에서 신랄히 비판), 미국 대공황은 연방준비이사회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원인이었다. 프리드먼·스와르츠의 연구에 따르면 1929~1932년 미국 통화공급은 35.2% 하락하였다.
독자들에 대한 제언 (요약)
저자들은 재정 개혁을 위해 각 주체에게 다음과 같은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냉철한 평가를 해보면 케인스주의는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생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해제: 한국 재정의 변천과 재정준칙
pp. 121–188
한국 재정의 변천과 재정준칙 — 개관
이 해제는 1945년 해방 이후 2020년까지 한국 재정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재정준칙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재정운용의 핵심 기조가 '통화증발 → 균형재정 → 개발재정(적자) → 재정긴축 → 민주화 이후 재정팽창'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며, 그 귀결로서 재정준칙의 제도화를 촉구한다.
1. 해방 이후 재정금융의 불안정(1945~1961)
1945년 해방 직후 일제가 조선은행권을 2배로 남발하였고, 미군정기에도 치안·양곡 비용 대부분을 통화발행으로 보전했다. 1946년 서울 도매물가는 전년 대비 3.6배 폭등했고, 1945년 8월 하순 도매물가는 6월 대비 24.7배에 달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인 1949년에도 조세수입은 세입의 14.9%에 불과했고, 세입의 49.5%를 은행차입(사실상 통화증발)으로 충당했다. 경찰비·국방비가 세출의 35.4%를 차지하는 등 치안·방위 지출이 재정을 압박했다.
전시임에도 정부는 세율 인상, 과표 현실화, 곡물 물납세 등 세제개혁을 단행해 조세수입 비중을 1950년 60.1%로 끌어올렸다. 1951년 재정법 제4조는 "세출은 국채·차입금 이외의 세입으로 충당"하는 수지균형 원칙을 천명했다. 1951·1952년 실질적 균형재정이 달성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1953년 휴전 이후 미국과의 '경제재건과 재정안정계획에 관한 합동경제위원회 협약'이 체결되어, 균형재정·단일환율·자유기업원칙·자유가격제를 골자로 한 자유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추진되었다. 1954년 신국책(新國策)을 통해 귀속기업체 민간불하, 국영기업 민영화, 정부대행기관 특혜 폐지 등이 시행되었다.
2. 경제개발계획과 재정투융자(1962~1980)
1961년 군사정부는 통화개혁 등 내자동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 전략으로 전환했다. 경제기획원은 예산·세제·외자도입·물가관리까지 총괄하는 부총리급 초강력 부처로, 전 세계 유례없는 권한을 가졌다.
도로·항만 등 사회기반시설 직접투자, 민간산업 자본보전, 공기업 출자, 정책금융을 망라하는 '재정투융자'가 개발재정의 핵심이었다. 일반재정 대비 비중은 1966년 이후 평균 30%를 상회했고, 197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 시기에는 35~43%까지 상승했다.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는 높은 성장률로 나타났다. 제1차 계획(1962~1966) 8.5%, 제2차(1967~1971) 9.7%, 제3차(1972~1976) 10.1%.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 투자와 중동건설 붐이 겹치며 만성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어, 1973~1977년 평균 물가상승률이 19.3%에 달했다.
1961년 '재정법'을 폐지하고 '예산회계법'을 제정하면서 국채·차입 허용 요건이 "전쟁 또는 사변 수습비"에서 "부득이한 경우"로 확대되었다. 동시에 기금제도가 도입되어 국회 승인 없이 부처 장관이 자의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예산 외 재원이 생겨났다.
1979년 4월 경제기획원은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을 발표하여 수출지원 축소, 중화학투자 조정, 재정 안정, 금융 자율화를 추진했다. 당시 경제관료들은 이를 20년 성장 우선 기조에서 안정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라 표현했다.
3. 재정긴축과 경제정책 분화(1981~2002)
1980년 마이너스 성장을 계기로 신군부는 만성 인플레이션·시장구조 왜곡·불균형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시장경제 활성화로 정책기조를 전환했다. 1981년 국보위는 정부조직 대규모 감축을 단행했고, 1982년부터 '영점기준(zero-base budgeting)' 예산편성을 도입하여 1988·1989년 재정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1974년 IMF 재정통계지침 발간을 계기로 한국은 「한국의 재정통계」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일반정부·공공부문 개념이 도입되었고, 1988년부터 '통합재정' 용어가 사용되었다. 2004년부터 모든 기금이 국회 통제를 받게 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는 농어촌부채 탕감, 국민연금, 복지 확대 등 포퓰리즘적 지출을 수용했다. 1989~1997년 재정규모는 연평균 약 20% 증가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출범시켰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이 거대 부처에 대한 비판이 폭발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기획예산위원회·예산청으로 분리하고 한국은행 독립과 금융감독위원회 신설을 추진했다. 동시에 26개 공기업 모기업 중 11개를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 2002년까지 기관수 42%, 인원 77.3%에 해당하는 민영화를 완료해 획기적 성과로 평가받았다.
4. 민주주의와 재정확대(2003~2020)
2000년 총선에서 공적자금 137.5조원 문제가 최대 정치쟁점이 되면서 재정운용은 본격적인 정치쟁점으로 부상했다. 노무현 정부는 OECD 대비 한국 복지지출(GDP대비 6.5% vs. OECD 20.0%)이 낮다는 통계를 근거로 복지 증가를 정당화하며 매년 복지 예산을 경제 예산보다 더 증액했다.
민주화 이후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반값 등록금 등 여야를 막론한 복지 공약 경쟁이 심화되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예산 나눠먹기·끼워넣기가 반복되었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이명박 정부(4대강), 문재인 정부(지역균형발전)가 동일 규모로 반복 남용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4대 재정혁신(국가재정운용계획·총액배분자율편성·성과관리제도·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은 OECD 신공공관리론(NPM)을 벤치마킹한 것이었으나, 국회 동의 절차 부재, 중앙집권적 예산편성 관행, 성과-예산 피드백 시스템 미비로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
5. 한국의 미래는 재정준칙에 달려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GDP대비 일반정부지출은 32.4%로 OECD 평균 42.1%보다 약 10%p 낮고, 공공사회복지지출도 11.1%로 OECD 평균 20.1%에 비해 낮다. 조세부담률(21.1%)과 국민부담률(28.4%)도 OECD 평균(25.4%, 34.3%)을 하회하며 정부채무 비율(43.2%)도 OECD 평균(95.6%)보다 낮다.
노년부양비를 동일하게 맞춰 비교하면 한국의 복지지출은 스위스·일본·포르투갈·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2040년 60.1, 2060년 91.4로 전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증가한다. 현행 복지제도를 유지해도 2040년 OECD 평균, 2060년 유럽 복지국가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 또한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기축통화국보다 동일 정부채무 비율에서도 재정위기 위험이 높으며, 비기축통화국 평균 정부채무는 40~50%대에 머물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현행 제도 유지 시 2060년 국가채무가 GDP대비 158.7%, 2070년 185.7%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며 "장기적으로 재정이 지속가능하기 힘들다"고 결론지었다. 4대 공적연금 전망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2040년대, 국민연금은 2050년대에 적립금이 고갈되며, 이후 수지균형을 위한 보험료율은 국민연금 31%, 공무원연금 40.2%로 급등할 전망이다.
"국가채무가 GDP대비 70.6% 수준이 되는 2036년 이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2009년 헌법 개정으로 케인시안 재정을 폐기하고 ①균형예산 원칙, ②매년 GDP 0.35%의 구조적 채무 허용, ③경기순환 내 균형, ④채무상환 통제계정 설치, ⑤비상시 예외(의회 의결), ⑥재정안정위원회, ⑦사법적 통제로 구성된 재정준칙을 채택했다. 한국에 적합한 재정준칙 요소로는 ①대통령 임기 5년 단위 수지균형 목표, ②2060년을 목표로 한 10년 단위 정부채무 중기목표(비기축통화국 수준 40~50%대), ③국가위기 비상상황 시 국회 의결에 의한 예외 인정(뷰캐넌 제안 방식), ④정치중립적 재정위원회 설치가 제시된다.
재정준칙은 단순한 숫자 목표가 아니라, 개별 이익 추구가 집단적 파국을 초래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CPB)처럼 선거공약을 객관적으로 분석·평가하여 재정 포퓰리즘을 억제하는 정치중립적 기관의 설치도 병행되어야 한다.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국민이 재정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노력할 때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